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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하 위민정신’ 사라진 ‘경찰의 영웅 만들기’

흉상 제막식 이철성 청장 불참…치안감 추서, 비석 오기 등 바꾸지 않아

정락인 객원기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11.28(Tue) 09:30:06 | 14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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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22일 오전 11시 전남 무안군 삼향읍 전남지방경찰청에서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강제진압과 발포명령을 거부했던 고 안병하 전남경찰국장(경무관)의 흉상 제막식이다.

 

안 경무관의 흉상은 청동과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제작은 5·18광주민주화운동 사적지 표지석과 김대중 전 대통령 동상 등을 만든 김왕현 동신대 산업디자인과 교수가 맡아 진행했다. 행사장에서 만난 김 교수는 “훌륭한 분의 흉상을 제작하게 돼서 영광이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안 경무관의 부인 전임순 여사(85)를 비롯한 유족들과 5·18민주화운동 단체장, 경찰유족회 등 많은 내빈들이 참석했다. 안 경무관의 삼남 호재씨는 유족 대표 인사말을 통해 “아버님께서 살아 돌아오시지는 못했지만 흉상으로 예전 직장에 복귀하셨다”며 남다른 감회를 밝혔다.

 

안 경무관의 흉상은 전남경찰청 1층 로비에 세웠다가 광주 금남로 옛 전남도청이 복원되면 전라남도경찰국 건물로 옮겨질 예정이다. 이에 앞서 지난 8월 경찰청은 ‘올해의 경찰영웅’으로 안 경무관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시민을 보호하고 경찰 정신을 지킨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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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바뀐 후 챙기기 나서

 

지금까지 경찰은 정권의 눈치를 보며 5·18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5·18을 거론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했다. 그리고 경찰의 명예를 지킨 안병하 경무관과 그의 가족들을 외면했다. 이랬던 경찰청이 올해 들어 ‘안병하 영웅 만들기’에 나섰다. 왜 그랬을까. 정치적인 맥락과 연결 지을 수 있다. 지난 5월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경찰에 ‘인권 친화적 경찰을 구현하라’고 주문했다. 또 5·18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반드시 진상규명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시절에 임명된 이철성 청장은 현 정부에서 입지가 약하다. 끊임없는 교체설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와중에 언론에서 ‘안병하 경무관’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일었다.

 

5·18광주민주화운동과 안 경무관은 독재에 항거하고 불의에 맞섰던 5·18의 ‘시민정신’과 시민의 안전을 지키고, 시민의 안전을 위해 부당한 명령을 거부했던 ‘위민정신’의 상징으로 부각됐다. 그때부터 경찰청은 ‘안병하 영웅 만들기’에 나섰다.

 

그러나 경찰청은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보여주기식에 급급하다 보니 진정성에 의심이 가는 행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고인에 대한 예우는 엉망이라고 표현될 정도였다. 우리나라의 ‘경찰 역사’는 미군정청을 포함하면 올해 72년이 된다. 지금까지 경찰을 빛낸 많은 인물이 있었으나 공식적으로 ‘경찰영웅’ 칭호를 받은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안병하 흉상 제막식은 72년 경찰 역사상 가장 의미 있고 상징적인 행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날 행사에 참석했던 다수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일이 있었다. 겉으로는 ‘경찰청 공식행사’를 표방하고 있으나, 실제 행사 준비 과정이나 행사 진행은 ‘전남경찰청’ 행사로 축소된 모양새였다. 이철성 경찰청장뿐 아니라 경찰청 차장도 참석하지 않았다. 박운대 경무인사기획관(치안감)이 참석했으나 청장을 대신해 인사말조차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경찰청은 “여러 일정상의 이유”를 들었으나 처음부터 경찰청장의 참석은 예정돼 있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남경찰청은 흉상 제막식 보도자료를 배포한 후 각 언론사 기자들에게 별도로 안 경무관 관련 사진 2장을 보냈다. 문제는 이 중 시사저널에서 보도한 사진을 타 언론사 보도용 사진으로 배포한 것이다. 유족에게 받은 사진에 디자인 요소를 가미한 것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사진 도용’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전남경찰청은 “유족에게 사진을 받아서 배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실수”라고 해명했다. 확인 작업을 소홀히 하면서 고인을 기리는 뜻깊은 행사에 흠집을 내고 말았던 것이다. 인터넷에서 검색 한 번만 했더라도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

 

경찰청은 안 경무관의 예우에도 소홀했다. 안 경무관은 보안사에 끌려간 후 직위 해제될 당시 치안감 승진 대상 1순위였다. 그는 강제해직된 뒤 25년 만인 2005년 순직자로 인정받아 국립 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관례대로라면 순직자에게는 1계급이 추서된다. ‘명예로운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예우하는 차원에서다.

