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선수 생활 종지부, 이정후 매서운 신고식
  • 손윤 야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0.27 11:04
  • 호수 1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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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KBO리그 지는 별 뜨는 해

 

세상사가 그렇듯 야구 역시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신인 드래프트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해 프로야구 선수가 된다고 해도, 자의든 타이든 그 유니폼을 벗어야 할 때가 찾아온다. 그것은 팬의 마음을 사로잡은 인기 선수든 1군 무대를 밟지도 못한 무명용사든 마찬가지다.

 

올해 KBO리그에서 ‘은퇴’가 큰 화제를 불렀다. 삼성 이승엽이 올 시즌을 끝으로 일본을 포함해  쉼 없이 달려온 23년간의 선수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기 때문이다. 그는 2003년 한 시즌 최다인 56개의 홈런을 때려내는 등 KBO리그에서 불세출의 대스타다. 개인 통산 최다안타와 홈런, 그리고 타점 1위에 오를 정도로 장타력과 함께 일정 수준 이상의 정확성을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 그는 국제경기에서 결정적인 홈런을 자주 때려내, 공식 기록뿐만이 아니라 팬의 기억에도 각인된 드문 선수다.

 

10월3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이승엽의 은퇴식에서 이승엽이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또한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신조처럼 끊임없이 노력해 오랫동안 최고의 자리를 지킨 점도 야구 후배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인에게도 깊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한 야구인은 그의 인성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선수 시절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지만, (이)승엽이 타석 때 벤치에서 빈볼 사인이 나오면 어떻게 했을까. 정말로 던지기 싫겠지만 해야만 한다면 아마 가장 아프지 않은 부위, 즉 엉덩이 쪽에 구속을 줄여 던지지 않았을까. 이런 심정은 나뿐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 뛴 대부분의 선수가 그럴 것으로 생각한다. 그만큼 좋은 사람이다. 선후배를 떠나 선수 사이에서 존경받는 정말 드문 선수였다.”

 

실력과 인성, 어느 쪽이나 최고였던 선수니만큼, KBO리그도 그에 걸맞은 예우를 갖췄다. 리그 최초로 10개 구단이 합심해 ‘은퇴 투어 행사’를 펼친 것이다. 그 행사 때, 각 구단의 선물이 세간의 흥미를 끌기도 했다. 가장 먼저 매(?)를 맞은 한화는 보문산에서 채취한 소나무 분재를 선물했다. 이어 인두화(kt), 필드 잔디와 황금색 등 번호 유니폼(넥센), 여행용품을 포함한 여행 가방(SK), 도자기(두산), 황금 잠자리채(롯데), 외야 관중석(KIA), 자전거 모형(NC), 목각 기념패 스피커(LG), 순금 액자(삼성) 등 각 구단의 특징과 맞는 은퇴 선물을 준비해 그 의미가 더 컸다.

 

 

기록보다 기억에 남는 이호준

 

이승엽에게 가렸지만 NC 이호준도 올해를 끝으로 유니폼을 벗는다. 2004년 타점왕에 올랐지만, 프로 데뷔 이래 20년 동안 단 한 차례도 포지션별 최고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글러브를 받은 적이 없다. 하지만 득점 기회에서는 그 어떤 선수보다 강한 집중력을 발휘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기록보다는 기억에 남는 선수다.

 

여기에 그의 상징과도 같은 ‘로또준’. 야구팬 사이에서는 다음과 같은 우스갯소리가 있다.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 인생은 이호준처럼.” 쭉 평범한 성적을 기록하다가, FA(프리에이전트) 직전에 뛰어난 활약을 펼쳐 거액의 FA 계약을 따내서 나온 이야기다. 그런데 보통 그런 선수는 반짝 활약 후 ‘먹튀’ 행각을 펼치지만, 이호준은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다. 그래서 FA의 좋은 사례로 손꼽는 이가 적지 않다.

