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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 극복 과정에서 보여준 일본式 소유와 분배

[이인자 교수의 진짜일본 이야기] 공동 소유 균등 분배

이인자 도호쿠대학 교수(문화인류학)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0.23(Mon) 19:00:00 | 14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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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일본 도호쿠(東北)대학에서 문화인류학을 가르치는 이인자 교수는 재일교포·묘제(墓制) 연구의 권위자이며 동일본대지진 연구에서 세계 일인자로 평가받는 석학(碩學)이다. 이 교수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후 피해지역을 답사하며 재난에서 살아남은 희생자 유족과 생존자들의 정서적 피해와 복구에 대해 연구해 왔다.

 

10월18일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가 열렸습니다. ‘한국이 자본주의 체제인 게 신기하고 중국이 사회주의 체제인 게 신기하다’는 말이 있는데, 가끔 일본이 자본주의 체제가 맞는지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또 ‘한국인은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는 표현에 많은 사람이 공감합니다. 평등의식이 유독 강해서겠지요. 이와 똑같지는 않지만 일본에도 흥미로운 현상이 있습니다. 주로 자본의 집산(集散)과 분배에서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재해지역을 조사하면서 본 일본인들은 균등한 분배에 대해서는 귀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확하게 나누기를 잘했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나눌 수 있는 것이면 정성껏 나눠 비상시기를 넘겼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쓰나미 피해 지역은 공동생활을 한 곳이 많습니다. 자위대나 경찰의 구조대가 올 때까지 부족한 식량으로 어떻게 버티며 지냈는지 들어보면 있는 물자를 공동 소유로 전환하고 균등하고 타당한 분배가 일등공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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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자·노동력 균등하게 재분배

 

먼저 건질 수 있는 모든 물자는 그걸 발견한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재해 후 밖에서 얻은 모든 물자는 공동생활을 하는 곳(피난소)에 집약됩니다. 설혹 자기 집에 남았던 쌀조차도 공동생활을 하는 곳에 가져가 함께 소비해야 합니다. 물자도 그렇지만 노동력도 집약됩니다. 피난소에 있는 그들은 개인이 아니고 공동체의 일원이 됩니다. 힘 있는 남자들은 내 집이나 내 가족의 안녕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를 부상자를 찾아 나서고 구조차가 들어오기 수월하게 부서진 길을 고치고 마을 사람들의 먹거리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그럴 경우 피난소 내부에서는 여성들이 없는 식량으로 모두가 균등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음식을 만들어 분배하고 먹고 쉬고 할 수 있는 우선순위 등을 정합니다.

 

재해 직후에는 연장자와 어린아이에게 우선적으로 먹거리를 챙겼지만 점점 종일 밖에서 일을 해야 하는 청장년들이 우선적으로 먹을 수 있게 질서를 정합니다. 어린아이와 노인들은 정미되지 않은 현미를 병에 넣어 나무막대기로 마찰시켜 쌀을 만드는 작업을 종일 합니다. 누구도 개인 사정을 들어 시간을 비우거나 물자를 소비하거나 하지 못합니다. 만약 그런 일이 있으면 그 피난소에서 버텨내기 어렵고, 피난소에서 나온 후에도 공동체 안에서 인정받지 못해 이기적이라는 낙인이 찍힙니다. 제가 조사하는 마을에서는 재해 때 떠내려온 차 안에서 발견한 미네랄워터를 혼자 차지해 마신 사람에 대한 비난을 아직까지 들려줍니다.

 

자기 가족의 주검을 찾은 뒤 시체 수색작업을 그만둔 사람도 비난의 대상입니다. 피난소에 함께 사는 이상, 물질도 노동력도 개인적인 것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감정조차도 마음대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모두 뼈저린 아픔을 겪고 있기에 혼자만 심하게 감정표출을 해서도 안 됩니다. 공동체 안의 공인된 누군가(주로 연장자나 마을의 리더)가 “가족과 연락도 안 된 상태에서 이러고 있으니 참 힘들지요?”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길 내는 노동을 하니 허기지지요?” “애기까지 있으니 얼마나 이곳이 불편하세요?” 등의 말을 해 줘야 개인의 사정이 공식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기 전에 개인적인 사정에 따라 움직이면 “제멋대로”라는 비난을 면하지 못합니다. 물질과 노동력 그리고 감정조차도 집약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형태로 재분배하면서 피난소 생활을 해냈던 것입니다. 대재해의 혼돈 속에서 세계가 놀란 질서정연한 모습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것입니다.

