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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가는 한국 축구, 브라질의 눈물 잊었나

히딩크 논란에 최악의 경기력까지…또 한 번의 월드컵 참사 예고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1.11(Sat) 14:00:00 | 14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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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26일. 상파울루의 코린티안스 아레나에서 벨기에에 0대1로 패한 한국은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 러시아와의 1차전에서 1대1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이어진 알제리전과 벨기에전에서 패하며 대회를 마감했다. 4년 전 남아공월드컵에서 최초의 원정 월드컵 첫 승과 16강 달성을 이뤘던 한국 축구는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는 혹평을 받았다. 역대 가장 많은 해외파로 구성된 대표팀은 모래알 조직력을 보였다. 한국 축구의 영웅인 홍명보 감독이 리더가 됐지만 ‘의리 축구’ 논란으로 대회 전부터 실패를 예고했다.

 

알제리전 패배 후 불같이 일어난 분노가 대표팀과 한국 축구를 향했다. 홍명보 감독은 예정된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자진 사임했다. 정몽규 회장을 비롯한 대한축구협회 수뇌부는 고개를 숙이며 재도약을 다짐했다. 벨기에전이 끝난 뒤 그라운드에서 서럽게 울던 손흥민은 “러시아에서는 이런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 다음 월드컵에서는 웃겠다”고 국민들에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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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전 티켓 구매 거부” 싸늘한 여론

 

러시아월드컵이 8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 축구는 세계에서 6팀만이 달성한 9회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브라질에서의 눈물과 다짐을 기억하는 이들은 적다. 러시아월드컵에 대한 기대치가 바닥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10월30일 축구회관 대회의실에서 신태용 감독은 11월 열리는 평가전 2연전에 나설 23명의 선수 명단을 발표했다. 감독 스스로 “이번에는 최정예 멤버다”라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콜롬비아와 세르비아라는 남미와 유럽의 강호를 국내로 불러들여 치르는 중요한 평가전임에도 흥행 분위기는 전혀 일지 않고 있다. 오히려 “티켓을 구입하지 말자” “무관중 운동을 펼치자”는 역풍이 불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 정부의 주요 과제인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축구협회를 언급할 정도다.

 

대표팀과 축구협회를 둘러싼 분위기가 급격히 냉각된 것은 불과 한 달 만이다. 브라질월드컵 후 대표팀의 새 선장이 된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이 아시안컵과 동아시안컵에서 성과를 낼 때만 해도 희망에 넘쳤다. 하지만 최종예선 들어 치열한 경쟁에서 슈틸리케 감독의 불안 요소가 터지며 본선 진출 실패 위기를 맞았다. 축구협회는 올림픽 대표팀과 20세 이하 대표팀에서 잇달아 실적을 낸 신태용 감독에게 위기 탈출의 임무를 맡겼다.

 

팬들이 특급소방수로 기대한 신태용 감독이 부임했지만 상황은 더 꼬여갔다. 운명의 최종예선 마지막 2경기를 치르는 과정에서 갖은 논란이 일었다. 이란에 이어 우즈베키스탄과도 0대0 무승부를 기록해 간신히 본선 진출에 성공한 뒤의 행동도 비판을 받았다. 3위인 시리아의 경기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본선 확정을 언급한 신태용 감독의 인터뷰와 헹가래, 젊은 선수들의 과도한 자축이 문제였다.

 

힘겹게 본선에 진출했지만 대표팀은 뜻밖의 논란에 부딪혔다. 한국 축구의 새 전기가 된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지휘자인 거스 히딩크 감독이 자신의 국내 에이전트인 ‘히딩크 재단’을 통해 대표팀을 맡아 러시아월드컵에 나서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장기 부진과 감독, 선수들의 언행 논란에 화나 있던 여론은 “히딩크 감독을 다시 모시자”며 급격하게 일어났다.

 

축구협회는 이러한 논란에 대해 “히딩크 감독이 공식적인 의사 표명을 한 적이 없다. 본선 진출을 성공시킨 신태용 감독을 신뢰한다”라며 일축했다. 실제로 10월에 있었던 국정감사에 출석한 노제호 히딩크 재단 사무총장은 “히딩크 감독이 원한 게 아니라 제가 먼저 제의한 것이 맞다”고 인정했다.

 

문제는 논란에 대한 축구협회의 미숙한 대응이었다. 이용수 부회장을 비롯해 협회 내부에 히딩크 감독과 직접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2002년 당시의 스태프가 있음에도 상황을 한 달 넘게 방관했다. 결국 10월초 이용수 부회장을 유럽에 파견해 히딩크 감독을 직접 만나 매듭을 지었지만, 들끓는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분위기 반전을 노렸던 대표팀의 유럽 원정 2연전은 거듭된 참패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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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조편성’ 우려가 현실로

 

결국 10월 FIFA 랭킹에서 한국은 중국에마저 추월당하고 말았다. FIFA 랭킹이 62위까지 추락해 57위의 중국에 21년 만에 뒤졌다. 러시아월드컵부터 FIFA는 랭킹으로 시드와 포트 배정을 결정한다고 발표한 상태다. 한국은 가장 낮은 4번 포트 배정이 확실시된다. 유럽 2팀과 남미 1팀을 만나는 최악의 조편성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2년 전부터 한국의 FIFA 랭킹은 50위 언저리를 맴돌았고 본선 진출 시 불이익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축구협회의 느린 대응은 우려를 현실로 만들었다.

 

최종예선이 끝나고 본선을 준비하는 기간에 가장 필요한 것은 신뢰와 성원이다. 국민들이 얼마나 대표팀의 동기부여를 높여주느냐에 따라 성과가 결정 난다. 그러나 러시아월드컵을 앞둔 현재는 불안감만이 대표팀을 둘러싸고 있다. 여러 상황을 볼 때 홍명보호가 실패한 전철을 따르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축구협회는 쏟아지는 비판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정몽규 회장은 10월20일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대표팀의 경기력 회복을 위한 대대적인 지원은 물론 한국 축구 전체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조직적 쇄신과 행정 개혁을 약속했다. 하지만 사과 기자회견 후 2주가 지나도록 구체적 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히딩크 감독 논란을 부추긴 김호곤 기술위원장이 11월2일 사임한 게 전부다.

 

정몽규 회장의 극도로 신중한 성향과 느린 대응을 아는 축구협회 내·외부 인사들은 스스로의 의지를 통한 개혁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냉정하게 지적한다. 면피용 기자회견과 기술위원장 사임으로는 국면 전환이 불가능하다. 신태용 감독과 선수들이 힘을 짜내 좋은 경기 내용과 결과를 내놓는다면 상황을 누그러뜨릴 수 있지만 관심과 응원이 사라진 지금은 이마저도 어려워 보인다.

 

한국 축구와 대표팀은 러시아월드컵에서도 국민들의 실망과 비난이라는 형벌을 받을까 두려워한다. 하지만 축구협회가 더 두려워해야 할 것은 그마저도 사라진 무관심이다. 산으로 가는 한국 축구는 백척간두의 위기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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