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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가 만들어낸 거대한 도박판

“비트코인, 쳐다도 보지 말라” 집 보증금 날린 투자자의 후회

이민우 기자 ㅣ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7.12.10(Sun) 09:00:00 | 14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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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가 대안이냐고요? 그런 건 원래 관심 없었어요. 어차피 가격 오른다고 해서 샀고, 욕심 부리다가 돈 날린 거예요. 지옥을 경험했지만, 비싼 돈 치르고 공부 했다고 여겨야죠. 비트코인 시세가 1억원까지 오른다 해도 쳐다도 안 볼 거예요.”

 

서울시의 한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 A씨는 최근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가 낭패를 봤다. 처음 투자를 시작한 때는 지난 8월이었다. 용돈만 조금 벌 심산이었다. 주변에서 가상화폐 투자 성공담이 많이 들려와서 관심이 가던 찰나였다. 모아둔 비상금 200만원을 종잣돈으로 삼아 가상화폐의 한 종류인 비트코인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주식에서 ‘데이트레이딩(day trading)’을 하듯이 잠깐 구매했다가 시세차익을 남기는 방식이었다. 의외로 수익도 짭짤했다. 하루에 40만원 가까이 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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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 만에 ‘140만원→280만원→25만원’

 

그랬던 A씨에게 지옥 같은 하루가 찾아왔다. 주변에서 크게 한몫 챙겼다는 소식은 그에게 자극제가 됐다. 주식 경험도 적지 않은 데다 비트코인에 2개월 넘게 투자하면서 자신감도 붙었다. 결국 A씨는 집 이사를 앞두고 보증금을 늘리려고 모아뒀던 5000만원을 과감하게 투자했다. 비트코인의 형제라 할 수 있는 ‘비트코인 캐시’였다. 사건은 여유롭던 일요일에 발생했다. 지난 11월12일 오전까지만 해도 150만원 전후였던 시세가 갑작스레 상승하기 시작했다. A씨도 뒤늦게 190만원대에 비트코인 캐시를 샀다. 오후 4시대에는 1비트코인 캐시당 280만원대까지 치솟았다. 대박이었다. 5000만원 투자금이 7400만원대에 달했다. 하지만 기쁨의 순간은 잠시였다. 거래가 폭증하면서 거래소 서버가 멈췄고, 시세는 폭락했다. 이날 비트코인 캐시 시세는 한때 25만원까지 떨어졌다. 그는 또다시 오르리라 믿고 버텼지만, 5일 만에 100만원 밑에서 거래되는 모습을 보면서 모두 팔았다. 불과 5일 만에 2500만원을 날렸다.

 

비트코인을 위시한 가상화폐들이 연일 화제다. 국내 최대 거래소인 빗썸 시세를 기준으로 1비트코인 가격은 12월8일 9시 현재 2500만원에 육박했다. 12월1일 비트코인 시세가 1000만원 정도였던 점에 비춰보면 일주일 만에 2.5배로 오른 셈이다. 1년 전 시세(84만원)에 비하면 30배 가까이 폭등했다. 이 가파른 상승세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도 불확실하다.

 

비트코인 값은 왜 폭등하고 있을까. 유가증권시장에 신규상장을 앞둔 회사의 주식이 큰 폭으로 가격이 뛰는 현상과 비슷하다. 비트코인 상승세는 세계 최대 파생상품거래소인 시카고상품거래소(CME)가 비트코인 선물 상품을 연내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촉발됐다. 비트코인 선물 도입은 메이저 금융시장 진입을 뜻한다. 막대한 기관 자금 유입을 기대할 수 있다. 이 같은 호재에 투자자들은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다른 암호화폐)을 팔고 비트코인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한국은 비트코인의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다. 가상화폐 정보업체인 코인마켓캡닷컴에 따르면, 비트코인 가격이 폭등한 5~6일 당시 원화 거래량 비중이 21%까지 치솟았다. 세계 공용화폐인 미국 달러화 거래량 비중(25%)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며칠 전까지 거래량이 가장 많았던 일본도 가볍게 제쳤다. 가상화폐의 가치보다는 사실상 매수가 매수를 부르는 비이성적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주식시장이라면 ‘사이드카’나 ‘서킷브레이커’를 발동해 잠시 거래를 중단시키고, 시장의 열기를 식힌다. 시세차익을 위해 매수세가 급증하는 비이성적 상황을 제어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가상화폐 시장에는 이런 시장 제어 장치가 없다.

 

비트코인 등에 대한 투자에 앞서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고수익에는 고위험이 따른다’는 사실이다. 한번 폭락하기 시작하면 어디까지 떨어질지 모른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아주 가벼운 충격에도 거품이 무너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 선물 상장이 무산될 경우, 최근 수십 배 급등한 만큼 폭락할 수 있다. 한번 매도세가 이어지면 날개 없는 새처럼 곤두박질칠 수 있다. 순식간에 종잇조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비트코인의 신뢰도에 문제가 생길 경우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클라우드 기반 비트코인 채굴 마켓플레이스인 ‘나이스해시’(NiceHash)는 해커의 공격으로 인해 대규모 비트코인이 탈취당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한 피해금액만 무려 6000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도 11월 거래소 빗썸의 서버가 중단되면서 비트코인 캐시 가격이 40% 가까이 급락하는 일이 빚어지기도 했다.

