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 이시구로에 가을 서점가가 들썩였다
  • 조철 문화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0.27 10:27
  • 호수 146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벨문학상 특수’, 그 이상의 인기 누리는 이시구로 소설의 힘

 

매년 이때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면 대형서점은 분주해진다. 수상 작가의 책들이 다시 주목받으면서 판매가 수백 배로 늘어난다. 특히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가수 밥 딜런으로 정해지면서 노벨문학상 특수를 제대로 못 누린 서점가는 올해 수상 발표를 손꼽아 기다렸다. 결과는 일본계 영국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63). 그의 수상 소식이 들리자마자 서점들은 그의 작품들만 모은 판매대를 따로 만들었다. 인터넷서점에서도 그의 작품이 10월 들어 1위를 차지하는 등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가즈오 이시구로가 위대한 정서적 힘을 가진 소설들을 통해 세계와 닿아 있다는 우리의 환상 밑의 심연을 드러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무슨 뜻일까. 강영숙 작가는 한 언론사 기고문에 “가즈오 이시구로가 보여주는 절제와 장악력은 독자의 마음속에 잔물결을 일으키고 결국은 삶에 관한 어떤 인식에 도달하게 만든다. 그는 때로 제인 에어 같기도 하고 카프카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삶에서 전혀 주인공이 아닌, 중심이 아닌, 변방의 사람들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놓고 인간의 본성과 문명 세계가 어떻게 어긋나고 삐걱거리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시구로의 작품이 이전에도 사랑받았던 이유로 귀담아들을 만한 내용이다. 그의 문학 세계를 이런 후한 평가에서 출발해 들여다본다.

 

우선 소설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평범한 인간, 즉 소설의 독자일 수 있다는 것. 누구나 쓸쓸할 수 있고, 하지만 그런 삶이라도 기억할 만하다며 뒤돌아보라고 권하는 작가라는 데서 독자들은 친근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 중 《남아있는 나날(The Remains of the Day)》이 각 서점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것은 그래서다. 《남아있는 나날》은 1994년 동명의 영화로 국내에 소개돼 관객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이 작품은 집사로 평생을 보낸 남자 스티븐스가 말년에 떠난 6일간의 여행을 따라가고 있다. 1956년 여름, 영국의 저명한 저택 ‘달링턴 홀’의 집사로 평생을 보낸 스티븐스가 새로운 주인의 호의로 6일간의 생애 첫 여행을 떠난다. 젊은 날 사랑했으나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켄턴 양이 보내온 편지를 곱씹어 읽으며 그녀를 찾아 나선 것이다. 스티븐스는 가족과 사랑마저 포기한 채 맹목에 가까운 충직함으로 달링턴 경을 섬기고 달링턴 홀을 지켜온 과거를 회상한다. 하지만 달링턴 경이 나치 지지자였다는 진실이 밝혀지자 꼿꼿이 지켜온 ‘위대한 집사’로서의 신념과 신뢰는 허망하게 무너져 버렸다. 스티븐스는 인생의 황혼기가 되어서야 지나가 버린 자신의 인생과 사랑을 깨닫는다.

 

10월19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서 2017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도서를 한데 모아 판매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인기작 《남아있는 나날》은 영화로도 잘 알려져

 

인생에서 정말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넌지시 말해 주는 이 작품은 “한 인간의 삶을 눈앞에서 보듯 설득력 있게 풀어낸 이 초상은 독창성·유머와 부조리가 뒤섞여 있으며, 궁극적으로 깊은 감동을 준다”거나 “인간성과 계급과 문화를 가슴 저미게 파고드는 수법이 마술에 가깝다”는 등 호평을 받으면서, 작가에게 본격적인 문학적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달링턴 홀이라는 극히 한정된 공간의 이야기면서 동시에, 그 공간을 찾아오는 숱한 정치가들의 시선을 통해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에 있던 격동기의 영국과 세계 정세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또한 대영제국의 구시대적 사고방식이 미국의 현실주의적인 기반으로 넘어가는 상황, 그 변화의 시대에서 시대착오적인 가치관에 얽매이는 것이 얼마나 부조리한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스티븐스가 고집스레 지키고자 했던 장인정신은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기엔 너무 꽉 막힌 ‘시대의 잔여’로 상징되는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젠 나이가 들어 황혼을 여유롭게 맞이할 수도 있는 스티븐스가 작품 말미에서 새 주인을 위해 헌신하겠다며 새롭게 각오를 다지는 부분이다. 젊은 날 놓쳐 버린 것들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나, 자신이 살아온 인생 전체를 부정하고 새로운 길을 가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기에, 그는 변화를 택하기보다는 다시 부조리하고 모순적인 일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스티븐스의 인생은 어쩌면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본계 영국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 © 사진=AP연합

