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세운5구역 재개발의 눈물 집 날리고 빚더미에 앉은 주민들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7.11.28 14:29
  • 호수 1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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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산업, 잔금 기다리던 재개발지역 주민에 “중도금에 이자까지 내놔라” 소송…피해 떠안게 된 주민들

 

서울 중구 산림동에 살고 있는 안숙경 할머니(71)는 최근 집 생각에 밤잠을 못 이루고 있다. 40년 넘게 머물렀던 집을 뺏기고 빚더미에 앉을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안 할머니에게 집은 전 재산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갖는 곳이었다. 1976년 결혼해 들어와 살았던 곳, 시부모와 남편이 떠나간 뒤에도 추억을 함께한 곳이었다. 안 할머니는 2층에 머물며 1층 점포 3곳의 임대료로 아이들을 키웠다. 그랬던 건물을 통째로 날리고 빚더미까지 안게 생겼으니 하염없이 눈물만 나온다. 이웃주민이던 김은숙씨(여·66)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김씨도 최근 이사한 집을 압류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세운5구역으로 불리는 산림동 일대에서 이렇게 경매 위기에 처한 집만 77가구에 이른다.

 

서울 중구 산림동에 사는 안숙경씨가 최근 경매 위기에 처한 건물(뒤편 하얀색)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안숙경씨 제공

 

재개발 광풍이 휩쓸고 간 자리

 

욕심을 낸 것도 아니었다. 안 할머니는 동네가 재개발된다며 다 떠날 수밖에 없다고 해서 특별한 조건 없이 부동산 매매계약을 맺었다. 집값을 더 쳐달라는 소리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계약금과 중도금까지 받았다. 그해에 점포를 모두 비워달라는 약속도 지켰다. 그런데 잔금이 들어오지 않았다. 잔금을 달라고 했지만 차일피일 미뤘다. 그렇게 몇 해가 흐르자 상황이 역전됐다. 계약이 취소됐다며 중도금과 함께 이자를 물어내라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사건의 발단은 재개발 광풍(狂風)이 불던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시는 서울 종로구 종로3가 일대를 ‘세운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해 도시환경정비사업 등을 추진하는 계획을 결정·고시했다. 이후 서울 중구 산림동 82-5번지 일대가 ‘세운5구역’으로 신설 지정됐다. 세운5구역 재개발은 2008년 세워진 코아시그마라는 회사가 주도하기 시작했다. 코아시그마는 이후 외환은행, 산은캐피탈 등으로부터 1200억원 규모의 PF(Project Financing) 대출을 받아 부동산 매입을 시작했다.

 

안 할머니를 비롯한 동네 주민들은 대부분 2008년 부동산 매매계약을 맺었다. 안 할머니와 코아시그마가 당시 맺은 부동산 매매계약서를 보면, 안 할머니는 집이 있는 건물 전체를 14억2200만원에 매각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코아시그마로부터 2008년 계약금(10%)과 1차 중도금(20%)을 받고, 2009년에 2차 중도금(30%)과 잔금(40%)을 받은 뒤 매각절차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2차 중도금까진 무리 없이 받았다. 이후 점포 상인들도 이주비를 지원해 내보냈다. 이사할 집도 알아보면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잔금을 치르기로 했던 2009년 12월31일 코아시그마로부터 돈이 입금되지 않았다. 회사에 문의했지만 “재개발이 미뤄지고 있어서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답변만 들었다. 지급 시기가 미뤄질 때마다 회사에 독촉전화를 했지만 계속 같은 답변만 돌아왔다. 계약서상 잔금이 치러지지 않으면 연 25%의 지체상금을 지급하기로 규정돼 있지만, 주민들은 이조차도 요구하지 않았다. 잔금 지급이 지연되면서 손해를 봐 자살을 택한 주민도 생겼다. 그렇게 3년 넘는 시간이 흘렀다. 재개발 열풍도 한풀 꺾였고, 불 꺼진 동네는 삭막한 상태로 방치됐다.

 

조용한 동네가 다시 떠들썩해진 시점은 2013년이다. 코아시그마는 2013년 5월 대출금을 갚지 못했다. 그러자 대출 당시 연대보증을 섰던 한 대기업이 1715억원 규모의 코아시그마 빚을 대신 갚았다. 그 뒤 해당 대기업은 코아시그마와 맺은 약정을 근거로 세운5구역 주민들과 맺은 부동산 계약을 양도받게 된다. 코아시그마는 2013년 10월 운영자금 부족 등을 이유로 파산을 신청했고, 부동산 매매계약을 해지했다.

 

계약을 인수한 대기업은 곧바로 주민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걸었다. 계약이 해지됐으니 2008~09년에 받았던 중도금을 내놓으라는 소송이었다. 주민들은 “매매계약상 해약 금지를 약정했기 때문에 잔금을 치르고 소유권을 가져가라”며 “오히려 회사 측에서 잔금을 지급하지 않은 데다 개발 지연으로 부동산 시가가 하락하면서 피해를 입었으므로 중도금을 그대로 반환하라는 것은 부당하다”고 맞섰다. 오랜 다툼 끝에 법원은 2017년 4월 대기업의 편을 들어줬다. 안 할머니는 “잔금만 기다리고 있던 주민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며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 지분을 나눠줬던 자식들조차 빚더미를 떠안게 돼 자식들 볼 면목이 없다”고 호소했다.

