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가지 키워드’로 본 2017 프로야구
  • 손윤 야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1.07 11:31
  • 호수 1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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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의 은퇴와 KIA의 V11

 

지난 10월30일, KBO리그는 KIA가 두산에 7대6으로 승리하면서 11번째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르며 그 막을 내렸다. 되돌아보면 여러모로 KBO리그에 빛보다 그림자가 짙게 깔린 한 해였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 3월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충격적인 예선 탈락을 한 데 이어 전직 심판위원의 부정과 한국야구위원회(KBO)의 비리로 야구계는 몸살을 앓았다.

 

그런데도 3년 연속 700만 관중을 돌파하며 프로야구는 최고 인기 스포츠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 시즌 마지막까지 치열한 순위 경쟁이 펼쳐지며 팬들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이를 포함해 이번 시즌, 그리고 앞으로 스토브리그에서 팬들의 관심을 모을 이슈를 5개의 키워드로 정리해 봤다.

 

10월3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한국시리즈 KIA 타이거즈 대 두산 베어스 경기. 우승을 확정 지은 KIA 김기태 감독과 선수들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1  ​LEESPECT

 

야구 관계자에게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은 악몽과도 같다. 프로야구의 암흑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당시 어느 구장이나 관중석은 벨로드롬으로 전락했다. 관중석이 텅텅 비어 자전거를 타고 다녀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프로야구가 끝 모를 암흑의 터널을 헤쳐 나오는 데는 이승엽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2003년 56개의 홈런을 몰아치며 ‘잠자리채’ 열풍을 몰고 오며, 야구장을 떠난 팬을 다시 불러들였다. 여기에다 국제대회에서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 홈런과 적시타를 때려내며 야구팬은 물론이고 국민에게 감동과 환희를 맛보게 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국민 타자’. 요컨대 이승엽이 있었기에 지금 프로야구의 인기가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이승엽의 은퇴. 그것도 시즌 전에 은퇴를 표명한 만큼, 그 예우에 관심이 쏠렸다. 프로야구계는 고심 끝에 메이저리그에서나 볼 수 있던 은퇴 투어를 실시했다. 이에 대해 모 구단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각 구단의 스타는 크게 보면 구단만이 아닌 야구계의 자산이다. 그 자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런 점에서 이승엽의 은퇴 투어는 삼성을 넘어 10개 구단 모두 그 자산을 활용할 수 있었다. 또한, 구단 우선(이기주의)이 아닌 리그의 번영이라는 큰 목표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이승엽은 자기 힘으로 마지막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10월3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은퇴 경기 첫 타석에서 우중간 펜스를 훌쩍 넘기는 2점 홈런을 쏘아 올렸다. 홈런왕다운 마지막이며 이승엽다운 스윙이었다. 여기에다 NC 이호준도 역대 포스트시즌 최고령 출장 기록(41세 8개월 13일)을 세우며 정든 유니폼을 벗었다.

 

 

 2  ​수상한 돈거래

 

야구계에서는 꽤 오래전부터 최규순 전 심판위원과 관련한 추문이 돌아다녔다. 도박에 빠져 야구인을 비롯한 관계자들에게 돈을 빌리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2013년 시즌이 끝난 뒤 소리 소문 없이 해고됐다. 그런 그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엠스플뉴스의 탐사 보도를 통해 최 전 심판위원이 구단들과 돈거래를 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두산이 자진해서 밝힌 데 이어 오리발을 내밀던 KIA와 삼성, 넥센도 금전 거래가 있었던 것이 드러났다.

 

한 구단 관계자는 “구단 처지에서는 심판이 무리한 요구를 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어느 정도는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법원 판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승부 조작이 아닌 돈을 빌리고 갚지 않은 혐의(사기)로 기소된 것이다. 프로야구계는 한숨을 돌릴 수 있는 결과다. 공정해야 할 심판의 부정은 리그의 근간을 흔드는 전대미문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KBO는 심판 시스템을 개선하는 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야구계 안팎의 시선은 냉담하다. “최규순 전 심판만 해도 꽤 오래전부터 소문이 퍼져 있었다. 그런데도 KBO는 제대로 진상 조사를 한 적이 없다. 해고도 뒷북 해고 아닌가. 게다가 그 과정도 깨끗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 처리를 해 온 이들이 내놓은 개선안이 효과가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KBO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야구인의 설명이다.

 

지금도 야구 사이트 게시판 등에서는 최 전 심판에게 돈을 준 구단은 매수 구단이라는 비난이 올라온다. KIA와 두산이 맞붙은 한국시리즈를 매수 시리즈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심판과 구단, 그리고 KBO에 대한 팬의 신뢰는 여전히 바닥에 떨어진 상황이다. 이 불신을 어떻게 회복하느냐는 앞으로 야구계의 큰 숙제가 될 듯하다. 

