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폭로전’ 방아쇠 당긴다
  • 소종섭 편집위원·안성모 기자 (asm@sisajournal.com)
  • 승인 2017.11.20 10:58
  • 호수 1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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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위적 공세에 위기감 고조…MB가 쥐고 있는 반격 카드

 

날은 추워졌고 밤은 길어졌다. 밤의 길이는 심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누구에게는 길어도 짧고, 누구에게는 짧아도 길다. 요즘 긴 밤을 더 길게 느낄 만한 이가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MB)이다. 2013년 퇴임했으니 퇴임한 지 4년이 지났다. 아마 지금처럼 밤이 긴 적은 없었을 것 같다. 하루하루 새로운 의혹이 언론에 보도된다. 그중에는 이미 알려진 철 지난 얘기도 있고, 새롭게 제기되는 의혹도 있다. 어느 것이든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검찰에 소환해 조사하라”며 MB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MB는 “이것은 정치보복이다”라며 강하게 맞받았다. 신-구 정권의 갈등, 적폐청산-정치보복 프레임 전쟁이 본격화했다. MB 측에서는 “앞으로는 참지 않을 것이다” “우리도 정보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 과연 자신에 대한 검찰의 칼날에 맞서 MB는 어떤 카드를 내놓을까.

 

이명박 전 대통령이 11월12일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적폐청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압박 강도 높이는 검찰

 

현재 MB는 사각 파도를 맞고 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중심으로 진행된 ‘국정원 댓글 사건’이 하나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관련된 ‘군 사이버사 댓글 사건’도 있다. 최근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유행어를 낳은 ‘(자동차부품업체) 다스의 실소유주 의혹’도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이 밖에 국정원의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련해서도 의혹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해외 비자금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MB 퇴임 후 정가에서는 온갖 소문이 나돌았다. MB가 한 대기업을 통해 중동에 거액의 비자금을 마련했다는 소문도 그중 하나다. 이와 관련해 친이계(친이명박계) 좌장으로 ‘MB 정권 2인자’로 불렸던 이재오 늘푸른한국당 대표는 “군사정권 시절도 아니고 해외에 몇 백억씩 빼돌린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그냥 떠도는 말일 뿐이지 불가능한 얘기다”고 반박했다.

 

비자금 소문의 배경이 되는 이른바 ‘사자방(4대강, 자원외교, 방산) 의혹’도 현재진행형이다. 이와 함께 각 부처에서 진행하는 ‘적폐청산 TF’ 활동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도 알 수 없다. 그야말로 전방위 수사라고 할 만하다. MB는 이들 험난한 고개를 넘을 수 있을까.

 

최근 검찰의 칼날은 구속된 원 전 원장과 김 전 장관을 넘어 MB 최측근 인사들을 향하고 있다.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이 일단 드러난 타깃이다. 이 전 수석은 청와대 재직 시절 방송 제작과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 전 비서관은 군 사이버사 활동의 청와대 보고와 관련해 실무 창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원세훈·김관진·이동관·김태효 등 MB 측근 인사들을 최대한 압박해 MB의 혐의를 밝히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이 한 발 한 발 다가서자 MB 측은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이동관 전 수석은 “세상에 어떤 정부가 그런 댓글을 달라고 지시하겠느냐. 대한민국 대통령이 그렇게 한가한 자리가 아니다”라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촛불집회 1주년(10월29일)을 앞둔 10월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이명박심판 범국민행동본부’ 관계자 등이 촛불집회를 열고 ‘MB구속’이라는 글씨를 만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MB에 대한 공세가 갖는 성격

 

현재 펼쳐지고 있는 MB에 대한 공세는 몇 가지 성격을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여권이 주장하는 ‘적폐청산’이다.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의 댓글은 법을 위반한 것이다. 어떤 변명으로도 합리화할 수 없다. 국정원이나 군이 정치에 개입하는 일은 절대로 있어선 안 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적폐청산’이 힘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적 노림수도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년 지방선거는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으로 치러지는 대규모 선거다. 그 결과는 향후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동력을 좌우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폐청산’을 내세운 강력한 사정 드라이브는 내년 상반기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검찰 소환조사를 앞둔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이 11월16일 전격 사의를 표명하자 야당은 일제히 공정 수사를 위해 당연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현 정권 핵심 인사에 대한 검찰 조사가 정치권을 겨냥한 대대적인 사정의 신호탄이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미 친박계(친박근혜계) 핵심인 최경환 의원과 원내대표를 지낸 중진 원유철 의원 등 자유한국당 소속 유력 정치인들이 검찰 수사망에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더 큰 그림을 그려볼 수도 있다. 이미 탄핵돼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MB마저 비리 혐의로 구속될 경우 보수 세력의 정치적 기반이 상당 부분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향후 진보 정권의 장기 집권 토대를 더욱 공고히 하는 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위기에 몰린 보수 세력이 재결집하는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그런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MB 정권 시절인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것과의 관련성이다. 여권 인사들 가운데는 이 문제를 거론하며 MB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주장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MB 측이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MB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전전 정권까지 올라가 적폐청산을 한다는 건 결국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한풀이 아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盧 수사 때 확보한 자료 공개 가능성

