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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가족을 잔혹하게 죽였나

용인 일가족 살해 사건 전말…경제적 궁핍이 극단적 범행 불러온 듯

정락인 객원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1.06(Mon) 14:30:00 | 14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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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살인극이었다. 언니가 며칠째 연락이 안 되자 동생(44)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언니 집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삼가동의 한 아파트였다. 동생은 아파트 관리실에 전화를 걸어 “언니가 며칠째 아무 연락이 안 된다. 벨을 눌러 안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집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동생 부부는 10월25일 저녁 답답한 마음에 언니 집을 찾아갔다. 현관문이 굳게 잠겨 있어 119에 도움을 요청했다. 밤 10시50분쯤 소방대원들이 나와 윗집 베란다 창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안방 옆 베란다에 반쯤 이불에 덮여 있는 것이 소방대원들의 눈에 띄었다. 이불을 들춰보니 그 안에 2구의 시신이 있었다. 어머니 이아무개씨(55)와 중학교 2학년인 아들 전아무개군(14)이었다. 이씨 여동생은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용인 동부경찰서 형사대가 출동해 보니 둘 다 가슴 등을 4차례가량 예리한 흉기에 찔린 채 숨져 있었다. 얼굴에도 여러 개의 흉기에 의한 상처 자국이 있었다.

 

집 안은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볼 수 없을 만큼 깨끗하게 정리된 상태였다. 경찰은 미세한 혈흔까지 감식할 수 있는 특수 시약을 사용했다. 그랬더니 육안으로 보이지 않던 혈흔이 집 안 곳곳에서 나왔다. 누군가 모자를 살해한 후 베란다로 옮겨 이불로 덮어놓았고, 범행 현장을 깨끗이 청소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경찰은 부엌 싱크대 안에서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흉기를 찾아냈다. 이것도 깨끗이 닦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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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한 계획하에 주도면밀하게 실행

 

시신에는 하얀 가루가 뿌려져 있었다. 경찰이 성분을 분석해 보니 밀가루였다. 범인은 범행을 은폐하고 증거 인멸을 위해 집 안을 깨끗하게 청소한 다음 시신에 밀가루를 뿌렸던 것이다. 이런 장면은 영화 《공공의적》에서 나왔었다. 막대한 유산을 노리고 부모를 살해한 패륜범이 범행 흔적을 지우기 위해 밀가루를 뿌리는 장면이 있었다. 범인은 이 영화를 모방했던 것이다.

 

미제로 남아 있는 2005년 대전 서구 갈마동 빌라 살인 사건의 범인은 방바닥에 밀가루 대신 부침가루를 뿌려 자신의 흔적을 지우려고 시도했다. 모자를 살해한 범인은 완전범죄를 노렸거나 최대한 범행을 감추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폐쇄회로(CC)TV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경찰은 아파트 CCTV를 확보해 사건발생 전에 이씨 집에 출입한 사람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CCTV 화면을 돌리던 중 10월21일 정오쯤 이씨의 장남인 김아무개씨(35)가 집에 들어가는 것이 포착됐다. 약 2시간 뒤에는 어머니 이씨와 동생이 집에 들어갔다. 같은 날 오후 5시쯤 김씨가 혼자 집을 나서는 모습이 보였다. 그 후 이씨 집에 들어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찰은 이를 근거로 장남 김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했다. 그가 10월21일 오후 2~5시 사이에 어머니와 동생을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는 치밀했다. 집 안을 청소하고 시신에 밀가루를 뿌려 범행 은폐를 시도했을 뿐 아니라 집을 나설 때 현관 비밀번호까지 변경했다.

 

아파트에서 나온 김씨는 렌터카(K5)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했다. 같은 날 오후 8시쯤 계부 전아무개씨(57)를 “강원도에 콘도가 싸게 나왔으니 보러 가자”고 유인했다. 전씨는 지인들에게 “강원도에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만 알렸다.

