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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그리스 이야기에서 발견하는 오늘의 지혜

민주주의의 빛과 그림자에 대한 성찰, 시오노 나나미의 《그리스인 이야기 Ⅱ》

조창완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1.19(Sun) 15:30:00 | 14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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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민주주의 역사에 의미 있는 방점을 찍은 촛불시위가 시작된 지 1년이 흘렀다. 장은주 영산대 교수는 “우리의 허울뿐인 민주공화국에서는 지금까지 과두 특권 세력과 그 세력을 대변하는 정치계급이 전체 정치를 자신들의 부패를 은폐하고 사익을 추구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해 왔다. (중략) 지난 촛불혁명에서 시민들은 그 불편한 진실을 깨닫고 스스로가 나서 그런 상황을 바로잡고자 했던 것”(경향신문 기고)이라고 평가했다. 반면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촛불시위처럼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담론을 만드는 정치관은 위험하다”며 “정당을 통해 개인 및 집단들과 국가 사이에 대표의 체제를 강화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의 배경에는 해방 후부터 치열하게 논쟁하던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이 있다. 군인 출신 정치의 시대가 끝나고 진행된 김영삼 정부나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그리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뒤편에 완성된 이번 촛불 민주주의의 결과가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특히 트럼프나 아베 정부처럼 신자유주의를 맹종하는 세력과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바탕으로 한 중국식 엘리트 정치의 결론들이 더욱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시대에 대한 고민을 데칼코마니처럼 한 과거가 있다. 바로 고대 그리스가 민주정치의 꽃을 피우던 ‘페리클레스 시대’(기원전 461~429년)와 그가 죽고 나서 시작된 ‘우중정치(愚衆政治) 시대’(기원전 429~404년)가 그것이다. 이 기록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책 《그리스인 이야기 Ⅱ》가 출판됐다.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가 3권으로 완성하는 그리스 이야기의 두 번째는 ‘민주주의의 빛과 그림자’라는 부제에서 감지되는 고대 그리스의 정치에 대한 담론을 잘 살필 수 있다.

 

기원전 462년 마라톤에서 그리스 연합군을 통솔해 페르시아군을 격파했던 아리스티데스가 죽는다. ‘정의로운 사람’으로 불리던 그를 대신한 자리는 30대 페리클레스가 차지한다. 그는 경쟁자들에 비해 군사적으로 뛰어나지 못했지만, 군중을 설득하는 마력으로 이후 30년간 아테네 정치를 휘어잡는다. 그는 비슷한 연령대의 지도자들이 지배하는 스파르타와 페르시아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면서 민주정치의 거대한 기틀을 유지한다. 이들 국가의 가장 큰 특징은 한 사람이 전권을 휘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테네는 1년마다 선거를 통해 선발되는 10명의 ‘스트라테고스’(장군)가 집단지도체제를 구성했고, 스파르타도 5명의 ‘에포로스’(국정감독관)가 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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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이 신념 잃으면 ‘우중정치’로 전락

 

이런 집단지도체제는 사실상 지금 중국이 선택하는 상무위원을 통해 구현되는 집단지도체제와 닮았다. 그런데도 페리클레스가 33년이나 정권을 잡고, 그리스 민주주의 최고의 시대를 연 것은 국가 간 동맹을 통해 전쟁을 최소화하고, 문화를 중시해 리드하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문화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파르테논 신전이 이 시기에 만들어지고, 《안티고네》 등 다양한 문학작품이 쏟아진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평화는 영원할 수 없었다. 기원전 431년 테베에서 시작된 전쟁의 불씨는 404년까지 이어진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 전쟁의 승패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역병이었다. 아테네의 모든 화살은 페리클레스에게 쏟아졌고, 그는 기원전 429년 66세의 나이에 이미 역병으로 죽은 여동생과 아들 둘의 곁으로 갔다.

 

페리클레스가 떠난 후부터 그리스가 완전히 패망하는 기원전 404년까지는 그야말로 어리석은 군중들이 움직이는 우중정치의 시대가 됐다. 민주정치나 우중정치는 모두 대중이 주역이다. 하지만 두 정치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민주정치의 리더는 ‘민중이 자신감을 가지도록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면, 우중정치의 리더는 ‘민중이 마음 깊은 곳에 품고 있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선동하는 데 매우 뛰어난 사람’이라고 저자는 정리한다. 페리클레스가 떠난 후 그리스 정치를 이끈 이는 클레온과 니키아스 두 사람이었다. 이들 지배하에 아테네 정치는 ‘예리하게 추궁하는 야당과 거기에 쩔쩔매면서 뭔가 대책을 내놓으려고 애쓰는 여당’이 맡았다.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는 스파르타는 전선을 확대했다. 아테네는 알키비아데스가 후반에 노력했지만 결국 패망한다.

