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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낳으실 거예요?”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며

노혜경 시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2.05(Tue) 15:00:01 | 14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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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피캇. 아비 없는 아이를 잉태한 마리아가 사촌 엘리사벳을 만나 불렀던 노래다. 마리아는 비록 혼인을 약속한 몸으로 남편 될 이의 아이가 아닌 아기를 가졌지만, 무한한 기쁨으로 그 사실을 찬미한다. 내 등단 시(詩)는 이 사연을 소재로 하고 있다. 시 속에서 주인공인 나는 가난한 신부다. 아이를 가지고 싶지만 경제적으로 뒷받침이 될지를 근심하면서 산부인과 여의사가 알려주는 임신 사실을 멍하니 듣는다. 그때 이 여의사가 하는 말에 정신이 확 돌아온다. “낳으실 거예요?”

 

이 장면은 반쯤 실화다. 1986년 가을, 임신을 고대하던 나는 어느 날 귀갓길에 버스정류소의 산부인과를 보고 무작정 내려서 검사를 했다. 임신 사실에 내가 기뻐하자 의사가 나보다 더 기뻐한다. 심지어 고맙다고까지 한다. 임신이 축복이 되는 산모를 얼마나 오랜만에 만난 것인지 모른단다. 그 가난한 동네의 산부인과 대기실은 어린아이를 여럿 데리고 중절수술을 기다리는 산모로 가득했다. 벌써 다섯 번째 중절이라는 산모도 있었다. “안 아픈 데가 없어요. 그놈의 개새끼는 수술하고 간 밤에도 달려들어요.” 잊히지도 않는다. 피임의 방법으로 ‘낙태’가 행해지던 ‘미개’한 시절. 30년 전.

 

 

그런데 그 이후로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기혼·비혼을 막론하고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는 여성은 여전히 있는데, 그 임신을 둘러싼 아픈 이야기들은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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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민정수석이 청와대에 올라온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청원’에 답을 했다. 낙태란 말 대신 임신중절이란 말을 사용하고, “모든 법적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완전히 빠져 있다”는 현실을 비판하며 “중단된 임신중절 실태조사부터 우선 실시하고, 낙태죄 폐지 여부는 위헌 심판 공론화와 사회적 법적 논의 거쳐 결정”하겠다는 요지의 답변이다. 반은 고무적이고 반은 한숨 나오는 답변이다. 국가와 남성의 책임이라는 발언은 진일보임에 틀림없지만, 실태조사를 안 하면 모르나. 무서운 속도로 줄어드는 출산율이 철벽같은 피임능력 신장의 결과이기만 할까. 이 와중에 교회는 낙태죄 폐지 반대 목소리를 새삼스레 낸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하는 순간 여성의 삶은 곧바로 지옥으로 떨어진다. 특히 비혼일 때, 그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건강에 치명적인 상해를 입을 것을 각오하고 불법 유산을 하든가, 불안에 떨며 아이를 낳아 도저히 홀로 키울 수 없는 현재의 제도로 말미암아 눈물의 입양을 하게 되든가. 준비 안 된 결혼을 하고 준비 안 된 부모가 되는 경우는 그래도 운이 좋은 케이스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행복할지는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원치 않는 임신은 결코 “더럽고 문란한 섹스”의 결과가 아니다. 반드시 강간이나 준강간의 결과만도 아니다. 조국 수석도 말한 대로, 피임의 의무를 회피하는 남성들, 임신이라는 결과를 책임지지 않으려는 남성들과, 임신과 출산에 따른 제도적 뒷받침에 오불관언인 국가와, 낳으라고만 하지 그 이상의 사회적 지원엔 둔감한 교회 같은 사회제도들의 낡은 사고에도 책임이 있다.

 

여성단체가 낙태죄를 폐지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최소한의 안전장치에 대한 요구에 불과하다. 자연유산 유도약 합법화는 지금 당장이라도 국가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할 수 있는 것은 일단 하자. 하면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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