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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질수록 주변을 더 챙겨온 음식들

[김유진의 시사미식] 입동 즈음에 등장하는 김장과 추어탕에 얽힌 사연

김유진 푸드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1.19(Sun) 11:30:01 | 14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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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온다. 뺨을 에는 찬바람이 온몸을 훑어 내린다. 이런 날은 다른 계절에 비해 체감 중력이 강하다. 절기로는 입동(立冬). 모두가 외로움을 타는 계절이기도 하다. 열아홉 번째 절기니 이제 다섯 개만 더 지나면 해가 바뀐다. 예전에는 입동을 앞뒤로 열흘 사이에 한 김치가 맛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추웠던 시절의 이야기다.

 

30여 년 전만 해도 시장 끄트머리나 동네 어귀에 무·배추 장이 섰고, 새벽녘이면 좀 더 달고도 매운 재료를 구하려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몰려든 사람들이 쏟아내는 두터운 입김에 새벽시장의 열기는 한층 달아오르고, 흥정이 길어지고 말의 강도가 세지면 안개처럼 쏟아지는 입김에 앞에 선 사람의 형체 분간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구겨진 지폐로 값을 치르고 손수레로 옮긴다. 이후 벌어지는 일들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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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食 중 단연 최고 음식은 김장김치

 

씻고 절이는 과정이 끝날 때쯤이면 난다 긴다 하는 손맛을 가진 일가친척들이 하나둘 등장한다. 이모·고모·숙모들의 바쁜 손길이 썰고 다지고 버무리고 바른다. 온종일 진을 빼고 나면 비계가 넉넉하게 붙은 돼지고기를 삶았다. 노란 배추속대에 김치소를 잔뜩 발라 두텁게 썬 고기 한 점을 감싼다. 와그작 씹히는 소리가 고스란히 귓전에 울린다. 24절기식(食) 중 최고는 단연 김장김치다.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기란 쉽지 않다. 얼굴이 새빨개진 이모 일당이 돌아와 아랫목에 몸을 누인다. 목욕탕 때밀이 투어로 이어지는 연례행사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그땐 그랬었다. 추운 겨울을 든든히 버틸 김장이 끝나야 비로소 한 해가 마무리되는 것이다.

 

우리 생활에 김장이 얼마나 중요했으면 ‘김치지수’라는 것까지 만들었겠는가. 김치지수란 김치 담그는 총비용을 지수화한 것이다. 4인 가족 기준, 배추(20포기)·무(10개)·고춧가루(1.86㎏)·깐마늘(1.2㎏)·대파(2㎏)·쪽파(2.4㎏)·흙생강(120g)·미나리(2㎏)·갓(2.6㎏)·굴(2㎏)·멸치액젓(1.2㎏)·새우젓(1㎏)·굵은소금(8㎏) 등 13개 품목의 재료를 전통시장이나 대형 유통업체에서 구입하는 비용을 지수화한다. 최근 5년에서 최고·최저인 2년을 제외한 3년간의 평균 가격을 기준 지수 100으로 한다. 이상이면 비용이 상승한 것이고, 이하면 구매비용이 하락한 것이다. 만약 김치지수가 85라면 배추와 무·고추·마늘 등 김장 재료 소비가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요즘 김장은 많이 다르다. 지구가 더워지고 있어 김장 시즌도 많이 늦춰졌다. 이처럼 기후는 또 다른 문화를 만든다. 더울 때보다 추울 때 주위를 살피기 마련이다. 추운 지방의 사회적 거리가 짧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복더위보다 입동 즈음에 주위를 더 챙긴다.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적이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외로움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도 그랬다. 이즈음 치계미라는 단어가 자주 백성들 입에 오르내렸다. 사또의 밥상 찬값으로 주는 뇌물을 이리 불렀다. 비선실세들의 입에나 오름 직한 이 단어가 민초들에게까지 통용된 데는 근사한 이유가 있다. 양로잔치.

