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수백 대의 컴퓨터가 캐내는 한 줌의 가상화폐
  • 강원 홍천·경북 경산=조유빈·공성윤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7.11.08 11:13
  • 호수 1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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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열기 달아오르며 주목받는 ‘가상화폐 채굴’ 현장

 

비트코인 하나의 가격이 사상 최초로 7000달러를 넘어섰다.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에서 비트코인의 하루 거래량은 3조6932억원에 달한다. 코스닥 거래 대금과 비슷한 수치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 거래에 대한 열기가 무섭게 달아오르고, 가상화폐를 획득하기 위한 문의도 폭주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가상화폐 획득 방식은 거래소 거래를 통해 가상화폐를 매수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외에 가상화폐를 직접 캐내는 방식도 있다. 일명 ‘채굴(mining)’이다. 가상화폐를 ‘캘 수 있다’는 얘기다. 마치 금광에서 금을 캐내듯이.

 

이렇게 가상화폐를 채굴하는 곳을 ‘채굴장’이라 부른다. 물론 국내에도 가상화폐 채굴장은 있다. 현재 운영되는 채굴장 수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최근 가상화폐 가치가 상승하면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개인이 운영하는 채굴장도 있고, 전문적으로 가상화폐 채굴을 위해 생겨난 기업도 있다. 도대체 가상화폐를 어떻게 ‘캐는’ 것일까. 그 실태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시사저널 취재진은 강원도 홍천과 경북 경산에 위치한 가상화폐 채굴장을 직접 찾아갔다.

 

강원도 홍천의 한 채굴장은 주식회사 에스엠이라는 회사가 운영하고 있다. 50평대의 채굴장에는 100여 대의 가상화폐 채굴기가 굉음을 내면서 돌아가고 있었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건물 내부에 들어서자 온기가 느껴졌다. 가상화폐 채굴기에서 나오는 열 때문이었다. 건물 외부와 연결된 4대의 환풍기가 내부 열기를 순환시키고 있었다.

 

경북 경산의 가상화폐 채굴장. 이곳에서는 가상화폐 거래 랭킹 2위인 이더리움을 채굴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공성윤

 

100여 대의 컴퓨터가 뿜어내는 열기와 소음

 

에스엠이 채굴장 위치를 강원도로 선정한 것도 채굴기에서 발생하는 열 때문이다. 비슷한 위도일 때 연평균 기온이 낮은 강원도의 특성을 활용한 것이다. 따라서 가을·겨울엔 별도의 냉각 시설이 필요 없을 정도다. 물론 채굴기 수가 더 늘어나거나, 날이 따뜻해지면 채굴기의 성능 저하와 부품 고장을 막기 위해 냉각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가장 많은 채굴장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에서도 산간 지역의 수력발전소 근처에 채굴장을 설립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차가운 공기를 끌어와 열을 식혀주는 것이 비용 면에서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가상화폐를 획득하는 과정을 왜 ‘채굴’이라 부를까. 쉽게 말해 가상화폐 채굴은 고성능 컴퓨터를 사용해 아주 복잡한 연산문제를 풀거나 암호를 해독하는 것이다. 문제를 풀어서 ‘블록’을 만드는데, 이 블록을 만든 보상으로 가상화폐를 받는 개념이다. 생성이 마음대로 되거나 화폐처럼 찍어서 발행되는 것이 아니고, 매장돼 있는 금을 캐는 것과 비슷하다는 점 때문에 이 과정을 채굴이라 부르게 됐다.

 

채굴기는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연산 작업을 수행한다. 디자인이 깔끔한 일반 PC 본체와 달리 채굴기는 발열을 최소화할 수 있는 외관 형태를 갖추고 있다. 그래픽카드를 꽂을 수 있는 전용 메인보드와 고용량 전력공급기, 문제를 푸는 실질적인 역할을 하는 칩이 모여 하나의 채굴기를 완성한다. 이곳에서는 현재 비트메인의 채굴기를 이용하고 있다. 비트메인은 세계 최대 비트코인 채굴 회사다. 2013년 창업한 비트메인은 중국 베이징에 본사를 두고 있는데, 자체 채굴장을 돌리면서 채굴기도 판매하고 있다. 전 세계 채굴기의 70%가 비트메인이 생산하는 제품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를 풀기 위한 연산장치로는 그래픽카드(GPU)가 주로 활용된다. 비트코인이 처음 만들어진 2009년에는 일반 CPU(중앙처리장치)를 탑재한 개인용 컴퓨터로도 충분히 채굴이 이뤄졌다. 채굴기가 늘어나고 채굴 효율성이 떨어지자, 이후부터는 한꺼번에 여러 개의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그래픽카드(GPU)를 탑재하게 됐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가격이 폭등하면서 가상화폐 채굴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RX580’ ‘GTX1060’ 등 일부 GPU 판매량이 크게 증가하며 품귀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올해 6월 서울 용산 전자상가에 GPU가 동이 나 가격이 폭등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GPU 가격이 급등하면서, 컴퓨터를 바꾸고 싶어 하는 개인이나 PC방 사장들이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일도 있었다.