 

이러한 전방위적 공세에 MB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참모들을 불러 장시간 대책회의를 한 것이 벌써 여러 번이다. MB 퇴임 후 세 그룹의 모임이 자연스럽게 결성됐다. 장·차관을 지낸 인사들과 청와대 참모진, 그리고 친이계 의원 모임이다. 드러나게 만나지는 않았지만 필요할 때면 유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최근 들어 이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가만있을 수 없다” “어디 두고 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MB 측에서는 일단 강한 여론전으로 맞서고 있다. 선두에는 이동관 전 홍보수석과 김효재 전 정무수석이 서 있다. 김효재 전 수석은 11월14일 불교방송 인터뷰에서 “검찰의 행동은 정의롭지도 않고 공평하지도 않다고 보고 있다.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저희들도 그다음 행동을 결정할 것이다”고 말했다. 맞대응할 카드가 있으며 속수무책으로 밀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전 수석도 11월15일 바레인에서 MB를 수행하고 귀국하면서 “MB가 곧 입장을 낼 기회가 있을 것이다”라며 추가 대응을 시사했다.

 

그렇다면 MB 측에서 준비하고 있는 비장의 카드는 무엇일까.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은 ‘노무현’이다. MB 정권 시절 대검 중수부에서 진행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확보했던 비리·비위 관련 자료가 있다면 이것을 공개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MB가 최근 재임 시절 민정수석 등과 회의를 한 것으로 알려진 점은 시사적이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수사는 더 진행되지 못했다. 앞서 노 전 대통령과 가족, 인척 그리고 측근들이 수사 타깃에 올랐었다. 핵심은 ‘박연차 파일’이 될 가능성이 있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을 적극 후원했던 인물이다. 일각에서는 야권 유력 인사가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과 해외에서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이 전 부장은 지난 7월 몸담았던 로펌에 사직서를 내고 그다음 달 미국으로 출국해 아직까지 귀국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6월12일 이인규 당시 대검 중수부장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박연차 게이트’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文 대통령 직접 겨냥할 수도

 

MB 측에서 노무현 정권의 국정원 특수활동비 등 사용 내역을 들고나올 가능성도 있다. 이미 일부 언론이 2007년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과 관련해 당시 김만복 국정원장이 국정원 특수활동비 1000만 달러를 북쪽에 전달했다는 의혹을 보도한 적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기 때문에 이 문제는 문 대통령에게도 불똥이 튈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MB가 문 대통령을 직접 겨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MB 측에서는 문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공세를 주도한다고 보고 문 대통령을 직접 공격하는 방법을 택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문 대통령으로서도 전임 대통령과 맞서는 상황이 되면서 정치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역으로 MB 입장에서는 이런 구도가 형성되기를 바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책임을 문 대통령에게 돌려 맞불을 놓으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정보에 밝은 한 야권 인사는 “당시 변호를 책임졌던 문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게 된 노 전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아 불행한 일이 발생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문 대통령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수세에 몰렸던 MB 측이 실제 폭로전에 나설지는 아직 미지수다. MB 측에서 상대에게 치명상을 안겨줄 정보를 갖고 있는지, 있다면 과연 어떤 정보인지도 아직은 알 수 없다. 특별한 것이 없으면서 여론전을 펼치는 압박용으로 ‘정보’를 거론했을 수도 있다. 11월13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511명을 대상으로 리얼미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적폐청산’에 공감하는 국민은 65%, ‘정치보복’에 공감하는 국민은 26.3%로 나타났다. MB로서는 어떤 카드를 내밀든 불리한 여론 지형이라는 거대한 벽에 먼저 부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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