 

언제 적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며 환갑잔치만큼이나 희귀해진 말이다. 하지만 그 시절엔 심심치 않게 들리던 말이다. 봄가을이면 양로잔치를 베풀었는데, 있는 집 없는 집 가릴 것 없이 십시일반 치계미를 걷고 동네 어르신들을 모셔다 잔치를 벌였다. 얼굴이 상기될 정도로 넉넉히 음식과 술을 대접한다. 만수무강하시라는 속뜻이 담겨 있다. 형편이 여의치 않은 고을에선 도랑탕이 이를 대신했다. 지금말로는 추어탕이다. 냇가의 돌들을 들추면 살이 피둥피둥 찐 누런 미꾸라지들이 미동도 없이 잠을 자고 있다. 없이 사는 동네의 청년들일수록 미꾸라지들의 은신처를 귀신처럼 찾아낸다.

 

 

미식(美食)은 인간과 사회의 거울

 

서울 청계천변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추어탕 노포들이 남아 있는 데도 이유가 있다. 조선시대 상업은 관의 통제를 받았다. 금난전권은 육의전과 시전상인의 탐욕을 그대로 드러낸다. 조선 후기 난전이 급속도로 성장하자 위협을 느낀 기득권층들은 정부와 결탁했다.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추어탕집들은 막강한 백그라운드가 이들을 보호했다. 상당한 특권이란 내의원에 한약재를 납품하는 걸 말한다. 지네·두꺼비·뱀 등을 잡아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권리와 추어탕을 독점적으로 팔 수 있는 영업권이 그것이다. 청계천 다리를 중심으로 영역을 나눠 가진 거지 패거리들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을 우리는 꼭지라고 부른다.

 

서울은 특이하게 추어탕이 아니라 추탕이라는 단어를 썼다.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고 삶는 게 특징이다. 흉측하다고 손도 못 대는 사람도 많지만, 그 깔끔한 맛에 매료되면 중독되고 만다. 소고기로 육수를 내고 유부와 두부·버섯, 그리고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는다. 무의식 속에 들어 있는 추어탕과는 거리가 있다. 육개장에 가깝다는 의견도 있지만 모르는 소리다. 고추기름은 물론이고 느끼함도 찾을 수 없다. 1970년대 남북회담에 참석했던 월북한 북측 인사가 노포의 이름을 대며 존재 여부를 확인할 정도로 한번 먹어보면 잊기 어려운 맛이다.

 

이에 비해 전라도식은 훨씬 더 진하고 묵직하다. 삶은 미꾸라지를 뼈째 갈아 된장과 들깨물을 넣고 끓인다. 밥을 말고 나면 수프보다는 스튜의 농도에 가까워진다. 반면 경상도 스타일은 길이 다르다. 미꾸라지를 삶아 뼈와 가시를 바른 다음 살을 으깨고 배추·토란대·숙주나물·고사리를 넣어 끓인다. 칼칼함을 중화시켜주는 들깨가루가 들어가지 않아 맛이 한층 날카롭고 예리하다. 한소끔 끓고 나면 고추와 방아잎을 넣은 뒤 마지막에 산초가루를 친다. 화장품 냄새가 난다며 고개를 돌리는 타 지방 사람들과는 달리 경상도에서는 이 향이 빠지면 추어탕으로 치지 않는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 만든 음식도 이렇게나 여러 방식으로 전해지는 데서 보듯 미식은 자연과 기후가 이끈다. 흐르는 사계절 사이사이 절식(節食)이 있고, 매일매일을 상식(常食)이 받친다. 미식(美食)은 또한 인간과 사회의 거울이다. 이유 없이 폼 나고 근사한 게 아니다. 그렇기에 미식을 이해하려면 사람을 알아야 한다. 누가 왜 어떤 이유로 먹는지를 밝히는 것이 미식이다. 지난 20주간 어렵고 까다로운 시사미식을 풀어왔다. 바닥까지 꺼내 놓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졸고를 실어주신 시사저널과 눈길 주신 독자 여러분께 허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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