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을 홀린 한국영화들
  • 이석원 스웨덴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1.20 13:06
  • 호수 146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28회 스톡홀름국제영화제 홍상수 감독 《밤의 해변에서 혼자》 등 한국영화 5편 상영

 

유럽에서 한국영화는 고품격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프랑스나 독일, 이탈리아 등 이른바 세계 3대 국제영화제(칸․베를린․베네치아)가 열리는 나라에서 한국영화는 우수한 작품성과 함께 재미까지 갖춘 영화로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틱 3국과 크로아티아 등 발칸이나 동유럽 국가에서도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은 깊다. 거기엔 홍상수․박찬욱․김기덕, 이른바 ‘홍박김’으로 통하는 3인 감독의 역할이 크다. 한국의 K팝(K-pop)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이들에 대한 유럽 사람들의 관심이 지대했다.

 

그러면 스웨덴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은 어떨까? 지난 8월12일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열린 주스웨덴 한국대사관 주최 ‘스톡홀름 코리아 컬처 페스티벌’에서 만난 스톡홀름 대학교 재학생 미카엘 뢴스트룀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하나도 빼지 않고 다 본다. 그의 영화만큼 철학적 깊이가 깊은 영화는 쉽게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스웨덴 출신 거장 잉마르 베르히만 감독의 고향인 웁살라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있는 스웨덴 청년 세르게이 비도로프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영화학도가 됐다”며 “내가 본 한국영화는 작가주의적 요소와 재미가 공존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스웨덴 청년들의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그런데 지금 스톡홀름엔 또 다른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일고 있다. 11월8일 시작된 제28회 스톡홀름국제영화제에 한국 영화 5편이 선을 보였기 때문이다. 

 

11월8일 개막한 제28회 스톡홀름 국제영화제 포스터


스톡홀름 시내 중심 노르말름 광장에 놓인 스톡홀름 영화제를 홍보 영상. © 사진=이석원 제공

 

한국영화 5편 출품…스웨덴 관심 고무적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장편 경쟁부문인 ‘오픈존(스웨덴 영화비평가협회 심사로 베스트 필름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홍상수의 연인’ 김민희를 지난 2월 베를린 국제 영화제 여우주연상의 주인공으로 만든 그 영화다.

 

비경쟁부문이지만 필름 마케터들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는 섹션인 ‘트윌라이트존’에는 김옥빈․신하균 주연으로 국내 개봉 때 120만 관객을 동원했던 정병길 감독의 《악녀》와 설경구와  임시완이 주연을 맡고 변성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그리고 김명민과 변요한이 주인공을 맡은 조선호 감독의 《하루》가 소개됐다. 

 

또 다른 경쟁부문인 단편영화 섹션엔 최근 한국 영화팬들 사이에서 심상치 않은 관심을 모으고 있는 김수영 감독의 《능력소녀》가 올랐다. 지난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매진을 기록하며 관객들에게 놀라운 충격을 안겨준 작품이다.

 

역시 이들 작품에 대한 스웨덴 영화팬들의 관심도 남달랐다. 특히 영화제 기간 동안 스톡홀름에서 관객들과 직접 만남을 갖기도 한 정병길 감독과 김수영 감독은 스톡홀름 시민들로 하여금 한국영화에 특별한 느낌을 갖도록 도왔다.

 

11월11일 스톡홀름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가진 정병길 감독과 김수영 감독은 스웨덴 시민들이 보인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에 고무적이었다.

 

특히 정병길 감독은 “스웨덴 영화 관계자로부터 《악녀》의 내년 스웨덴 개봉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며 “(이를 계기로) 한국영화가 스웨덴에서도 좀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그는 “앞으로 어떤 작품이 될지는 모르지만, 스웨덴의 특별한 풍경을 배경으로 촬영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 감독은 스톡홀름에서 영화를 공부하는 스웨덴 청년들을 만난 경험담도 얘기했다. 그와 만난 스웨덴 영화학도들에 대해 정 감독은 “인구가 적은 스웨덴에서 상업영화를 하기 쉽지 않은 여건인데도 상당히 프로페셔널한 느낌을 받았다”며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도 높은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단편영화 《능력소녀》로 생전 처음 유럽에서 열리는 국제 영화제에 참석한 김수영 감독의 감회는 남다르다. 장편 상업영화 데뷔를 앞두고 있는 마당이라 더 그렇다. ‘부산국제단편영화제’를 비롯해 ‘부천판타스틱 영화제’ ‘정동진독립영화제’, 그리고 ‘전북독립영화제’에 초청되는 등 한국 내에선 이미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지만 해외에서 열리는 국제 영화제는 지난 10월 대만국제영화제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이번 영화제 비경쟁 부문 ‘트윌라이트존’에 초청된 영화《악녀》의 정병길 감독과 경쟁 부문인 단편영화 섹션 후보로 오른 영화 《능력소녀》의 김수영 감독이 스웨덴 관객들을 만나기 위해 직접 스톡홀름을 방문했다. © 사진=이석원 제공

 

유럽 내 한국영화 새 시장 될 가능성 커

 

김 감독은 “(《능력소녀》에 대해) 예술성도 있지만 독특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면서 “심사위원들이 상업영화와 다른 측면에서 독립영화의 독특함을 평가해 줘서 수상의 기회를 얻고 싶다”고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김 감독은 순전히 자신의 노력으로 이번 영화제에 참가했다. 직접 부산 창조경제혁신센터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 영화제 출품비를 충당했고, 공포영화에 대한 섹션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초청을 받을 수 있었다.

 

인구가 1000만 명에 불과한 스웨덴은 사실 한국영화에 있어 매력적인 시장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어지간한 한국의 배급사들은 스웨덴에서 한국영화가 상영되는 것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스웨덴 영화 시장은 인근 노르딕 국가인 덴마크와 노르웨이, 핀란드와 아이슬란드 영화 시장까지 아우르는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스웨덴과 교류가 활발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틱 3국’까지 한국영화의 새로운 시장 거점이 될 수 있다. 이들을 모두 합치면 인구가 3000만 명이 넘기 때문에 결코 작은 시장이라고 할 수 없다. 게다가 이들 지역은 영화와 관련한 정서가 한국영화와 흡사한 면도 지니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제28회 스톡홀름국제영화제에 한국영화가 5편이나 진출한 것, 그리고 스웨덴 관객들을 만나기 위해 한국 영화감독들이 스웨덴을 찾은 것은 스웨덴 입장에서나 한국 영화 입장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러므로 이번 스톡홀름국제영화제가 한국영화의 북유럽 진출을 위한 유의미한 족적(足跡)이 될 거라는 평가들이 나온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