 

김씨는 강원도로 이동 중 평창군 졸음쉼터에 이르자 전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후 시신을 렌터카 트렁크에 실었다. 그런 다음 횡성군 둔내면의 한 콘도에서 하루를 묵은 뒤 차량을 주차장에 버렸다. 김씨는 범행 전날인 10월20일 아내 정아무개씨(32)와 두 딸(2살·7개월)을 데리고 이 콘도에 도착해 3박4일 일정으로 체크인했다.

 

김씨의 범행은 치밀하게 계획됐다. 어머니와 이부(異父)동생을 살해한 후 계부를 유인해 한적한 곳에서 죽였다. 이후 아내와 아이들이 묵고 있던 콘도에 차량을 버렸다. 김씨가 가족 세 명을 살해하는 데 걸린 시간은 5시간 정도에 불과했다.

 

김씨는 예정보다 하루 앞당긴 10월22일 체크아웃하고 콜밴을 불러 서울 강남구 삼성동 도심공항터미널로 이동해 항공권을 예약했다. 김씨 가족은 다음 날 인천공항으로 향했고, 원활한 도주를 위해 어머니와 이부동생 그리고 계부의 휴대전화를 공항까지 들고 갔다.

 

어머니 전화로 이모에게 연락이 오자 “여행을 간다”고 속였으며, 남동생의 학교 담임 전화에는 “주말에 갑작스레 해외여행을 갔는데 조만간 등교할 것”이라고 둘러댔다. 또 계부가 운영하는 주점의 종업원이 사장님을 찾자 “지금 술에 취해서 자고 있다”고 일일이 대응했다. 이로 인해 김씨는 10월21일 사건 이후 10월23일 출국하기까지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김씨는 도피 전 어머니 계좌에서 8000만원을 빼내 자신의 계좌로 이체했다. 공항에서 뉴질랜드달러로 환전한 후 오후 5시쯤 오클랜드로 출국했다.

 

경찰이 이씨 모자의 시신을 발견한 것은 김씨가 뉴질랜드로 출국한 지 이틀 후였다. 또 다음 날인 10월26일 이동경로 분석 등을 통해 범행 장소인 졸음쉼터를 찾아냈고, 그곳에서 계부인 전씨의 혈흔과 안경 등이 나왔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4시쯤 김씨가 묵었던 콘도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 트렁크에서 전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얼굴에는 둔기에 의한 폭행 흔적이, 목 부위에는 흉기로 찔린 상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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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도주 성공했으나 현지에서 체포

 

김씨는 오클랜드에 도착해 곧바로 월세 250만원이 넘는 호화주택을 임대했다. 검은색 벤츠 SUV와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도 구입했다. 김씨를 본 현지 교민들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행색이 초라해 보이는 사람이 짐이 전혀 없이 대저택에 이사 온 것이 아무래도 수상하게 보였다.

 

현지 교민은 10월27일 오후 3시쯤 뉴질랜드 영사관에 신고했다. 그런데 영사관 측은 수사권이 없다며 뉴질랜드 경찰에 신고하라며 적극 대처하지 않았다. 제보자는 직접 용인동부경찰서 전화번호를 인터넷에서 찾아 신고했다. 문제가 되자 오클랜드 한국영사관 측은 “대처 과정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사과했다.

 

경찰은 김씨에 대해 적색 수배령을 내렸다. 우리 정부는 김씨에 대한 공조수사를 뉴질랜드 경찰에 요청했다. 현지 경찰은 10월29일 오후 5시30분쯤(현지 시각) 김씨를 2015년 저지른 절도 혐의로 체포했다. 출국 5일 만이다.

 

이 과정에서 김씨가 과거 어학연수를 받은 적이 있고, 영주권자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우리 정부는 “김씨가 도주 우려가 있으니 구속해 달라”고 요청했고, 현지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45일 기한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렇게 해서 김씨의 신병이 확보됐다. 한국과 뉴질랜드 양국은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된 상태다.

