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흥행, 예상하셨나요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11.24 23:57
  • 호수 1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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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력과 스타 캐스팅이 흥행과 직결된다는 통념 깨트려

 

2017년 영화계는 유난히도 깜짝 흥행작이 여럿 등장한 해로 기록될 만하다. 그 선두에는 역시 《범죄도시》가 있다. 2004년 가리봉동 일대에서 활개 치던 조선족 범죄조직을 일망타진한 대한민국 형사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11월16일부터 IPTV 극장 동시상영 서비스를 시작한 이 영화는 이미 극장에서만 673만 명이 관람했다.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흥행 순위 3위, 역대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 흥행 순위 3위다. 청불 영화 기록의 경우, 2위인 《내부자들》(2015)이 707만 명을 동원한 바 있어 《범죄도시》가 이 기록 역시 뛰어넘을 수 있을 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마동석의 《범죄도시》, 젊음의 힘 《청년경찰》

 

《범죄도시》의 흥행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추석 시즌에 나란히 개봉한 경쟁작들이 워낙 쟁쟁해서였다. CJ E&M의 투자·배급작 《남한산성》은 이병헌과 김윤석 등 스타 캐스팅으로 일찌감치 화제를 모은 데다, 사극은 전통적으로 명절 시즌에 강세를 보인 장르라는 점에서도 기대 주자였다. 게다가 또 한 편의 경쟁작이었던 외화 《킹스맨: 골든 서클》은 1편의 기록적 흥행에 힘입어 올해 개봉 외화 중 가장 강력한 흥행세를 보일 작품으로 손꼽혀 왔다.

 

그러나 관객의 입소문은 모든 판도를 뒤집었다. 개봉 전 시사로 영화를 접한 관객들을 중심으로 호쾌한 액션과 유머가 적절하게 버무려진 작품이라는 입소문이 줄을 잇기 시작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개봉 첫 주 관객몰이에 주효했다. 작품으로 증명하겠다는 초반 마케팅 전략이 성공한 셈이다. 《범죄도시》의 제작 규모는 순제작비와 마케팅 비용을 포함해 70억원 정도다. 공격적인 물량 공세는 불가능했던 상황. 극 중 마동석과 함께 형사를 연기한 허동원 등의 배우들은 직접 관객들이 남긴 평에 일일이 댓글을 달며 입소문 마케팅에 가세했다.

 

영화 《범죄도시》 © 메가박스㈜플러스엠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흥행 동력은 배우들이다. 극악한 폭력배 두목 장첸을 연기한 윤계상의 극 중 말투가 개봉 후 SNS를 중심으로 급속히 유행으로 번져갈 만큼 그의 연기 변신도 출중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심에 있는 건 마동석. 인간적 매력이 넘치는 데다 슈퍼히어로 같은 정의로움과 힘을 갖춘 형사가 범죄자들을 화끈하게 응징하는 설정은 관객들의 환호성을 부추겼다. 속이 시원할 정도로 가차 없이 살인마를 응징하는 《이웃사람》(2012)의 혁모, 1000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베테랑》(2015)의 카메오 ‘아트박스 사장님’, 좀비 잡는 영웅으로 나선 《부산행》(2016)을 통해 차곡차곡 완성된 마동석의 ‘정의로운 주먹’ 이미지가 십분 발휘된 결과, 이 영화에는 ‘장르가 마동석’이라는 관객들의 호평이 쏟아지는 추세다.

 

여름 극장가에서 맹활약하며 565만 관객을 모은 《청년경찰》도 깜짝 흥행을 거둔 한국영화. 믿는 구석은 오직 학교에서 배운 전공 지식과 젊음뿐인 경찰대 학생 두 명이 우연히 목격한 납치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그린 청춘 액션영화다. 동 시기 경쟁작이었던 《택시운전사》와 《군함도》 《혹성탈출: 종의 전쟁》과는 달리 ‘젊고 유쾌한 영화’라는 차별점을 전면에 내세웠다. 주연을 맡은 박서준과 강하늘은 극장가에서 안정된 티켓 파워를 가졌다고 말하기엔 이른 감이 있는 배우들이었지만, 호쾌한 액션과 유머 넘치는 대사 호흡 등을 통해 안정적으로 극을 이끌었다는 평을 받았다. 《범죄도시》와 《청년경찰》의 사례를 통해 올해 한국영화계는 스타 마케팅 없이도, 거대 투자자본이 아니어도 이야기만 재미있다면 작품의 힘으로 흥행 판도를 뒤바꿀 수 있다는 교훈을 그 어느 때보다 톡톡히 얻은 셈이다.