 

 

지정학적 결정을 강점으로 승화한 그리스인들의 지혜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가를 탐구했던 작가에게 그리스의 리더십 역시 가장 큰 고민거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명확한 리더가 있었던 로마와 달리 그리스는 스트라테고스라는 집단지도체제를 통해 움직였다. 물론 이 체제도 페리클레스 같은 특출한 지도자가 있었기에 유지할 수 있었다. 우리가 사는 당대 정치사는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긴 싸움이 있었다. 하지만 구소련의 붕괴 이후 정치 이데올로기는 그 특색을 잃고, 경제를 중심으로 한 헤게모니 경쟁이 더 커 보인다. 한국은 이런 가운데 민주정치의 틀을 유지하면서 국제 경쟁력을 유지·발전시켜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그리스 우중정치 시대는 자신의 정치에 대한 신념을 잃고, 방향을 잃은 정치가 비참한 말로를 가져올 수 있다는 교훈을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시기이기도 하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로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2014년 일본군이 과거 인도네시아에서 네덜란드 여성들을 위안부로 동원한 ‘스마랑 사건’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퍼지지 않도록 일본 정부가 손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여러 차례 왜곡된 역사관을 드러내기도 한 문제적 작가다. 이 책도 영웅주의와 엘리트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면이 눈에 띈다. 반면에 인류 역사상 누구보다 먼저 세계화를 지향하면서 지정학적 결점을 강점으로 승화한 그리스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당시 아테네와 스파르타, 페르시아의 지도를 보면 이상할 만큼 긴 전장(戰場)의 국경을 갖고 있다. 지금 이 시대도 그 변경을 갖고 있다. 한·미·일 동맹과 북·중·러 동맹 등으로 길게 전장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이야기에는 그 긴 전장에서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에 관한 지혜가 담겨 있다. 

 

 

New Book

 

 

《폭풍우》 

J. M. G. 르 클레지오 지음│송기정 옮김│서울셀렉션 펴냄│1만5000원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며, 현대 프랑스 문단의 살아 있는 신화로 불리는 르 클레지오가 제주를 배경으로 쓴 동명의 소설이다. 아버지를 모르는 소녀 준(폭풍우)과 어머니를 모르는 소녀 라셸(신원 불명의 여인)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우도’를 배경으로 한 묘사에서 “삼십 년이면 소가 수명을 다하는 세월이다”는 문구가 눈에 밟힌다.  

 

 

 

《구글버스에 돌을 던지다》 

더글라스 러쉬코프 지음│김병년·박홍경 옮김│사일런스 펴냄│1만7000원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직장이자, 디지털 자본주의의 총아인 구글이 돌팔매의 타깃이 됐다. 러쉬코프는 착취적이고 성장에 얽매인 경제 운영체제에서 문제의 근원을 찾는다. 기술은 발전해 인간의 허드렛일을 기계와 로봇이 대신하게 되었으나, 경제 프로그램의 근본 코드는 중세 말 권력 구조에 의해 인위적으로 탄생한 산업주의 경제 운영체계의 편향을 그대로 가져왔다는 것이다. 

 

 

《습의 시대》 

이현준·황태섭 지음│트러스트북스 펴냄│1만5000원

 

 

문과와 이과에서 다른 길을 걸어온 친구가 같이 인간의 미래를 생각해 쓴 책이다. ‘학’은 지식이나 정보를 배우는 명시적 지식이며, ‘습’은 그 내용을 몸으로 직접 익히는 내재적 지식으로 본다. 4차 산업혁명에 꼭 필요한 창의성은 수많은 지식들을 내재화하는 오랜 ‘습의 과정’을 바탕으로 서서히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내가? 정치를? 왜?》 

이형관·문현경 지음│한빛비즈 펴냄│1만5000원

 

 

두 언론인이 왜 국회의원들은 일은 제대로 안 하고 싸우기만 하는지, 진보와 보수가 뭐라고 편 가르지 못해 안달인지, 대통령은 왜 존재하는지, 영남과 호남은 왜 서로 못 물어뜯어 안달인지 등 최소한의 정치 상식을 준비했다. 모든 평범한 시민이 정치에 쉽게 다가가도록 최대한 객관적인 정보와 민주 시민이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 등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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