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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평양 Insight] 2인자 싸움에 평양 군부 술렁인다

1997년 숙청 피바람 이후 20년 만에 총정치국 직격탄 맞고 몰락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2.01(Fri) 11:00:01 | 14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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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군부 핵심부에 숙청의 칼바람이 불고 있다. 군 서열 1위를 달리던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노동당에 대한 ‘불순한 태도’를 이유로 축출되고, 제1부국장인 김원홍 대장까지 동반 철직(해임)을 당했다. 북한군에 대한 당적(黨的) 통제를 담당해 온 총정치국의 수뇌부가 직격탄을 맞고 몰락한 건 1997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숙청 피바람을 일으킨 이후 20년 만의 일이다. 그만큼 북한 권력 내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방증이다. 특히 대북 제재의 파고가 최고 수위를 향해 치닫고 있는 상황이라 김정은 정권 중심부에서 파열음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황병서의 신상에 이상 징후가 감지된 건 10월말부터 11월초 사이인 것으로 파악된다. 우리 정부 당국의 대북 감시망에 북한군 총정치국 지휘부에 대한 강도 높은 검열이 시작됐다는 첩보가 입수됐다. 국정원은 11월20일 국회 정보위 보고 때 이를 공개했다. 앞서 11월4일 있었던 비공개 회의 때는 없던 내용이다. 국정원 보고에 따르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특별지시에 따라 칼잡이로 나선 건 최룡해 당 부위원장이다. 최룡해는 황병서를 비롯한 총정치국 간부들이 전횡을 일삼고, 노동당의 지도를 무시하거나 허위보고를 하는 등의 문제를 포착했다. 이런 비위 사실은 김정은에게 직보돼 즉각 황병서·김원홍 등에 대한 처벌조치가 단행됐다는 게 대북 소식통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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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처벌·숙청…北 권력층 피로감 상승

 

이번 사태는 장성택 처형 4주기를 앞두고 불거져 대북 관측통들 사이에선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김정은은 집권 이듬해인 2013년 12월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반(反)국가 혐의’ 등으로 전격 체포해 사형에 처했다. 이를 계기로 북한 권력 핵심의 노동당 간부와 군부 고위인사들은 꽁꽁 얼어붙었다. ‘고모부까지 저렇게 무참하게 처형하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파리 목숨 아니냐’는 생각에서였다. 2015년 4월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김정은이 주재한 회의 중 졸았다는 이유로 처형됐다. 또 지난해 7월엔 김용진 내각 부총리가 행사 중 안경을 닦았다는 죄목으로 죽임을 당하는 등 숙청 사태가 잇따르면서 공포에 사로잡혔다.

 

황병서 총정치국장이나 김원홍 제1부국장의 경우 처형 같은 극단적인 사태는 면한 것으로 파악된다. 일단 신분상의 처벌을 받는 불이익을 당했는데, 관계 당국은 추가 첩보를 입수해 가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관례나 북한 권력 내부의 상황으로 볼 때 복권은 쉽지 않을 수 있다. 개인 비리나 일시적 처벌 수준의 경미한 죄목이 아니라 노동당의 통제에 따르지 않은 중대한 사안이란 점에서다.

 

더욱이 이번 사태를 불러온 검열을 최룡해 당 부위원장이 지휘하고 있어 사태는 쉽게 가라앉기 어려울 수 있다. 권력 핵심인 총정치국장 자리를 놓고 자리다툼을 해 온 앙금이 미묘한 세력구도를 만들어 놓았다는 점에서다. 노동당 조직지도부에서 잔뼈가 굵은 황병서는 김정은이 후계자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권력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2010년 북한군 중장(별 둘)이던 그는 4년 만에 세 단계를 뛰어올라 차수(대장 위 계급)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는 곧바로 군 총정치국장을 거머쥐었다. 김정은의 두터운 신임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황병서에 밀려난 전임 총정치국장이 최룡해란 점이다. 북한 정권의 골간을 이루는 ‘빨치산 세대’의 핵심인 최룡해는 부친이 인민무력부장을 지낸 최현이다. 북한 관영 매체들이 김일성에게 충신의 본보기를 보인 인물로 찬양 선전하는 등 북한 권력 내에서 일정한 지분이 있는 집안이다. 황병서에게 밀려난 뒤에도 최룡해는 절치부심하며 세력회복을 노렸다. 지난해 5월 노동당 최고 핵심인 정치국 상무위원에 임명되는 등 도약대를 마련했고, 이번 사태를 장악하면서 다시 2인자 지위에 올랐다는 평가다.

 

황병서·김원홍이 거세당하면서 북한 권력의 균형추는 최룡해 쪽으로 다시 쏠리게 됐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롤러코스터를 탄 듯 되풀이되는 처벌과 숙청의 공포 속에 북한 권력층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는 게 고위 탈북인사의 전언이다. 김정은의 잇단 핵·미사일 도발로 강력한 대북제재를 자초하면서 권력 핵심부와 군부·노동당의 원로그룹, 신진 엘리트 계층이 동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재로 인해 달러 벌이가 어려워지거나 먹고사는 문제가 빠듯해질 경우 불만이 김정은에게로 향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북한은 주민들에 대한 폭압적 통치를 강화하는 추세다. 국정원은 “북한 당국이 고강도 유엔 제재 이후 당 조직을 통한 주민생활 일일보고 체계에 돌입했다”고 강조했다. 체제 이반을 우려한 북한이 주민들을 대상으로 단속의 고삐를 죄고 있다는 얘기다. 음주가무와 개인적인 모임도 금지됐고 정보유통 통제도 강화됐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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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폭주 기관차처럼 내달릴 수도

 

김정은 위원장은 지금 사면초가 상태다. 유엔 제재에 중국과 러시아도 동참한 데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의 독자제재가 만만치 않다. 최근엔 아프리카 우방까지도 미국 압박 등에 동조해 북한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나섰다. 북한이 두 달 넘게 도발의 고삐를 늦추고 있지만 미국의 공세는 그칠 줄 모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을 향해 ‘살인 정권(murderous regime)’이라 부르며 9년 만에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등 대북 압박의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국제사회의 압박에 김정은이 반발해 추가 도발을 감행할 경우 북한 정권이 기로에 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를 조언할 노동당과 군부의 측근 세력이 사실상 없는 상황에서 자칫 브레이크 풀린 기관차처럼 내달릴 것이란 우려다. 노동신문은 요즘 공장·기업소를 찾아 활짝 웃는 김정은의 모습을 자주 싣는다. 하지만 웃는 게 웃는 게 아닐 수 있다. 집권 6년 동안의 김정은식 질풍노도 통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아버지이자 선대 수령인 김정일이 공들여 물려준 대내외적 환경을 핵과 미사일 도발 드라이브로 말아먹은 김정은은 지금 회한에 젖어 있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불거진 평양 핵심 권력 간부세력의 권력다툼은 그냥 넘기기에 찜찜한 구석이 있다. 더욱이 북한 권력의 핵심그룹 중 하나인 총정치국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최룡해와 황병서의 2인자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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