 


 

갑자기 등장한 대성산업의 그림자

 

사건 관계자는 코아시그마와 주민, 그리고 대성산업이다. 대성산업은 2012년 코아시그마가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사실상 보증을 서면서 등장한다. 코아시그마는 매년 채권단을 바꿔 PF 대출을 받아 원리금 변제와 사업자금으로 사용했다. 2012년 5월에는 베스트파트너스 등으로부터 대출받은 자금 규모가 1800억원에 이르렀다. 당시 대성합동지주가 보증을 서게 된다. 코아시그마가 대출금을 갚지 않으면, 그 빚을 대신 변제하기로 한 것이다. 대위변제 약정을 서는 대신 주민들과 맺은 부동산 매매계약을 담보로 설정했다.

 

이 과정에서 일반적인 부동산 매매와 다른 특수한 지점들이 존재한다. 주민들은 오히려 잔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피해자였다. 계약서에 따라 잔금과 함께 연 25%의 지체상금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빚을 갚아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계약 당사자인 코아시그마가 파산을 신청하면서 계약을 해지할 수 없는 조항은 무력화됐고, 파산을 이유로 매매계약이 파기됐다.

 

이후 매매계약을 인수한 대성산업은 곧바로 중도금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한다. 물론 통상의 매매 과정에선 계약이 파기됐기 때문에 주민들이 계약금을 뺀 중도금을 돌려주는 것이 상식이다. 여전히 소유권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계약이 취소됐기 때문에 크게 손해를 보지 않는다고 볼 여지도 있다. 하지만 중도금은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에 달했고, 미지급 기간 또한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8년이 걸렸다. 중도금과 이자는 주민들이 받은 금액을 넘어서 전체 매매계약 규모에 육박하기에 이르렀다.

 

두 가지 특이 사항의 공통분모는 코아시그마의 파산과 대성산업의 보증이다. 코아시그마가 파산하지 않았더라면, 주민들은 오히려 잔금에 지체상금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대성산업이 코아시그마에 보증을 서지 않았다면, 코아시그마 파산으로 인한 1차 피해는 채권자들에게 돌아갔어야 했다.

 

여기에서 쟁점은 대성산업과 코아시그마의 관계다. 당시 자금 압박에 시달리던 대성산업이 왜 도심지역 재개발업체에 1800억원 규모의 지급보증을 섰던 것일까. 재개발이 추진되던 2008년 당시 주민들 사이에선 코아시그마가 대성산업 계열사라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로 2010년 8월26일자 아시아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코아시그마 최대주주인 서아무개씨가 대성산업 핵심 관계자의 친인척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당시 서씨의 행방은 묘연했고, 설립 때도 직접 등장하지 않았다. 기사에서 코아시그마 고위 관계자는 “대성산업 C씨가 자기 처남이라며 인감과 신분증을 갖고 와 날인했다”고 밝혔다. 만일 코아시그마가 대성산업과 특수한 관계에 있었다면, 법원 판결이 뒤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성산업이 빚을 대위변제한 배경을 놓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대성산업이 채무보증을 선 2012년 당시 대성산업은 자금 압박에 시달렸다. PF 대출금 4300억원을 갚지 못해 부도 위기에 있었다. 우량자산을 팔아 대출금을 갚거나, 아예 워크아웃(기업가치개선)을 신청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대성산업은 정책금융공사로부터 4000억원 규모의 지급보증을 받게 됐고, 이를 바탕으로 은행으로부터 브리지론을 대출받아 대출금 상환에 썼다. 당시 정치권에선 “대성산업에 대한 특혜대출”이라는 주장이 제기됐었다. 주민들은 이렇게 기사회생한 회사가 특혜대출을 통해 매매계약을 인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코아시그마는 부동산 매매계약을 맺으면서 상인들을 내보낼 것을 요구했다. 2009년 당시 상인들이 이에 반발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대성산업 “말씀드릴 내용 없다”

 

시사저널은 11월23일 대성산업 측에 △코아시그마와의 관계 △코아시그마 채무에 대한 대위변제 이유 △소송을 통한 손실금 회수 규모 등에 대해 물었다. 이에 대해 대성산업 관계자는 “이미 오래된 일이라 관계자들이 퇴사해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며 답변을 피했다. 주민들은 최근까지도 대성산업 K과장과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주장했다. 대성산업 관계자는 ‘법적 소송을 진행했으면 관련 사건을 파악하고 소송을 주도한 실무자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법무팀에서 소송을 담당했지만 관련 내용을 말해 주지 않는다”며 “말씀드릴 내용이 없다”고 재차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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