 

9월30일 경남 창원시 마산야구장에서 열린 KBO 프로야구 넥센과 NC의 경기가 끝나고 이호준 선수가 그라운드를 나서며 인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의 또 다른 별명은 ‘호부지’다. 이호준과 아버지를 합친 말로, NC의 어린 선수들을 잘 이끄는 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물론 그 별명이 나오게 된 계기는 그의 응원가가 《아빠의 청춘》이라서 그렇지만). NC 구단 관계자는 그에 대해 “책임감이 딱 어울리는 선수”라고 말한다. “허리와 무릎 등이 좋지 않지만, 아픈 내색도 하지 않고 경기에 나선다. 어린 선수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라고 말하는 것보다 몸소 실천해 보이는 것만큼 좋은 교재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최고의 리더다.”

 

전혀 다를 것 같은 두 사람. 그런데 공통점이 있다. 부인이 미인이라는 점과 함께 고교 시절에는 투타 모두 뛰어나, 프로에 들어올 때는 투수로 입단했다는 점이다. 이호준은 이승엽과 달리, 신인이던 1994년에 투수로 8경기나 등판한 적이 있다. 빠른 공이 매력적인 투수였다. 그러나 제구가 안 된다는 게 문제. 결국, 1996년부터 타자로 전향해 지금에 이르렀다. 경북고 시절 이승엽은 경남고 김건덕과 함께 고교 원투 펀치였다. 하지만 프로 입단한 뒤, 팔꿈치 수술을 받아 마운드에 오를 수 없는 상황. 그때 코치진이 그의 타격 능력을 살리게끔 한 것이 홈런왕의 시작이었다. 결국, 투수로 실패(이승엽은 부상으로 시작조차 하지 못했지만)한 것이 오히려 성공의 계기가 된 것이다.

 

 

베테랑 은퇴와 젊은 피 수혈

 

이승엽과 이호준을 비롯한 야구선수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인생의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찾아온다. 진학이나 취업, 결혼, 이혼, 이직, 창업 등과 같이 그 선택이 인생을 좌우하기도 한다. 혹은 앞에서 열거한 것처럼 거창한 계기가 아닌 작은 결정이 인생을 크게 바꾸는, 말하자면 ‘나비효과’를 부르기도 한다. 이승엽과 이호준이 그렇다. 투수에서 타자로의 변신이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그 당시, 어느 선수나 타자보다는 투수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투수를 하는 게 밝은 길이었다면, 타자는 불투명한 길이었다. 그런데 결과론적으로는 그 반대가 됐다. 만약 두 선수가 투수를 계속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과 같은 명성을 얻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인생의 선택’을 통해 성공을 거머쥔 두 선수. 은퇴라는 어려운 결정도 스스로 방울을 달았다. 박수 칠 때 떠나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특히 이승엽은 4년 연속 20홈런 이상을 때려내는 등 젊은 선수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성적을 거뒀다. 그런데도 은퇴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나지 않아 추한 모습을 보인 선배들과 같은 전철을 밟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어려운 결정을 내린 만큼, 은퇴식은 더 큰 아쉬움 속에서 치러졌다.

 

다만 일부 야구 관계자는, 겉으로는 축하하지만 복잡한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의 은퇴에는 후폭풍이 따른다. 슈퍼스타의 공백으로 인기가 떨어진 스포츠 종목이 적지 않다. 그런 걱정에 대해 대부분의 야구 관계자는 “기우”라고 잘라 말한다. “물론, 이승엽의 공백은 쉽게 메워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베테랑의 은퇴는 젊은 피의 수혈이라는 순기능도 있다. 그런 점에서 몇 년 후에는 새로운 스타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올해만 해도 스타 후보생이 여럿 나오기도 했다.”