 

장르 넘나들며 외로운 현대인의 모습 그려내 호평

 

특히 가즈오 이시구로는 인간의 본성과 문명 세계가 어떻게 어긋나고 삐걱거리는지를 잘 보여주었기에 찬사를 받았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유인 ‘세계와 닿아 있다는 우리의 환상 밑의 심연을 드러냈다’는 평가는 이와 상통한다. 그는 1995년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The Unconsoled)》, 2000년 《우리가 고아였을 때(When we were orphans)》에 이어 2006년  《나를 보내지 마(Never Let Me Go)》, 그리고 최신작 《녹턴(Nocturnes)》까지 인간과 문명에 대한 비판을 작가 특유의 문체로 잘 녹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이시구로의 작품 중 다수가 장르소설로 분류된다는 것이 눈길을 끈다. 어떻게 장르소설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느냐고 의아해할 수 있겠는데, 노벨상을 받은 수많은 작가들 중에서도 장르소설로 분류될 수 있는 책을 쓴 사람들은 많다. 1994년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의 《치료탑》은 정통 SF물로 분류된다. 2014년 수상자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기억을 잃은 사립탐정이 나오는 추리물이다. 작품성이 어떠하냐가 중요하지 장르가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SF든 추리든 장르는 그저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시구로도 장르소설로 구분될 수 있는 작품을 세 권 냈다. 복제인간을 다룬 SF물 《나를 보내지 마》, 영국과 상하이를 오가는 추리소설 《우리가 고아였을 때》, 고대 영국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 《파묻힌 거인》 등이다. 그중 영화로도 소개된 문제작 《나를 보내지 마》에는 장기 기증을 목적으로 만들어져 자신의 기원을 알지 못하는 복제인간들이 나오는데, 이 작품에서 외로운 현대인의 좌표를 읽을 수 있다는 데 오싹함마저 든다.
 

 

New Book

 

프라이싱  

헤르만 지몬 지음│서종민 옮김│쌤앤파커스 펴냄│2만5000원

 

‘가격이 모든 것’이라고, 독일이 낳은 초일류 경영학자는 주장한다. 생생한 최신 자료를 바탕으로 가격 결정의 과정을 다룬 내용으로, 제품 구상과 기획·출시 이후 마케팅·판매 등과 같은 과정에 관여하는 각 부문의 전문가들도 참고할 만하다.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평가하고 적합한 가격을 찾아 헤매는 소비자들에게도 유용한 기준을 제시한다. 

 

 

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엄일녀 옮김/ 루페 펴냄│1만4800원

 

 

섬에 있는 작은 서점을 배경으로 책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그린 소설. 독자들과 취향을 공유하는 특색 있는 동네서점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공동체의 문화를 재생시키고 있는 요즘 더욱 눈길을 끈다. 책과 사랑을 그린 가슴 뭉클한 소설이다. 절로 웃음이 나는 해프닝들과 반전과 비밀이 어우러져 작은 서점 하나가 세상의 보물이 될 수 있음을 느끼게 한다. 

 

 

아인슈타인 일생 최대의 실수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이덕환 옮김/ 까치 펴냄│2만원

 

 

전작(前作)에서 아인슈타인의 최대 성과를 다루었던 저자는 이번에는 아인슈타인의 실수로 눈을 돌려서 그의 잘못된 결정과 오만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인슈타인의 개인적 인생 궤적을 담담히 쫓아가며 그의 엄청난 과학적 성과와 그의 실수들을 함께 전하는 이 책은 천재 아인슈타인의 삶과 그의 명암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승마와 경영

최현우 지음│시그마인사이트컴 펴냄│2만2000원

 

 

‘승마에서 배우는 경영 인사이트’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경영과 승마의 연관성에 주목하고 있다.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면서 서울마주협회 감사를 역임한 저자는 오랫동안의 경영 관련 연구활동과 기업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승마를 신사업·조직·경영자 승계 등의 다양한 주제로 논리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승마가 경영에 주는 지혜와 교훈을 담고 있다.    ​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