 

 

“개인이 집에서 작업하면 전기료 폭탄 맞을 것”

 

경북 경산시에 채굴장을 운영하고 있는 가상화폐 솔루션 개발업체 주식회사 코인베스트 역시 GPU를 이용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230대의 컴퓨터가 가동되고 있다. 문제를 풀고 가상화폐를 분배받는 온라인 공간을 ‘마이닝 풀장’이라고 부른다. 일종의 광산 개념이다. 개별 광부(채굴자)들이 특정 광산(마이닝 풀장)에서 같이 가상화폐를 캐고, 이를 각자의 능력(컴퓨팅 파워로 ‘해시 레이트’라고 부른다)을 제공한 만큼 배분받는 방식이다.

 

이곳에서는 가상화폐 거래 랭킹 2위인 이더리움을 캐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마이닝 풀장에 로그인을 하고 채굴을 시작하면, 여러 개의 GPU가 탑재된 컴퓨터가 암호를 푸는 진행 상황이 화면에 나타난다. 예상 채굴량도 화면으로 볼 수 있다. 만약 하루에 0.04ETH(이더리움 기본 단위)를 캔다면 한 달에 1.3ETH를 캐게 된다. 이더리움의 당일 시세에 한 달에 캐는 양을 곱하면 한 달 수익을 대략적으로 예상할 수 있다. 11월3일 현재 이더리움의 시세는 33만원이다. 한 채굴기당 42만9000원의 수익을 내는 셈이다. 여기서 전기료와 운영비, 인건비 등을 제한 비용이 순수 수익이 된다. 그러나 순이익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채굴한 가상화폐를 바로 매도하지도 않을뿐더러, 시세 변동 폭도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인이 자신의 컴퓨터에 GPU를 장착해 채굴을 하는 것도 가능할까. 채굴은 할 수 있지만, 높은 소비전력이 문제가 된다. 이정한 코인베스트 대표는 “채굴기 한 세트가 소비하는 전기량은 시간당 평균 850Wh”라며 “하루 24시간을 돌리면 20.4kWh, 한 달이면 612kWh다. 이 정도 전기소비량이면 누진세가 적용되는 주택용 전기를 쓰는 가정은 요금폭탄을 맞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채굴량이 많이 떨어진 상황이다. 초기였다면 모르지만, 지금은 1~2대를 가정에서 돌릴 경우, 벌어들이는 가상화폐보다 전기요금이 더 많이 나오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통 채굴기 한 대가 한 달 동안 소비하는 전력은 700~1100kWh로, 일반 가정 소비전력의 2배를 웃돈다. 채굴기 규모가 1000대라고 가정할 때 한 달에 100만 kWh를 소비하는 셈이 된다. 열을 식히기 위한 냉각시스템까지 갖추게 되면 전체 소비전력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현재 채굴 사업은 등록 기준이 없는 신사업이기 때문에 채굴회사들은 서버 임대나 제조 사업으로 등록해 운영하고 있다. 관련법도 아직 없는 상황이라 산업용이나 농업용이 아닌 일반 전기를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비용이 저렴한 산업용 전기를 악용하거나 농업용 전기를 끌어다 쓰는 사례가 늘어나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다.

 

강원도 홍천의 한 가상화폐 채굴장. 이곳에서는 ASIC을 탑재한 전용 채굴기를 운영한다. © 시사저널 조유빈

 

채굴하게 되면 연산 난이도 더 올라가

 

일단 채굴기가 연산을 풀어 가상화폐를 획득하게 되면 연산의 난이도는 더 올라가게 된다. 문제가 풀기 어려워진다는 것은 곧 얻을 수 있는 채굴량이 줄어든다는 얘기다. 현재 채굴장에서 캐는 가상화폐가 대부분 이더리움인 것은 비트코인의 문제 난이도가 너무 높아졌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개발자는 100년 동안 2100만 개의 비트코인이 발행되도록 설계했는데, 발행량이 늘어날수록 채굴이 더 어려워지도록 했다. 비트코인은 이미 1700만BTC(비트코인 기본 단위) 정도가 채굴된 상황이다. 이더리움도 마찬가지로 채굴량이 늘어나면서 채산성이 줄어들었다. 에스엠 관계자에 따르면, 올 초에는 채굴기 한 대에서 한 달에 6~7개의 이더리움이 채굴됐지만, 최근에는 10분의 1 수준(한 달에 0.6개)으로 줄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채굴기 임대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채굴기를 팔고 관리를 해 준다고 수당을 받았다. 그러나 채굴량이 떨어지면서 지금은 수익이 나지 않게 되자 쓰던 GPU를 중고로 다시 내놨다”며 “GPU는 1년만 가동해도 능력이 떨어진다. 수명이 이미 떨어진 GPU를 채굴에 썼다는 것을 밝히지 않고 거래해 문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제는 GPU 대신 ASIC(주문형 특별 생산 반도체)을 탑재한 전문 채굴기까지 동원되고 있다. 에스엠의 경우 미국의 반도체 기업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 의뢰해 주문제작한 반도체 칩인 ASIC을 탑재한 전용 채굴기를 운영한다. 채굴업체들이 많이 사용하는 GPU 대신, 연산만 하기 위한 칩을 탑재해 채굴의 효율성을 높인 것이다. 이병주 에스엠 대표는 “7개의 알고리즘을 탑재한 칩을 사용해 채굴한다. 이 칩을 사용할 경우 18개 종류의 코인을 만들어낼 수 있다”며 “이제 특정 코인을 맹목적으로 채굴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코인들을 상대할 수 있게 채굴기도 발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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