 

 

 3  ​ V-11

 

KIA가 2009년 이후 8년 만에 한국시리즈를 제패했다. 전신인 해태 시절을 포함하면 통산 11번째 우승이며, 한국시리즈 불패의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KIA 우승의 원동력은 신구 조화에 있다. 임창용·이범호·김주찬 등 베테랑의 활약 속에 임기영·김윤동·최원준 등 젊은 호랑이들이 주어진 기회를 살리며 자기 존재감을 드러냈다. 여기에 최형우의 FA(프리 에이전트) 영입은 물론이고, 알짜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에이스 양현종이 국외 진출보다는 국내, 그것도 KIA에 잔류할 뜻을 나타낸 만큼 KIA 왕조의 구축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올해 준우승에 머문 두산이 2년 연속 한국시리즈를 제패했지만, 과거 삼성이나 현대, 해태 등과 같은 강인한 맛은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KIA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KIA는 세대교체라는 큰 변화가 예고돼 있다. 베테랑과 달리 젊은 선수는 한 시즌 성적을 예상하기 어렵다. 과거 수많은 팀이 세대교체 과정에서 크고 작은 진통을 겪었다. 또 외국인 선수 3인방의 잔류도 불확실하다. 헥터와 버나디나 등이 없었다면 KIA 우승도 없었을 것이라는 게 야구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그런 점에서 현재 KIA 왕조 구축은 김칫국 수준일 뿐이다. 다만 세대교체가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면 올해 우승이 왕조의 출발점이 될 것은 분명하다.

 

이승엽이 10월3일 오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후 열린 은퇴식에서 동료선수들로부터 헹가래를 받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4  갈데

 

‘봄데’. 롯데가 매년 봄에만 반짝 잘한다고 붙은 별명이다. 항상 시범경기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둔 데 이어, 시즌 초반에는 순위표 윗자리를 차지한다. 다만 봄이 가고 슬슬 더위가 시작되면 자연의 법칙처럼 롯데의 순위도 쭉쭉 떨어진다. 지난해까지는 그런 팀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7월 중순 무렵까지는 7위였지만, 이후 믿기지 않는 경기력을 뽐내며 NC를 밀어내고 3위에 올랐다. 올해만큼은 가을 롯데가 패배하는 법을 잊은 듯했다.

 

‘진격의 롯데’, 그 원동력은 외국인 투수 듀오의 활약에 있었다. 레일리는 6월까지 부진했지만 7월 이후 무패의 투수로 변신했다. 여기에 시즌 도중에 돌아온 린드블럼도 빼어난 이닝 소화 능력을 보이며 팀에 힘을 불어넣었다. 한 감독 출신 야구인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애초 롯데는 5강 전력이었다. 이대호를 포함하면 외국인 선수를 4명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른 팀보다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전반기 부진했던 것은 외국인 투수의 활약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레일리의 부진에다 애디튼은 함량 미달이었다. 처음부터 외국인 선수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면 프로야구 판도도 크게 달랐을 것이다.”

 

‘봄데’가 아닌 ‘갈데’. 이 기운이 내년에도 이어질까. 그러기 위해서는 FA 자격을 취득한 집토끼를 단속하는 것은 물론, 팀의 약점을 보완하는 외부 영입에 나설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한 해 반짝 가을 야구를 잘한 것에 그칠지도 모른다.

 

 

 5  700억원

 

11월4일 KBO는 FA 자격 선수를 공시했다. ‘쩐의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최근 2년간 FA 시장은 가을야구만큼이나 뜨겁게 달아올랐다. 2016년 FA 계약 총액이 766억2000만원이었다. 올해는 3년 연속 700억원을 넘어 사상 최초로 800억원 시장이 열리는 게 아니냐는 견해도 적지 않다.

 

우선 어느 팀이나 군침을 삼킬 우수한 선수가 많다. 한국 복귀를 선언한 황재균은 물론이고, 새롭게 팀을 찾아야 하는 김현수와 오승환 등도 국내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양현종과 손아섭·민병헌·강민호·정근우·이용규 등도 FA 자격을 취득한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손아섭에 대해 신분을 조회했지만, 실제 진출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김현수·황재균과 관련해서는 10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금액이 오갈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여기에 양현종과 오승환·손아섭·강민호 등도 100억원을 노려볼 만한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다만 우수한 선수가 많아도 구단의 돈지갑이 열리지 않으면 FA 시장도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벌써 두세 팀이 크게 ‘베팅’할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다만 그 팀들이 원하는 선수나 포지션은 어느 정도 정해진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구단의 레이더에 걸리지 않은 같은 포지션의 선수들은 기대에 못 미치는 대우를 받을 가능성도 작지 않다.

 

한 구단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어느 팀이나 투수가 급한데 올해 FA 대상자 중에 투수 자원이 적다. 양현종과 안영명 정도다. 게다가 양현종은 거의 KIA에 잔류한다고 보고 있다. 투수가 아닌 야수에 좋은 선수들이 많다. 다만 지난해 최형우처럼 팀 타선을 크게 향상시킬 선수는 김현수나 황재균 정도다. 그런 점에서 생각과는 달리 조용한 스토브리그가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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