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흑연 확보 전쟁 중’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7.10.19 13:39
  • 호수 1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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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개발·4차 산업의 핵심 원료 흑연, 중국·일본 맹위… 한국, 높은 기술력 불구, 원재료 확보 시급

 

최근 한반도 위기 정세를 둘러싸고 관심이 높아지는 광물이 있다. 바로 ‘흑연(Graphite)’이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개발에 나선 배경에는 흑연이 자리 잡고 있다. 세계적으로 중국 등 일부 국가에서만 나오는 흑연은 북한에도 있다. 과거 북한이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반대를 무릅쓰고 흑연 감속로 재가동을 강행한 것은 고온의 원자력을 흑연으로 감속시키는 과정에서 플루토늄이 추출되기 때문이다. 흑연 감속로를 재가동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플루토늄을 추출해 핵무기 개발에 나서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역설적으로 방어력 증강을 위한 군사 무기에도 흑연은 필수 재료다. 올 3월25일 미 국무부가 북한·이란·시리아가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방지 약속을 위반했다며 총 11개 기업·개인에 대한 제재 명단을 발표했는데, 가장 많이 포함된 것이 ‘탄소-흑연’이었다. 이처럼 흑연은 다양한 용도의 군사 무기에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스텔스 기술이다. 특수도료에 흑연을 넣어 만든 외장 복합소재는 레이더파(波)를 흡수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미 공군력의 상징인 스텔스기도 흑연 없이는 무용지물이다. 스텔스 기술은 미국 최대 방산기업 록히드마틴이 40년 이상 투자해 개발됐다.

 

산업기술 분야에서 흑연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산업계의 미래 먹거리로 부상한 ‘그래핀’에도 흑연은 핵심 재료다. 그래핀은 석유와 플라스틱을 잇는 4차 산업의 핵심인데, 대부분의 소재가 흑연에서 나온다. 그래핀이 차세대 소재로 각광받는 이유는 구리보다 100배 이상 전기가 잘 통하며, 실리콘보다 100배 빨리 전자를 전달할 수 있어서다. 열전도성은 다이아몬드보다 2배 이상 높다. 강도도 철보다 200배 강하지만, 신축성이 좋아 늘리거나 구부리는 데 문제가 없다.

 

© 시사저널 최준필

 

흑연에 울고 웃는 한반도 정세

 

그래핀은 탄소 원자로 이뤄진 아주 얇은 막이다. 특수현미경으로 보면 육각형의 탄소 결정체가 기둥 형태로 돼 있다. 최근 탄소 신소재로 많이 각광받고 있는 탄소나노튜브의 경우 다양한 형태로 가공하기 어렵지만, 그래핀은 얇은 막으로 돼 있어 구조체를 바꾸기 쉽다. 그래핀은 평면 구조에서 기능화·입체·점 구조로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구조가 다양해진다는 것은 쓰임새 역시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면 구조로 만들 때는 투명 디스플레이·차세대 반도체 등에 쓰였지만, 기능화 구조에서는 전도성 잉크·초경량 소재로, 입체 구조에서는 태양전지·흡착제 등에 쓰인다. 점 구조에서는 의료용 MRI 조영제(照影劑)·약물전달물질에 활용된다.

 

그래핀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상당히 앞서 있다. 특허청이 2014년 펴낸 통계를 보면, 2008년 57건이었던 그래핀 관련 국내 특허 출원은 2014년 4255건을 기록해 3599건을 기록한 미국, 1583건을 기록한 일본을 앞섰다. 당시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 미국 내 출원한 그래핀 특허 건수가 1262건이었는데, 이 중 603건이 우리나라였다.

 

흔히들 흑연 하면 연필심부터 떠올린다. 탄소가 응축됐다는 점에서 연필심 역시 흑연이다. 그렇지만 연필심에 사용되는 흑연은 품질이 떨어진다. 통상적으로 흑연은 천연흑연과 인조흑연으로 구분된다. 석유나 석탄을 태우면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대기층을 오염시키는 위해(危害)요인인데 그중 탄소만 빼내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러한 인위적인 방법으로 만드는 것이 인조흑연이다. 반면 천연흑연은 지하에서 캐낸다. 사용되는 탄소 재료 중 40% 이상이 흑연에서 물질을 추출한다. 100% 탄소 결정체로 이뤄진 흑연은 부가가치가 수백 배에 이른다. 이런 이유로 과거 박근혜 정부는 흑연을 창조경제의 핵심 소재로 키우려 했었다.

 

고순도 정제 과정을 거쳐 탄생한 천연 플레이크 흑연 © 시사저널 최준필

 

국제 흑연 시장에서 중국 영향력 막강

 

리튬이온 2차전지는 전기차 시대에 가장 각광받는 부품소재다. 이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중국과 함께 선두권에 있다. 흔히 리튬이온 2차전지에는 양극재·음극재·분리막·전해액 등 4대 소재가 핵심이다. 리튬이온 2차전지에서 양극재가 방전 시 리튬이온을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면, 음극재는 충전 시 리튬이온을 받아들이는 핵심소재다. 이 둘 사이를 리튬이온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전해액이다. 또 양극과 음극이 접촉하지 않도록 분리해 주는 것이 분리막이다. 분리막이 제구실을 못하면 배터리는 폭발한다.