 

© 사진=연합뉴스

 

특급 신인 이정후, 중고 신예 박세웅

 

이 관계자의 말처럼 올 시즌 KBO리그에는 새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특히, 넥센 이정후는 신인의 역사를 바꾸는 대활약을 펼쳤다. 신인 한 시즌 최다안타는 물론이고, 한 시즌 최다득점 기록을 갈아치우며, 타율 0.324, 179안타, 111득점, 47타점 등을 올렸다. 그런 활약에 야구계 안팎에서는 ‘바람의 아들’(아버지 이종범의 별명)에 이은 ‘바람의 손자’가 나타났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아버지와 아들뿐만 아니라 무서운 형제도 있다. SK 최정의 동생 최항은 1군 무대를 다소 늦은 6월말에 밟았지만, 37경기에 출장해 타율 0.321을 기록하며 형에 뒤지지 않는 재능의 편린을 나타냈다. “경험이 쌓여 선구안만 좀 더 개선된다면 좋은 타자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야구계 시각이다.

 

여기에 마운드에서는 중고 신예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롯데 박세웅은 이미 에이스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으며, KIA 임기영과 넥센 최원태, NC 장현식, 두산 함덕주, LG 김대현 등도 자기 이름 석 자를 팬들의 뇌리에 새겨 넣었다. 임기영은 부상으로 8승에 그쳤지만, 전반기 최고 투수였다(평균자책점 전반기 1.72/후반기 7.43). 최원태는 두 자릿수 승리를 거뒀고, 함덕주는 불펜에서 선발로 전환해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장현식은 제구는 좀 더 다듬어야 하지만, 마운드에서 거침없이 자기 공을 던진다. 대다수 야구 관계자는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롯데를 상대로 7이닝 1실점(비자책) 투구는 큰 성장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평가한다. 김대현 역시 리그를 대표할 에이스로 성장할 가능성을 나타냈다. 26경기에 나와 평균자책점 5.36에 그쳤지만, 7월 이후 쭉 선발 한 자리를 꿰차는 활약을 펼쳤다. 한 지방팀 투수코치는 “한번 가르쳐보고 싶은 투수다. 경험이 쌓여 마운드 운영 능력이 개선되면 특급 에이스로 성장할 재목으로 본다. 마운드에서 피하지 않고 싸움닭처럼 던지는 게 인상적이다”고 평가했다.

 

이들 외에도 김원중(롯데), 정현, 류희운(이상 kt), 이영하(두산) 등도 내일이 기대되는 유망주들이다. 또한, 삼성에서는 중고 신인들의 활약이 눈에 띄었다. 어려운 팀 상황 속에서 김헌곤과 김정혁, 황수범, 안성무 등이 잡은 기회를 살리며 자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옛것을 보내면 새것이 오는 법이다. 야구 역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들의 활약이 증명한다. 주축 선수들이 오랫동안 활약하면 더 바랄 게 없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동맥경화에 빠질 위험성도 있다. 항상 변화를 통해 새로움이 태동하는 법이다.

 

다만 올해 활약으로 이들이 스타가 된 것은 아니다. 스타는커녕 주전 자리도 아직 보장되지 않았다. 보장된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다. 이들이 이승엽과 같은 대스타가 아니라 주축 선수라도 되려면 꾸준한 성장세를 나타내야 한다. 올해 활약은 올해의 결과일 뿐이다.

 

한 야구 관계자는 스타의 조건으로 “5년간 꾸준히 뛰어난 성적을 올려야 한다”고 밝힌다. 신인왕이 100% 유력한 이정후를 비롯해 올해 두각을 나타낸 유망주들이 앞으로 어떤 성장세를 보일까. 과거, 한 해 반짝 활약한 뒤 소리 소문 없이 유니폼을 벗은 이가 적지 않다. 그런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이들이 더 크게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불세출의 대스타 이승엽의 은퇴가 아쉽지만, 그의 뒤를 쫓는 선수들이 적지 않다. 그들이 무사히 이승엽의 위치까지 도달하는 것은 로또에 당첨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다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지는 별이 있으니까 해도 떠오를 수 있다는 것. 야구는 물론이고 세상사도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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