 

비트코인이 비트코인 캐시와 유사한 길을 밟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비트코인 캐시는 8월1일 비트코인에서 갈라져 나온 가상화폐다. 한때 시가총액이 400억 달러를 돌파하면서 2위인 이더리움을 눌렀다. 비트코인 캐시가 관심을 받으면서 비트코인 값이 급락하기도 했다. 비트코인 캐시는 11월 11~12일 갑자기 가격이 두 배로 치솟았다. 비트코인 적통성 논쟁의 영향도 있었지만, 상승 동력을 이끈 것은 한국 투자자들이었다. 국내 거래소인 빗썸에서 비트코인 캐시 거래량 비율은 50%에 육박했다. 그리고 서버가 다운되자 정상적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다른 거래소의 비트코인 캐시도 급락하기 시작했다. 빗썸이 다시 거래를 시작한 직후, 비트코인 캐시 가격은 25만원까지 90% 가까이 떨어지기도 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일어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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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익 보장’ 가상화폐 사기 주의보

 

가상화폐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투자금을 노리는 사기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는 것을 보면서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미끼를 던지는 셈이다. 가상화폐가 만들어낸 도박판의 이면이다.

 

12월4일 인천지검 외사부(최호영 부장)는 가상화폐 채굴기 운영 대행업체 마이닝맥스 관계자와 투자자 일부를 구속했다. 이들은 지난해 3월부터 최근까지 가상화폐인 이더리움을 캘 수 있는 채굴기에 투자하면 많은 수익금을 가상화폐로 돌려주겠다고 투자자들을 속이고 모집해, 이들로부터 수십만원부터 최대 수십억원까지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마이닝맥스는 투자자들에게 이더리움 채굴기를 사게끔 해, 이를 대신 운영해 주고 수익금 40%를 챙겼다. 구매비용은 1대당 260만~480만원 정도로 알려졌다. 이들은 채굴기 투자자가 늘어났지만 늘어난 수만큼 제대로 가상화폐를 채굴할 수 없게 되면서 수익금 지급을 늦추기 시작했다. 하위 투자자들의 투자금을 상위 투자자들에게 수익금으로 지급하는 식으로 돌려막기를 하다가 끝내 지급 불능 상태에 빠졌다. 해당 회사 회장과 부회장은 해외로 도피했다. 피해를 본 투자자들은 6000명가량으로 추정되며, 전체 투자금은 2000억원대로 조사됐다.

 

사기꾼들은 가상화폐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악용했다. 최근 금융 당국에 접수된 피해 사례를 보면, 해외투자 등을 언급하며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었다. 가상화폐로 막대한 돈을 벌고 있는 독일 소재 재테크 회사에 투자하면 6개월 400% 확정수익을 지급하겠다며 투자자를 모집한 뒤 잠적하기도 했다. 또 다른 ‘○○코인’이라는 회사는 몰타에 가상화폐 은행을 설립하고 국제거래소에 등재해 최소 150%의 수익을 보장하고, 은행 지급보증을 통해 계약하기 때문에 약정수익과 원금보장이 확실하다며 피해자들의 돈을 노렸다.

 

가상화폐 작전세력도 버젓이 활동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일반 회원을 모집하고 소수 유료 투자자에게만 정보를 제공한 뒤 일반 투자자들이 몰려와 가격이 오르면 매도해 차익을 실현하는 방식이다. 사실상 기존 주가조작단의 전형적인 수법을 그대로 따랐다. 주식시장에서의 시세 조종 행위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에 의해 규제되고 있다. 가상화폐는 자본시장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있어 처벌도 어려운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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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규제했다가…딜레마에 빠진 정부

 

그동안 정부는 사실상 뒷짐을 지고 있었다. 가상화폐를 바라보는 눈은 ‘대안 화폐가 될 것’이라는 긍정적 시선과 ‘투기 수단에 불과하다’는 부정적 시선이 늘 공존했다. 때문에 화폐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대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낮은 수준의 제재에 머물렀다.

 

하지만 최근 가격 변동성이 커지고 피해가 속출하자 정부는 합동대응반을 만들어 적극 대처하기로 했다. 가상화폐 투자가 지나치게 과열 양상으로 흐르고 있고, 거래소 해킹 등 각종 범죄 위험이 높아졌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가상통화 관계기관 합동 태스크포스 회의를 열고 “가상화폐는 화폐나 금융상품이 아니다”며 “가격 변동성이 큰 가상화폐의 특징 때문에 손해를 보는 투자자가 늘고 있지만 정부가 인증하는 시장이 아닌 만큼 투자자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가상화폐 거래소를 인가제로 바꾸거나, 양도세를 물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가상화폐 거래소는 인터넷쇼핑몰과 같은 통신판매업으로 분류돼 있어 금융 당국의 감독 대상이 아니다. 당연히 차익에 대한 세금도 부과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부는 규제를 만드는 게 자칫 가상화폐를 정부가 공인하는 꼴이 되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 당국이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라며 “가만히 있다가 피해자를 양산하느니 가상화폐 거래를 불법화한 중국처럼 정책 방향을 잡고 추진하는 책임 있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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