 

영화 《청년경찰》 © 롯데엔터테인먼트

 

속설 여럿 깨진 외화 깜짝 흥행작들

 

다큐멘터리에도 모처럼 깜짝 흥행 바람이 불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새천년민주당 국민경선 과정을 되짚은 《노무현입니다》는 정권 교체 이슈와 맞물리며 185만 관객을 동원하는 대박을 터뜨렸다. 이 영화는 역대 다큐멘터리 영화 기록을 연일 새로 써 내려갔다. 개봉 10일 만에 다큐 사상 최단 기간 100만 돌파, 역대 다큐 최고 오프닝 스코어(7만8397명), 개봉 3일 만에 손익분기점인 20만 관객 돌파 등 기록 행진을 이어갔다. 그 외에 뉴스타파 최승호 PD가 《자백》(2016)에 이어 또 한 번 선보인 다큐 《공범자들》은 26만 관객을 동원하며 선전했다. 언론을 장악하며 공영방송을 망친 주범을 고발하는 이 다큐는 MBC와 KBS 파업의 정당성을 알리고 공영방송 정상화의 첫걸음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외화 시장에도 깜짝 흥행은 있었다. 빛을 발한 장르는 호러. 5월 개봉한 《겟 아웃》은 스타 캐스팅 하나 없이 전국 213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했다. 흑인 남자친구가 백인 여자친구 집을 방문해 벌어지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북미 개봉 당시에도 ‘흑인이 주인공이면 흥행이 어렵다’는 속설을 깨고 흥행했던 상황. 당초 배급사인 UPI 코리아는 한국 개봉을 염두에 두지 않았으나, 관객들의 개봉 요청이 쇄도하는 바람에 뒤늦게 개봉을 확정했다. 관객들 사이에서 영화 속 설정들로부터 인종 차별을 둘러싼 미국의 오래된 상징과 은유들을 발견하는 재미까지 더해지며 입소문 덕을 톡톡히 본 경우다.

 

영화 《킬러의 보디가드》(위)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 제이앤씨미디어그룹 © NEW

인형의 저주를 둘러싼 이야기를 그린 《애나벨》(2015)의 속편 《애나벨: 인형의 주인》은 ‘관객들이 깜짝 놀라는 바람에 들고 있던 팝콘이 극장 안 여기저기 날아다닌다’는 등의 생생한 관객평이 줄을 이으며 193만 관객을 모았다. 이 호러 영화 역시 스타 캐스팅은 전혀 없었다. 라이언 레이놀즈와 사무엘 L 잭슨 주연의 《킬러의 보디가드》도 폭발적인 입소문을 타고 예상치 못한 흥행을 기록한 영화다. 8월30일 개봉한 이 영화는 《택시운전사》와 《청년경찰》 등 여름 영화의 공세가 차츰 잦아들던 막바지에 등장해 쉴 새 없이 웃음이 터지는 주인공들의 입담과 시원한 액션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같은 날 개봉한 뤽 베송 감독의 SF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가 물량공세와 초반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전국 51만 관객 동원에 그친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선전(善戰)이다.

 

한편 올해는 일본 영화가 모처럼 재미를 본 해이기도 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이 300만 관객을 모았고, 최근 극장가에서 잔잔한 흥행을 이끌고 있는 로맨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또한 ‘일본 영화는 안 된다’는 최근의 통념을 개고 흥행에 성공했다. 이 같은 깜짝 흥행은 더 이상 영화의 규모나 자본력, 스타 캐스팅이 흥행과 무조건적으로 직결되는 첫 번째 요소가 아님을 보여준다. 참신한 소재를 바탕으로 통쾌한 재미를 안길 수 있는 영화라면 얼마든지 선전할 수 있음을 박스오피스 결과가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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