기나긴 열흘간의 추석연휴가 끝나고 일상이 시작된 10월10일은 문재인 정부 출범 5개월 되는 날이었습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숫자 중에 5개월은 들어 있지 않은 관계로 기사가 안 나와 대부분 무심코 넘겼을 것입니다. 좀 있다 만 6개월이 되면 관련 기사가 좀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5개월 남짓 지난 셈인데 체감상으로는 5년은 지난 것 같습니다. 어제의 정의가 불의가 되고 불의가 정의가 되는 식인데, 사례를 들면 세월호 등 너무 많습니다. 원인은 역시 ‘적폐청산’입니다.
처음에는 적폐청산 작업이 박근혜 정부를 겨냥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에 격분해 ‘촛불혁명’으로 이 정부가 탄생한 만큼 박근혜 정부의 비리를 겨냥하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였습니다. 워낙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인심을 잃었던 탓에 국민적 호응도 컸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를 넘어 이명박 정부까지 사정 칼날이 연장되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겨냥할 때까지만 해도 아무 소리 못하던 우파 진영이 반발하면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문재인 정권의 ‘적폐청산’ 작업은 명백한 정치보복”이라면서 말입니다.
우파 진영의 통합 논의부터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조만간 바른정당 내 통합파 의원들이 집단탈당해 자유한국당에 복귀할 것으로 보입니다. 최대 9명까지 탈당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한 명이라도 탈당하면 바른정당은 원내 교섭단체 지위를 잃게 됩니다. 이렇게 될 경우 자강파들이 어떤 행보를 보일까요.
우파 진영의 이런 움직임은 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80%대로 고공행진을 벌일 때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입니다. 원인은 문 대통령의 실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가장 큰 항목은 역시 ‘안보’입니다. 일각에서는 북한에 우호적인 문 대통령이 취임하면 남북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북한 노동당 위원장 김정은은 문 대통령의 전임자인 박근혜 대통령 시절보다 더 자주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쐈습니다.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이런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게 중론입니다. 이는 지지율 하락 추세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안보불안이 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의 주된 원인으로 지적됐습니다.
고위 공직자 인사 실패도 지지율 하락의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여느 전임자들과 달리 인수위원회 없이 대선 다음 날 바로 정권이 출범했다는 점에서 동정의 여지는 크지만, 세상 사람들이 이런 점까지 세세하게 헤아려주지는 않습니다.
그 밖에도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할 요인은 많습니다. 다른 걸 떠나서 집권 후 갈수록 지지율이 하락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괍니다. 따지고 보면 문 대통령이 특별히 잘해서 집권한 것도 아닙니다. 문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은 박근혜 전 대통령입니다. 박 전 대통령이 국민들과 소통을 못하고 유신시대 마인드를 갖고 국정을 운영했기 때문에 거센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쫓겨나고 구속돼 재판까지 받고 있는 것입니다.
문 대통령이 개혁을 성공시키려면 이런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적폐’라는 용어를 쓰지 말고 법에 따라 묵묵히 할 일을 해 나가십시오. 적폐도 박근혜 정부의 그것부터 청산하는 데 주력하십시오. 5년이라는 기간은 이것만 하기에도 모자랍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다른 정붑니다. 이들을 ‘보수’라는 이념의 틀로 묶어 한꺼번에 ‘적폐청산’ 하려고 하면, 되지도 않고 임기 내내 나라가 두 쪽 납니다. 스스로 우파 진영에 ‘정치보복’ 명분을 주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