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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약식동원(藥食同源)과 좋은 음식

먹음직스러운 개량종보다 투박한 토종 작물이 약이 된다

김철수 가정의학과 전문의· 한의사·치매전문가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2.01(Fri) 19:00:00 | 14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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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중반의 L할머니는 혼자 사신 지 10년이 넘었다. 매일 만 보 이상 걷고 식재료도 유기농만 고집하신다. 좋은 먹거리가 있다면 남대문시장이든 동네 시장이든 어디든 다녀오신다. 장 봐온 걸 보면 한결같이 상품성이 별로 없는 것들이다. 오이도 가지도 모두 크기가 작고 모양도 삐뚤고 거칠다. 사과도 다른 과일도 작고 단단한 걸 골라 오신다.

 

할머니 지론은 이렇다. 예전과 달리 먹거리가 많이 바뀌었는데, 크고 달고 보기에 탐스럽고 맛도 좋다. 하지만 왠지 옛날 먹거리보다 맛이 싱거워진 느낌이 많이 든다. 작고 못생긴 것은 그나마 옛날 맛이 조금이라도 나서 몸에 좋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음식의 기미(氣味)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좋고 나쁜 음식을 알아보는 지혜를 갖고 있는 듯하다. 싱거운 것은 덩치는 커졌지만 기미가 적어진 것이다. 모든 음식물에는 독특한 기미가 있다. 하늘의 기운, 즉 햇빛(火)과 바람(風, 木)과 땅의 기운인 지기(土, 金)와 물(水)이 모여 있다. 즉 지수화풍(木火土金水)이 모여 독특한 기미를 가지는 유기물이 만들어진다. 좋은 땅에서 적당한 비바람을 맞으면서 햇빛을 잘 받고 자란 유기물은 기미가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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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가 부족한 음식을 계속 먹으면 우리 몸도 기미가 약해진다. 기미가 부족해지면 체력(후천지정(後天之精))이 떨어지고 우리 몸의 여러 가지 생리활동이 조금씩 나빠진다. 생리활동에는 특히 각종 효소, 호르몬, 면역 물질 등 다양한 단백질과 비타민, 무기질이 필요하다. 기미가 부족해지면 이런 단백질을 만드는 여러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단백질이 부족해지거나 이상 단백질이 만들어지거나 또는 단백질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려워진다. 이런 이유로 여러 종류의 난치병이 생기게 된다.

 

기미가 적은 것이 아니라 기미가 평범하고 담백한 것이 음식이 된다. 기는 주로 차고 더운 성질을 말하지만 음식은 크게 차지도 않고 크게 덥지도 않고 대체로 기가 평(平)한 편이다. 미는 시고, 쓰고, 달고, 맵고, 짠맛을 말하지만 음식의 미는 뚜렷한 맛을 가지기보다는 대체로 담(淡·담백)한 편이다. 비록 음식의 기미가 강하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기미가 부족하거나 편향된 음식을 먹으면 병이 생긴다.

 

 

약도 되고 독도 되는 먹거리

 

기미가 강한 것은 약으로 사용하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된다. 기미가 맹렬한 것은 조금만 써도 독이 된다. 하지만 독도 아주 소량으로 쓰면 약이 될 수 있다. 기미가 강한 것도 소량이라면 음식 대신 먹을 수도 있다. 은행, 칡, 마, 삽주, 인삼, 연밥, 복령은 약이지만 배고플 때 밥 대신 조금씩 먹을 수 있다.

 

기미가 약한 음식 역시 때로는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파, 마늘, 부추, 무, 배, 사과, 매실, 더덕, 달래, 보리, 밀, 팥, 율무는 음식 재료일 뿐만 아니라 한약재로도 쓰인다. 이런 이유로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 한다. 약과 음식의 근원, 즉 뿌리는 같다는 뜻이다. 쓰는 양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처럼 먹거리가 약도 되고 독도 되지만 좋은 먹거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형질을 변형해 소출을 늘리면 기미, 즉 약성이 변하거나 떨어진다. 예전에는 상추를 먹으면 졸렸는데 요즘 상추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졸리지 않는다. 약성이 사라진 상추처럼 고유의 기미를 상실한 음식이 넘쳐나고 있다. 기미가 변한 음식을 오래 먹으면 건강을 지켜주는 약이 되기보다는 건강을 빼앗아가는 독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이유로 기미가 풍부한 옛날 먹거리를 챙겨 먹는 것이 여러모로 필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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