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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판 ‘왕좌의 게임’

11명의 왕자 체포된 사우디는 지금 숙청 바람 부는 중

김회권 기자 ㅣ khg@sisajournal.com | 승인 2017.11.06(Mon)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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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 왕정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부패 혐의로 11명의 왕자와 4명의 현직 장관, 10명의 전직 장관이 구속되는 일이 벌어졌다. 여기에는 세계 최고 부호 중 한 명인 알왈리드 빈 탈말 왕자도 포함됐다. 그는 대형 투자회사인 킹덤홀딩컴퍼니(Kingdom Holding Company)의 소유주로 시티그룹과 뉴스코퍼레이션, 타임워너, 트위터 등 세계 주요 기업의 대주주이기도 해 ‘아라비아의 워렌 버핏’으로 불렸다. 11월4일 사우디 왕실은 “부패를 근절하고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국가의 미래는 있을 수 없다”는 칙령을 내렸는데 체포는 그 직후 일어났다.

 

살만 국왕은 체포 작전이 벌어지기 불과 수 시간 전에 왕세자를 위원장으로 한 반(反)부패위원회 설립을 지시했고 체포를 주도하게 했다. 영국 타임스는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 있는 리츠칼튼 호텔이 일시적으로 폐쇄됐는데 체포된 왕족을 수용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현재 다른 왕족들의 해외 도피를 막기 위해 자가용 비행기 전용 공항은 폐쇄된 상태다.

 

뉴욕타임스의 기사에 따르면 이번 체포는 살만 국왕의 아들인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에게 권력을 몰아주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는 리야드에 흐르는 분위기를 “왕좌의 게임 같은 공기에 휩싸여 있다”고 전했다. 올해 32세인 빈 살만 왕세자를 향해서는 “사우디를 현대화할 수도 있지만, 낭떠러지로 밀어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고 한다.

 

빈 살만은 공개 석상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사우디를 ‘온건한 이슬람 국가’라고 규정한 인물이다. 바꿔 말하면 지금의 사우디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은 차기 국왕이 유력한 그에게 청산 대상이 된다. “사우디 국민의 70%는 30세 이하다. 과격한 이슬람주의 아래서 우리 국민의 인생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그는 이런 개혁에 가속도를 내기 위해 반대 세력을 강하게 단속했다. 9월에는 보수적인 성직자와 학자, 활동가들을 대량으로 구속했다. 그리고 이번 조치는 반대 세력이 될지 모를 왕족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개혁’보다는 왕권을 향한 ‘부자(父子)’의 갈망을 원인으로 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미래권력을 둘러싼 사우디 왕실의 게임이 특히 올해 들어서 매우 격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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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격렬하게 벌어졌던 사우디의 왕권 다툼

 

지난 20년간 사우디아라비아의 안보와 국내 치안을 담당했던 무함마드 빈 나예프(58) 내무장관은 6월20일 사우디 메카에 있는 왕궁 4층으로 갔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82) 국왕의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원래 이날은 정치·안보위원회의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회의는 오후 11시에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몇 시간 전 살만 국왕은 나예프에게 전화해 회의에 앞서 만날 것을 요구했다. 

 

당시 ‘MbN'으로 불리던 왕세자였던 그는 국왕과 단 둘만 남은 자리에서 중요한 명령을 받았다. 살만 국왕은 조카인 나예프에게 “약물 중독이 네 판단력에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하며 “왕세자 자리를 내 아들인 모하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32) 부왕세자에게 양보하라”고 통보했다. 나예프의 약물 중독은 확인된 바가 없다. 사우디 고위 관계자는 로이터를 통해 “헐리우드 수준의 환상이다. 넌센스며 근거가 없고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살만 국왕이 자신의 아들을 왕위 계승자로 만들기 위해 약물 문제를 언급했다는 얘기였다. 

 

나예프가 왕세자직에서 물러나라는 명령과 함께 받은 건 ‘충성위원회’가 작성한 공식 문서였다. 살만 국왕의 궁정 고문들이 작성한 문서는 “나예프가 건강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2년간 치료를 받을 것을 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 그가 직무를 할 수 없으며 후임으로는 모하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를 임명한다”는 내용이었다. 

 

살만 국왕은 나예프를 만나기 전, 34명의 충성위원회 멤버에게 사람을 보내 서명을 받았다. 3명을 제외한 31명이 서명했다. 이런 상황을 모른 채 고립된 나예프는 국왕을 알현하고 있었다. 그가 왕궁에 있는 사이에 그의 호위 부대도 모두 교체됐다. 

 

왕세자 사임 명령은 나예프에게 큰 충격이었다. 일종의 ‘정변’이나 다름없었다. 로이터는 “나예프는 충동적인 행동이 많은 사촌동생(빈 살만)에게 자리를 빼앗길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빈 살만의 예멘 분쟁 대응과 공무원 급여 삭감 등이 정책적 실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자정을 넘은 새벽에 나예프는 결국 국왕에게 항복했다. 그는 국왕을 짧게 만난 자리에서 왕세자직에서 물러난다는 문서에 서명했다. 나예프가 왕궁을 떠날 때 새로운 왕세자가 될 빈 살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가는 길에 둘은 가벼운 포옹과 키스를 나누며 자리의 교체를 자연스럽게 연출했고 이 장면은 TV를 통해 사우디 전국에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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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세습에서 부자 세습으로

 

물러난 나예프는 사람들 앞에 나타날 수 없었다. 가택 연금 상태였고 가까운 친척 이외에는 그 누구도 만날 수 없었다. 권력의 중심에서 내려온 그는 원래 가족과 함께 스위스나 런던으로 가려고 했지만 국왕과 새로운 왕세자는 반대했다. 선택의 여지도 없이 그는 사우디에 남아야 했고 왕실의 통제 범위에 있어야 했다.

 

재빠른 왕세자 교체 뒤, 연로해 거동도 쉽지 않은 국왕은 아들에게 전례가 없을 정도의 권력을 위임했다. 뉴스위크는 “외교 관계자와 사우디의 정치·정보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그는 나예프의 양해를 얻지 않고 정치, 안보, 석유, 정보 등 사우디 주요 분야의 수장을 교체했다”고 보도했다. 연로한 국왕은 불과 2년 전에 즉위했지만 그동안 형제끼리 왕위를 물려받던 사우디에서 벌어진 첫 부자 세습의 시도를 재빠르게 처리했고 이제 그 꿈에 다가서고 있다.

 

왕위 계승 다툼의 전초전은 2015년, 나예프의 개인 궁궐이 해체되면서부터 시작됐다. 독자적으로 사람을 거느리며 세력을 구축하던 보금자리가 해체되자 나예프의 영향력은 감소했다. 반면 빈 살만은 아버지의 힘을 업고 측근을 요직에 배치했다. 심지어 당시 왕세자였던 나예프의 담당 부처인 내무부에도 개입해 아무런 통보 없이 관료의 임면권을 행사했다. 

 

사우디의 우방인 미국의 정권 교체도 왕실에 영향을 줬다. 나예프는 오바마 정부와 가까웠다. 알카에다 대응에 성공하며 미국의 강한 지지를 얻고 있었는데, 빈 살만 측은 반대로 트럼프 취임 후 그쪽과의 유대감을 강화했다. 로이터는 나예프 측근의 말을 빌려 6월의 왕세자 교체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과 견고한 관계를 쌓은 뒤 결행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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