 

각 부문별 우리 기업들의 지난해 시장점유율은 양극재 9.6%, 음극재 2.3%, 분리막 16.3%, 전해액 10.6%였다. 이 중 음극재의 시장점유율이 가장 낮은 이유는 흑연 공급을 전적으로 해외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음극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조흑연·천연흑연 모두 필요하다. 인조흑연은 충전 후 보유한 전기를 소진하는 속도가 짧으며 재충전 시간도 짧다. 반대로 천연흑연은 방전과 충전 시간 모두 더디다. 때문에 두 가지 흑연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 제품을 만드는 것에 기술 노하우가 있다.

 

철을 생산하는 데도 흑연은 반드시 필요하다. 철을 생산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자연 상태의 철광석에서 뽑아내는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이미 만들어진 철강제품에서 철 스크랩을 얻은 뒤, 이를 전기로에서 녹여 다시 제품을 만드는 방법이다. 전기로법으로 불리는 후자의 경우 앞으로 자원재활용이 중시되는 상황에서 더욱 각광받고 있다. 그런데 전기로에서 철 스크랩을 녹이기 위해서는 전극봉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전극봉의 주성분이 흑연이다. 포스코 계열사인 포스코켐텍의 주가가 올해 큰 폭으로 뛴 것은 인조흑연으로 만드는 전극봉 제조분야에서 높은 기술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현재 포스코켐텍은 자회사인 피엠씨텍으로부터 흑연전극봉의 원재료인 침상 코크스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있다.

 

최근 흑연전극봉 값은 꾸준히 오르고 있다. 연초 톤당 1740달러였던 것이 7월말에는 1만2000달러를 넘어섰다. 연초 대비 593%가량 뛴 것이다. 가격 상승의 원인은 중국 내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흑연전극봉 생산량은 준 대신 수요는 급증했기 때문이다. 이재광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중국의 철강 가격 강세로 일정부분 원가 전가가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흑연전극봉 가격 강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 흑연 시장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관련 학계에 따르면, 전 세계에 약 7100만 톤의 흑연이 매장돼 있는데, 이 중 중국 매장량이 5500만 톤으로 77%를 차지하고 있다. 생산량도 비슷한 수준이다. 지난해 7월 유럽연합(EU)은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이유는 중국이 흑연을 비롯해 11개 광물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거나 쿼터를 정하는 방식으로 수출을 제한하고 있어서다. 그만큼 세계 광물 시장에서 중국의 광물 굴기(起)는 점차 노골화되고 있다. 우리가 리튬이온 2차전지와 그래핀 시장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고 있더라도 인조흑연·천연흑연과 같은 원재료를 확보하지 못하면 시장점유율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

 

안타깝게도 학계에서는 현재 남한 내 매장된 흑연이 거의 없다고 본다. 있다고 해도 극소량이다. 때문에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나마 북한은 흑연이 매장돼 있다. 일부에서는 북한의 흑연 매장량이 세계 4위 수준이라고 본다. 북한은 2015년부터 자체 흑연 매장량을 외부에 알리면서 외화벌이 수단으로 사용했지만, 지난해 2월 미 의회가 북한의 자금줄을 차단하기 위해 광물 거래를 제재 대상에 포함시킨 데 이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올 8월 북한의 광물 수출을 금지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면서 판로가 막혔다. 남북교류가 활발할 때만 해도 북한에 매장된 흑연이 국내로 들어오는 일이 있었다. 한국광물자원공사는 1994년 북한자원개발전담반을 신설한 바 있다. 또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에는 정촌 흑연광산 합작개발사업에 나섰다.

 

홍병희 서울대 교수가 그래핀으로 만든 투명전극을 양손으로 말아 쥐고 있다. © 뉴스뱅크이미지

 

흑연 안 나는 일본, 인조흑연 개발에 박차

 

결론적으로 지금 같은 구도라면 우리는 중국의 광물 굴기를 그냥 지켜보고 있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산업정책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배터리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리튬이온 2차전지 음극재 시장에서 중국이 65%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는 가운데, 일본은 30%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 역시 우리처럼 매장된 흑연이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중국 다음으로 높은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 비결은 인조흑연이다. 일본은 천연흑연을 포기하고 일찍부터 인조흑연 개발에 뛰어들어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정제 기술력을 갖고 있다. 일본의 인조흑연은 일본 히타치케미컬과 JFE케미컬이 주도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중국에서 생산된 천연흑연이 일본으로 건너가 고순도 음극재로 재탄생되는 방식으로 일본은 세계 흑연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때문에 아무리 우리나라 리튬이온 2차전지 기술력이 높아진다고 해도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현 구도에서는 중국과 일본이 얼마든지 국제 시장가를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셋대우증권 보고서에 의하면, 국제 음극재 수요는 전기차의 대중화로 연평균 42.3%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울러 흑연 관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공정 개선과 대량생산, 가공기술 확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당장 학계에서는 클러스터 개발을 통한 관련 산업 육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미 일본·미국 등은 탄소 클러스터를 통해 전후방 산업 간 협력 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국내에는 전북 전주에 탄소클러스터가 만들어졌다. 이곳에는 국내 기업으로는 최초로 기술 개발에 성공한 효성이 입주해 있다. 효성은 2020년까지 전주 탄소클러스터에 1조2000억원을 투자해 추후 3조원의 매출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흑연이 첨가된 외장 복합소재로 만든 스텔스기 F-22 랩터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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