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文 대통령의 ‘적폐청산’이 성공하려면
  • 박영철 편집국장 (everwin@sisajournal.com)
  • 승인 2017.10.18 16:15
  • 호수 1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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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열흘간의 추석연휴가 끝나고 일상이 시작된 10월10일은 문재인 정부 출범 5개월 되는 날이었습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숫자 중에 5개월은 들어 있지 않은 관계로 기사가 안 나와 대부분 무심코 넘겼을 것입니다. 좀 있다 만 6개월이 되면 관련 기사가 좀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5개월 남짓 지난 셈인데 체감상으로는 5년은 지난 것 같습니다. 어제의 정의가 불의가 되고 불의가 정의가 되는 식인데, 사례를 들면 세월호 등 너무 많습니다. 원인은 역시 ‘적폐청산’입니다.

 

처음에는 적폐청산 작업이 박근혜 정부를 겨냥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에 격분해 ‘촛불혁명’으로 이 정부가 탄생한 만큼 박근혜 정부의 비리를 겨냥하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였습니다. 워낙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인심을 잃었던 탓에 국민적 호응도 컸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를 넘어 이명박 정부까지 사정 칼날이 연장되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겨냥할 때까지만 해도 아무 소리 못하던 우파 진영이 반발하면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문재인 정권의 ‘적폐청산’ 작업은 명백한 정치보복”이라면서 말입니다.

 

10월16일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의에서 열린 금융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노트북에 '문재인 정부 무능 심판' 유인물이 붙어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우파 진영의 통합 논의부터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조만간 바른정당 내 통합파 의원들이 집단탈당해 자유한국당에 복귀할 것으로 보입니다. 최대 9명까지 탈당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한 명이라도 탈당하면 바른정당은 원내 교섭단체 지위를 잃게 됩니다. 이렇게 될 경우 자강파들이 어떤 행보를 보일까요.

 

우파 진영의 이런 움직임은 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80%대로 고공행진을 벌일 때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입니다. 원인은 문 대통령의 실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가장 큰 항목은 역시 ‘안보’입니다. 일각에서는 북한에 우호적인 문 대통령이 취임하면 남북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북한 노동당 위원장 김정은은 문 대통령의 전임자인 박근혜 대통령 시절보다 더 자주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쐈습니다.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이런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게 중론입니다. 이는 지지율 하락 추세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안보불안이 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의 주된 원인으로 지적됐습니다.

 

고위 공직자 인사 실패도 지지율 하락의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여느 전임자들과 달리 인수위원회 없이 대선 다음 날 바로 정권이 출범했다는 점에서 동정의 여지는 크지만, 세상 사람들이 이런 점까지 세세하게 헤아려주지는 않습니다.

 

그 밖에도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할 요인은 많습니다. 다른 걸 떠나서 집권 후 갈수록 지지율이 하락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괍니다. 따지고 보면 문 대통령이 특별히 잘해서 집권한 것도 아닙니다. 문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은 박근혜 전 대통령입니다. 박 전 대통령이 국민들과 소통을 못하고 유신시대 마인드를 갖고 국정을 운영했기 때문에 거센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쫓겨나고 구속돼 재판까지 받고 있는 것입니다.

 

문 대통령이 개혁을 성공시키려면 이런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적폐’라는 용어를 쓰지 말고 법에 따라 묵묵히 할 일을 해 나가십시오. 적폐도 박근혜 정부의 그것부터 청산하는 데 주력하십시오. 5년이라는 기간은 이것만 하기에도 모자랍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다른 정붑니다. 이들을 ‘보수’라는 이념의 틀로 묶어 한꺼번에 ‘적폐청산’ 하려고 하면, 되지도 않고 임기 내내 나라가 두 쪽 납니다. 스스로 우파 진영에 ‘정치보복’ 명분을 주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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