 

안 경무관은 순직자로 인정된 지 12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경무관’이다. 유족들은 “그동안 수차례 치안감으로 추서해 달라고 경찰청에 요구했으나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영웅으로 흉상 제막식을 했지만 그의 계급은 여전히 ‘경무관’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경찰청은 “지금까지 특진 추서는 재직자에 한해 ‘공무상 사망’일 경우에 해당됐다. 퇴직자에게는 해당되지 않아 (치안감) 추서가 안 됐었다. 연초부터 법 개정을 추진해 최근 인사처에서 통과됐다. (경찰청) 인사과에서 절차를 밟고 있다”고 말했다. 안 경무관 유족들은 경찰청에 서운한 마음을 떨칠 수 없다고 한다. 진즉 추진했다면 흉상 제막식 때는 치안감으로 행사를 치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안 경무관은 국립 서울현충원 경찰묘역에 잠들어 있다. 그런데 묘비를 본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순직’이 아닌 ‘별세’로 표기돼 있기 때문이다. 부인 전임순 여사는 “순직 발표 전에 이장 날짜를 잡으면서 ‘별세’로 표기했다. 당시 경찰청에서도 다 알고 있었는데 이장하고 바꾸지 않아 지금까지 이렇게 된 것”이라며 “지금 경찰청 사람들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장 후 경찰청에서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 ‘별세’로 표기된 것이 지금까지 방치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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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경찰청 ‘5·18보고서’ 일부 왜곡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함평경찰서 소속 4명의 경찰관이 순직했다. 전남도청 인근 노동청 주변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던 시위대 버스가 경찰 저지선으로 돌진하면서 발생했다. 이들의 시신 중 2구는 사망한 지 7일이 지나서야 수습됐다. 그때까지 기동복을 착용한 채로 현장 근처 길가에 방치됐다. 사후 수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이들의 순직 처리에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처음에는 ‘경찰관 신분으로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하다가 사망하였기 때문에 순직 처리가 안 된다’는 황당한 이유로 반려됐다고 한다. 나중에야 간신히 현충원에 안장됐다는 것이다.

 

경찰청은 이들의 희생정신 또한 널리 알리고 최고의 예우로 대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평가나 조명을 하지 않았다. 그동안 경찰청은 나 몰라라 했다. 살아생전 안 경무관은 이들 부하들의 순직을 가슴 아파했다. 하지만 강제해직,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투병생활, 감시 등으로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평소 가족들에게 “순직한 부하들을 챙기라”는 유지를 남겼고, 지난 5월13일 시민단체인 SNS시민동맹과 고 안병하 유족 공동주관으로 37년 만에 ‘5·18광주민주화운동 순직경찰관 추모식’을 개최했다. 여기에는 경찰유족회, 광주시청 관계자가 참석하고, 5·18기념재단 등에서는 추모 화환을 보냈다.

 

경찰청, 전남경찰청, 함평경찰서는 이날 행사를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며 동료들 일이었는데도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경찰 측에서 추모식 행사를 위해 나온 직원이 없어 현충원을 담당하는 동작경찰서 정보관이 추도사를 대신 낭독했다. 이런 문제가 지적되자 추모식 다음날 부랴부랴 이철성 청장 이름으로 추모화환을 묘소에 가져다놓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얼마 후 더 깜짝 놀랄 일이 생긴다. 10월11일 전남경찰청은 ‘5·18민주화운동 과정 전남경찰의 역할’이라는 보고서를 펴냈다. 경찰이 보고서 형식으로 5·18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여기에는 순직경찰관 4명에 대한 내용도 포함됐다. 안호재씨의 말을 인용해 이들에 대한 추모행사도 언급돼 있다. 그런데 추모식 주체를 ‘경찰유족회’로 적고 있다. 마치 경찰단체가 추모행사를 개최한 것처럼 안씨의 말과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강성복 전남경찰청장은 흉상 제막식에서 “전두환 회고록이 사실을 왜곡하면서 경찰과 광주시민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남경찰청이 보고서의 일부 내용을 왜곡하면서 시민단체의 순수한 뜻과 안 경무관의 유지를 훼손한 결과를 낳았다. 경찰의 이중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안호재씨는 흉상 제막식에서 “37년 전인 1980년 아버님과 전남경찰국 직원들은 광주에서 시민의 목숨을 구하고, 경찰의 명예를 지키려 경찰관의 본분을 다했다”며 “그러나 치안본부는 아버님과 전남경찰국 직원분들을 버렸다”고 말했다.

 

안병하 경무관은 진정한 5·18의 영웅이다. 하지만 이런 영웅을 대하는 경찰은 진정성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이철성 경찰청장과 강성복 전남경찰청장이 정치적인 상황과 시대의 이슈에 편승해 자신들의 치적 쌓기나 정권에 잘 보이기 위해 ‘안병하 경무관’을 이용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경찰도 이제 뼛속 깊이 달라져야 한다. 그리고 순직자에게는 정권에 상관없이 최고의 예우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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