 

피난소에서 나와 구조 물자에 욕심을 내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가 나빠진 경우도 있습니다. 비상사태이기에 살기 위해 물욕을 낼 수 있다고 이해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만, 결코 용서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힘들 때 혼자만 뭔가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꼬리표가 붙어 다닙니다. 비교적 짧은 피난생활(1~6개월)이었지만 내부의 규율을 어겼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편히 지낼 수가 없었습니다. 눈에 보이게 폭력적인 배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시하거나 정보를 전달하지 않고 무리에 끼워주지 않기에 공동생활 환경 속에서 견디기 어렵게 되는 것이지요.

 

 

인원수 맞지 않는 물건은 창고에 쌓아둬

 

피난소를 나온 후에도 마을 사람과 균열이 생겨 복구 과정도 순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어에 ‘무라하치부(村八分)’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을 공동체에서 공식적인 왕따를 한다는 말입니다. 마을에서 서로 도와 할 수 있는 일이 10가지 있는데 왕따 대상자에게는 8가지는 안 하고 2가지만 협조하는 식입니다. 그 두 가지는 죽었을 때 시체를 치워주는 것과 대상자 집에 화재가 났을 때만 마을 공동체가 도와주는 것입니다. 주검을 치우지 않으면 전염병이 돌 수 있고 화재는 마을 전체로 번질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마치 살아도 살지 않는 사람 취급을 마을 전체가 한다는 뜻입니다.

 

좀 믿기 어려운 예라 생각하지만, 똑같이 나눠야 한다는 의식이 강해 피난소에서 인원수대로 없는 물건은 창고에 그대로 쌓아놓는 일이 문제로 지적되곤 했습니다. 극단적인 예로 피난소에 100명이 있는데 99개밖에 없으면 그 물건은 당장 필요한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창고에 쌓아놓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나누기 어려운 공산품의 경우가 많습니다. 99명이 받을 수 있어도 그것을 필요로 하는 한 사람이 똑같이 받지 못해 공동체에 균열이 생긴다면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지요. 이러한 점에 대해 언론의 비난도 있었지만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피난소는 여러 마을 사람이 함께 공동생활을 하던 지방자치 공민관이나 공립학교 체육관 등에 설치된 경우가 많습니다.

 

앞서 예를 든 것처럼 같은 마을 사람들만으로 구성된 피난소였다면 그들이 정한 질서에 따라 모두 분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경우 밖에서 보았을 때 불합리한 분배로 보일 수 있는 분배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개수가 모자란다고 쌓아놓는 경우는 없지요. 그런데 여러 마을이 모여 있을 경우 어떤 질서로 분배해야 할지 그들에게는 너무 어려운 문제였던 것입니다. 합리적으로 필요한 사람의 우선순위를 정해 나누면 되지 않겠느냐고 답답해하는 사람들은 앞서 설명한 마을 공동체의 내부를 알지 못하기에 할 수 있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다른 마을의 질서까지 듣고 고려하면서 구호 물품을 나눠야 한다면 창고에 넣어두는 것이 가장 쉬운 답이 될 수 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이들의 공동생활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이해가 되는 대목입니다. 제가 그들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진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대재해라는 큰 재앙 앞에서 알몸이 된 일본 사회를 보고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듭니다. 개인이나 각 사회마다 큰 재난을 겪을 때 그동안 가리고 있던 것들이 모두 없어지고 본연의 기원(起源) 상태로 대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모습은 자칫 어느 개인·사회·나라의 특징으로 분석될 수도 있지만 인류 본연의 모습 중 하나로 보는 것도 타당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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