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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연기 열정 지니고 떠난 배우 김주혁의 메모리얼

이제 쉼 없이 연기하고 싶다더니…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11.05(Sun) 14:00:00 | 14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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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27일 열린 제1회 더서울어워즈에서 김주혁은 《공조》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20년간 배우로 살았던 그가 받은 첫 영화상이다. 무대에 오른 김주혁은 “(그간) 로맨틱 코미디를 많이 해서 악역에 갈증이 있었다”며 기회를 준 《공조》의 김성훈 감독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어 “하늘에 계신 부모님이 주신 상 같다”는 말로,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이 순간은 앞으로 그의 연기 인생이 더욱 탄탄하게 펼쳐질 것에 대한 예고편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날 김주혁이 거머쥔 트로피는 그의 연기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것이 되고 말았다. 사흘 뒤인 30일 오후, 거짓말처럼 김주혁의 사고 소식이 날아들었다. 차를 몰고 서울 삼성동 영동대로를 지나던 그는 승용차가 돌연 전복되며 숨졌다. 향년 45세. 안타깝고 황망한 죽음이다. 팬들과 그를 아끼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생전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촬영 현장의 곁을 영원히 떠난 김주혁의 연기 인생을 되짚는 것으로 고인이 된 그를 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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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 어느 때보다 연기가 즐겁고 연기에 목마르다”

 

최근 김주혁은 그 어느 때보다 연기 열정으로 가득 찬 상태였다. 지난해 주연작 《뷰티 인사이드》와 특별출연했던 《나의 절친 악당들》을 시작으로 영화와 TV 드라마를 넘나들며 그가 올해까지 연기를 통해 대중에게 선보인 작품은 무려 여덟 편에 달한다. 여기에는 나름의 배경이 있다. 2012년 50부작이 넘는 드라마 《무신》(MBC)과 이듬해 135부작에 달하는 《구암 허준》(MBC)의 타이틀롤을 맡았던 김주혁은 매우 지쳐 있었다. 당시는 연달아 대작 사극을 책임져야 했던 그에게 숨 고르기가 필요한 때였다. 김주혁의 선택은 예능이었다. 데뷔 후 예능 프로그램에서 쉽게 모습을 볼 수 없던 그였기에 뜻밖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1박 2일》(KBS2)에서 보여준 친근하고 꾸밈없는 모습은 대중의 호감을 샀고, 김주혁은 연기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게 됐다.

 

이후 《1박 2일》에서 하차하고 연기 현장에 본격적으로 돌아온 김주혁의 행보는 과감하고 거침없었다. 과거 ‘한국의 휴 그랜트’로 불릴 만큼 로맨틱 코미디 분야에서 각광을 드러냈던 그였던 만큼 선택지에는 《좋아해줘》(2015) 같은 로맨스 영화도 있었지만, 확실히 전과 달라진 연기의 결을 보여줬다.

 

하나뿐인 딸의 실종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입성을 위해 야망을 불태우는 종찬을 연기한 《비밀은 없다》(2015), 북한에서 온 피도 눈물도 없는 악인 기성을 연기한 《공조》, 비밀을 감춘 경성 최고의 재력가 도진을 연기한 《석조저택 살인사건》까지. 김주혁이 보여준 모습은 연기 인생 2막이 새롭게 열렸다고 평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중 《공조》는 그의 첫 악역 연기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갖는 작품이다. 게다가 780만 명에 이르는 관객 수를 기록하며 그의 주연작 중 최고 흥행작이 됐다. 홍상수 감독의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2016)에 출연하면서는 함께 연기한 배우 이유영과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커리어에 있어서도, 개인사에 있어서도 좋은 방향으로 풀려가는 시기임이 자명했다. 9월 종영한 TV 드라마 《아르곤》(tvN)에서는 오직 팩트를 통해 세상에 진실을 전하고자 하는 올곧은 앵커 백진 역으로 시청자들에게 호응을 얻기도 했다. 그야말로 쉼 없는 부지런한 행보였다.

