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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 와인스타인 폭로 스캔들, 침묵하던 성폭력 피해자 깨울까

프랑스, #MeToo 열풍에도 성폭력 피해자에 침묵 강요하는 분위기 여전

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11.30(Thu) 14:30:00 | 14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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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주요 언론은 최근 프랑스에서 성폭력 관련 신고 건수가 급격히 증가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10월 한 달간, 인구 2만 명 이하 소도시의 치안을 담당하는 국가 헌병대에 접수된 성폭력 관련 신고 건수는 445건에 이르며, 내무부 산하 일반 경찰을 통해 접수된 고발 건수 역시 360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과 비교했을 때, 국가 헌병대 신고 건수는 30%, 경찰청 접수 건수는 25% 각각 증가한 수치다.

 

정부 관계자들은 발 빠르게 대응했다. 니콜 벨루베 법무부 장관은 프랑스 라디오 RTL에 직접 출연해 신속한 조치를 약속했다. 구체적으로, 성폭력 피해자들이 경찰서를 방문하지 않고도 인터넷을 통해 ‘사전 고발’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또한 피해자의 경우, 법적 절차와는 상관없이 병원 진료 과정에서 모두 피해사실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국가 헌병대는 총 책임자인 리차드 리주레 헌병 대장이 자필로 작성한 긴급 공문을 각 부처에 하달해 성폭력 관련 사항에 대한 신속하고 효과적인 대처를 주문했다는 후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이례적인 상승폭에 대해 “부분적으로 미국 할리우드 하비 와인스타인 스캔들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고 조심스럽게 진단했다. 한편 사회인구학자로 2000년부터 프랑스 여성폭력 관련 연구를 해 온 마리즈 자스파르드 박사는 “이것은 사건이 증가한 게 아니라 신고가 증가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피해자들의 발언이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건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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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분쟁으로까지 비화한 성추행 파문

 

자스파르드 박사의 분석처럼, 이번 와인스타인 스캔들이 가져온 가장 뚜렷한 변화는 침묵하던 다수의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영화배우 알리사 밀라노의 제안으로 시작된 ‘#MeToo(‘나도 당했다’의 의미)’와 같은 움직임이 프랑스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10월29일 파리를 비롯한 전국 주요 도시에서 성폭력을 규탄하는 시위가 이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상황이 일시에 정리된 건 아니다. 프랑스 내 새로운 성추행 사례는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으며, 이와 함께 상황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10월20일 여성 운동가인 헨다 아야리는 프랑스 지방 루앙법원에 타릭 라마단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그녀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2012년 타릭 라마단 교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스위스 국적으로 제네바에서 출생한 타릭 라마단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이슬람 학자다. 영국의 명문 옥스퍼드대학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해박한 지식과 특유의 공격적인 달변으로 프랑스 토론 프로그램에서 이슬람 진영을 대표하는 논객으로 활약해 왔다. 무슬림 사회는 물론 일반 대중들에게도 인지도가 높았던 그였던 만큼 파장은 컸다.

 

라마단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변호사의 권유로 침묵을 지키고 있으나 명백한 음해며, 이런 증오의 논리로는 아무것도 해결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상황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 건 성역을 가리지 않는 만평지 ‘샤를리 에브도’에서 라마단 교수를 성적으로 풍자하는 만평을 게재하면서부터다. 라마단 교수를 지지하는 이슬람주의자들로부터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 위협이 이어졌고 프랑스 정보 당국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프랑스의 탐사보도 매체 ‘메디아 파르’의 에드위 플라넬 편집장이 타릭 라마단에 대한 일련의 보도를 ‘이슬람에 대한 차별’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번 사건은 점차 반(反)이슬람 정서 문제로 전선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플라넬 편집장은 보도전문 채널 ‘BFM’에 출연, “지금 라마단을 성토하는 정치권과 언론이 과거 사회당 인사였던 DSK 사태(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IMF 총재의 성추문 스캔들)나 녹색당 원내대표 성추행 파문 때도 그렇게 했는가”라고 반문했다.

 

한편 타릭 라마단의 성폭행 혐의에 대해 2004년부터 취재해 온 카롤린 포레스트 기자가 수년간의 취재 중 끊임없는 방해공작이 있었다고 전해 또 한 차례 파문이 일기도 했다. 용기를 내 법적 절차를 밟고 있는 피해자 헨다 아야리 역시 그동안 침묵을 지킨 건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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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의한 성폭력 뿌리 들어낼 수 있을까

 

이번 와인스타인 폭로 스캔들은 권력과 밀착된 가해자들이 자신의 인맥과 권력을 통해 범죄사실을 철저히 은폐해 왔다는 점에서 충격을 더해 줬다. 그러나 그동안 폭로가 전혀 부재했던 건 아니다. 프랑스 유명 방송인이었던 플라비 플라멘트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프랑스 최대 민영방송 간판 진행자로 활약했던 그녀는 2016년 《위로》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통해 13세 때 성폭행을 당했던 사실을 공개했다. 커다란 파장을 낳았던 이유는 가해자가 바로 유명 사진작가 데이비드 해밀턴이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몽환적인 톤으로 10대 소녀들을 사진에 담았던 해밀턴은 국제적인 인지도를 가졌던 사진작가로 2016년 이미 사망했다.

 

이런 피해 사실을 숨기기를 강요한 사람이 다름 아닌 그녀의 어머니였다는 사실은 세간에 더 큰 충격을 줬다. 가해자가 유명 사진작가였다는 점과 딸을 성공시키려는 어머니의 욕심에서 사건은 은폐됐다고 그녀는 자서전을 통해 술회했다.

 

비단 플라멘트의 경우만 있는 건 아니었다. DSK 사태 피해자 중 한 명이었던 프랑스 여성 작가 트리스탄 바농 역시 피해 사실 폭로를 만류한 건 정치권 사정에 밝았던 그녀의 어머니였다. 상대가 대권에 근접한 정계 거물이니만큼 그를 건드려선 안 된다고 딸을 주저앉힌 것이다.

 

플라멘트의 고백은 유명 사진작가의 추문 사건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이내 사그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와인스타인 스캔들이 터지면서 11월7일 프랑스 공영방송은 그녀의 자서전을 토대로 제작된 영화를 방영함으로써 다시 한 번 그녀의 사례를 재조명했다. 

 

DSK 사태 당시 장 피에르 라파랑 총리는 “이제 프랑스는 DSK 사태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 사회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대다수 여론의 시각이다. 피해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던 문화에 변화의 물꼬를 튼 이번 와인스타인 스캔들이 과연 권력에 의한 성폭력 뿌리까지 들어낼 수 있을까. 상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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