 

현재 김씨는 2015년 8월5일부터 11월1일까지 4100달러(약 316만원) 상당의 가전제품을 훔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뉴질랜드 법에 따라 최고 7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김씨의 송환은 비교적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뉴질랜드 당국이 한국 정부의 협조요청에 적극적이고, 김씨도 변호인을 통해 자발적 송환 의사를 밝힌 상태다. 일단 김씨가 현지에서 절도 혐의로 체포된 만큼 현지 사법 당국의 절차에 따라 인도 시기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김씨가 주도면밀하게 일가족 세 명을 살해하고 뉴질랜드 도피까지는 성공했으나 현지에서 발목이 잡힌 형국이다.

 

이제 두 가지 의문점에 대해 경찰이 밝혀내야 한다. 첫째는 김씨 아내 정씨의 범행 가담 여부다. 정씨는 오클랜드 거주지에 머물다 11월1일 오후 두 딸을 데리고 인천공항을 통해 자진 귀국했다. 그녀는 귀국 이유에 대해 “가족들의 설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남편과는 달리 현지 영주권이 없는 정씨가 두 딸과 도피 행각을 이어가기 어렵게 되자 한국행을 결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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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아내도 범행 가담 여부 추궁

 

정씨는 공항 입국과 함께 체포돼 용인 동부경찰서로 압송돼 조사를 받았다. 정씨는 남편과의 범행 공모나 가담을 전면 부인했다.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가족들을 죽이겠다는 말은 자주 들었으나 실제로 실행에 옮길 줄은 몰랐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그러나 여러 정황상 정씨 말의 신빙성이 의심된다. 남편 김씨는 범행 과정에서 정씨에게 전화해 “둘 죽였다. 이제 하나 남았다”고 말했다. 범행 진행상황을 알려주는 듯한 내용이다. 김씨 가족은 사건 전후 머물던 콘도에서 예정보다 하루 앞당겨 급히 나왔다. 

또한 김씨는 국내에 머무르면서 일정한 직업이나 수입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친척 집을 전전하며 생활했다. 그런 남편이 갑자기 거액을 구해 뉴질랜드로 가자고 했을 때 아무런 의심 없이 무턱대고 따라 나섰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정씨가 처음부터 남편의 범행을 몰랐을 수도 있다. 이런 것은 경찰수사에서 밝혀야 할 대목이다.

 

둘째는 김씨의 범행 동기다. 현재로서는 ‘경제적인 문제’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김씨는 25세 때인 2008년 결혼한 뒤 6년 만인 2014년 이혼했다. 같은 해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 김씨는 아내와 아이 둘이 있었지만 경제적으로 어머니에게 의존해 왔다. 김씨의 주민등록상 주소지는 세종시였지만 이미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올해 초부터는 일정한 주거 없이 친척 집을 전전했고, 범행 한 달 전에는 숙박업소에 머물렀다. 주변에는 “여행을 다니고 있다”고 둘러댔다. 경찰은 김씨가 경제적으로 어머니 이씨와 갈등을 빚은 적이 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김씨가 이 때문에 어머니와 갈등을 빚은 후 극단적 행동을 한 게 아니냐는 가정이 제기되는 이유다.

 

경제적인 문제에 가정불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어머니 이씨는 김씨가 20살 되던 해인 2002년 지금의 남편 전씨와 재혼했다. 그 후 김씨는 어머니와 따로 살았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되고, 어머니와 갈등이 야기되면서 불만이 커졌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모든 상황을 어머니와 재혼한 계부, 그리고 이부동생 탓으로 돌려 일가족 모두를 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

 

서울 일선 경찰서의 한 강력팀장도 “내가 보기에는 경제적인 궁핍으로 막다른 길에 몰린 용의자가 극단적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살인과 도주 과정을 보면 오래전부터 살인 계획을 세웠던 것 같다. 그동안 경제적으로 의지했던 어머니가 자신의 뜻대로 해 주지 않자 불만이 많았고, 모든 문제의 근원을 어머니의 재혼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결국 극도의 불만과 반감이 겹쳐지며 어머니를 포함해 계부와 이부동생까지 죽인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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