 

지난해와 올해 각종 매체 인터뷰를 통해 김주혁이 가장 많이 내비쳤던 말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연기가 즐겁고 연기에 목마르다”는 것이었다.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며, 이 기운을 지켜나가고 싶어 계속 연기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쉼 없이 연기하고 싶다”는 그의 마음은 끝내 영원히 이룰 수 없는 바람이 됐다.

 

잘 알려졌다시피 김주혁은 2005년 작고한 원로 배우 김무생의 아들이다. 동국대 연극영화학과 졸업 후 1년 동안 연극무대에 섰던 김주혁. 그는 1998년 S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이후 줄곧 아버지의 후광을 거부하고 혼자 힘으로 연기자의 길을 걸었다. SBS 드라마 《흐린 날에 쓴 편지》 《카이스트》에 조연으로 출연했던 그가 처음으로 주연한 작품은 박중훈과 호흡을 맞춘 영화 《세이 예스》(2001)다. 살인마 엠(박중훈)에 맞서 점차 내면의 광기를 끌어내는 정현을 연기한 그는 《싱글즈》(2003), 《홍반장》(2004) 등을 통해 충무로에 점차 안착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김주혁이 정신적으로 힘들어했던 2005년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배우로서 발돋움하는 해였다. 그해 방영한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SBS)을 통해 대중적 인기를 얻은 그는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2005)를 통해 본격적으로 주연의 반열에 올랐다. 특히 이 영화는 이후 오래도록 김주혁의 연기 행보에 영향을 미쳤다.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키스하기 위해 다가서다가 머쓱하게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고 말며, 선물로 꽃다발을 준비했지만 정작 그녀가 다가오자 꽃다발을 하늘로 냅다 던져버리는 소심하고 어리숙한 남자 광식. 이 캐릭터를 맞춤옷처럼 소화한 이후 김주혁에게는 한동안 ‘마음 여린 순정남’ 이미지가 따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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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멜로 위주서 벗어나 ‘악역’ 등 스펙트럼 넓혀

 

이후 그는 한동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멜로의 자장(磁場)에 머물러야 했다.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 박경원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청연》(2005)에서도 김주혁이 담당한 부분은 멜로였다. 그가 연기한 지혁은 경원(故 장진영)의 곁을 지키며 자신보다 하늘을 더 사랑하는 그녀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남자였다. 《사랑따윈 필요없어》(2006), 《아내가 결혼했다》(2008), 《방자전》(2010) 등으로 이어진 행보는 관객의 사랑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연기적 갈등을 느끼게 되는 신호탄이었다. 김주혁이 지난해 《공조》와 올해 《석조저택 살인사건》을 선보이며 “사람들이 내 악역 연기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다”고 털어놓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주혁의 죽음은 그가 자신의 벽을 깨고 한창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가던 와중이라 더욱 큰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그의 차오르던 연기 열정은 빼곡하게 자리한 차기작 리스트에서도 감지된다. 김주혁은 이해영 감독의 《독전》에서 중국 마약시장을 주무르는 거물 하림을 연기했고, 10월 촬영을 마친 《흥부》에서는 백성을 돌보는 정의로운 양반 조혁을 연기하며 또 한 번의 변신을 예고한 터였다. 이후 《열대야》(김헌 감독), 《짝꿍》(이지승 감독)까지 출연작을 결정해 뒀던 상태. 그가 1회 차만 촬영했던 《창궐》은 다른 배우로 대체될 예정이다.

 

동료 배우 및 함께 작업한 이들은 한결같이 김주혁이 참 좋은 사람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누구에게나 인간미와 배려가 넘쳤고, 진지한 자세로 연기를 대하는 태도가 늘 타의 귀감이 되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아까운 배우 김주혁. 그가 떠난 자리에는 그가 생전 연기한 캐릭터의 모습으로 영원히 살아 숨 쉬는 출연작들만이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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