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정부 첫 사면, 정치권 화약고 건드리나
  • 박혁진 기자 (phj@sisajournal.com)
  • 승인 2017.12.08 18:15
  • 호수 146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상균·이석기 사면 ‘뜨거운 감자’ 한명숙·이광재·정봉주 등도 관심사

 

문재인 대통령은 12월6일 청와대에서 열린 종교 지도자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사면은 준비된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종교 지도자들의 입을 통해 사면 건의가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전달됐지만, 이미 11월말부터 정·관계에선 문재인 정부 첫 사면 대상에 누가 포함될지 관심이 점차 높아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청와대도 이런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면에 대한 입장을 어떤 식으로든 표명할 필요가 있었다. 때마침 이날 간담회에서 사면 얘기가 나왔고, 대통령이 시기와 관련해선 직접 선을 그은 모양새가 됐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종교 지도자 간담회 다음 날 기자들과 만나 “(사면은) 연말보다 연초쯤이 될 것 같다”면서 “시간적 문제도 있고 성탄절 특사라는 법적인 규정이 없기 때문에 굳이 그 날짜에 매여서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시국사범의 특사 포함 여부에 대해선 “그 부분에 대해선 법무부 차원에서 검토가 있었을 것 같다”면서 “최종적으로 여러 가지 검토 후 청와대로 올라와야 하니까 그것을 보겠다”고 했다.

 

대통령의 발언에 따라 연말 사면은 물 건너간 분위기다. 하지만 청와대 측이 연초 사면 가능성은 열어둔 셈이다. 따라서 시국사범 사면이 머금고 있는 휘발성은 문재인 정부 첫 사면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지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분위기다. 특히 성탄 사면 여부를 예의 주시하고 있던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은 긴장의 고삐를 놓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월6일 청와대 본관 인왕실에서 열린 종교 지도자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여야, 시국사범 사면 예의 주시

 

사면 대상 포함 여부와 관련해 가장 많은 관심이 모이는 인물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다. 한 위원장은 12월6일 종교 지도자 간담회에서 유일하게 실명이 거론됐던 인물이다. 한 위원장은 불법 집회를 주도한 죄로 징역 3년형을 확정받고 복역 중이다.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도 간담회 자리에서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이나, 쌍용자동차 사태로 오랫동안 감옥에 있으면서 가족들까지 피폐해진 분들도 있다. 그들이 대통령님의 새로운 국정철학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며 사면을 요청했다. 민주노총은 물론이고 진보적 시민단체에서도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내란선동죄로 징역 9년을 선고받은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사면여부도 관심이다. 진보단체 측에선 이 전 의원을 ‘양심수’로 규정하며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인사들도 대체적으로 두 사람이 박근혜 정권 공안탄압의 피해자라는 인식엔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두 사람을 사면에 포함시키는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특히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 청와대의 고민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을 사면하지 않으면 노동계 및 진보시민단체와의 마찰은 불가피하다. 이미 노동계 전반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합법화, 비정규직 문제를 놓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한 위원장을 사면하지 않을 경우 노동계의 불만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진보진영 분열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두 사람을 사면할 경우 거센 역풍이 예상된다. 앞서 언급했던 야 3당은 이것을 빌미로 대대적 공세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이미 3당은 연말 사면에 두 사람이 포함될지 여부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법무부에서 명단이 올라와야 논의가 시작되겠지만 민정수석실, 정무수석실 등 여러 수석들의 의견을 다양하게 검토한 후 결정할 것”이라며 “(한상균·이석기) 두 사람에 대한 온도차는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이광재 전 강원지사, 정봉주 전 의원 등 정치인 사면 여부도 관심 사안이다. 한 전 총리는 건설업자 한만호씨로부터 9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2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한 전 총리의 사면도 정치권에선 부정적으로 보는 인사들이 많다. 변수는 한 전 총리 혐의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속마음이다. 문 대통령은 2015년 8월20일 한 전 총리가 대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자 “법원까지 정치화됐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며 법원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당시 한 전 총리를 의정부교도소 앞까지 배웅하기도 했다.

 

왼쪽부터 한명숙 전 국무총리,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 © 시사저널 박은숙·사진공동취재단

 

“이석기 사면하면 황교안 유력 정치인 부상”

 

이광재 전 강원지사와 정봉주 전 의원에 대해선 사면 가능성이 크다는 시선이 많다. 이 전 지사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2011년 1월 유죄가 확정됐고, 정 전 의원은 BBK 사건 관련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실형을 살았다. 두 사람 모두 만기 출소했고, 출소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일단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이 전 지사의 경우 이미 사면 여부와 관계없이 ‘여시재’라는 싱크탱크의 원장을 맡아 광폭행보를 하고 있다. 사면을 전제로 내년 지방선거에서 강원지사 후보로 거론 중이다. 정 전 의원의 경우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여론이 높아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사면의 적기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여야 의원 125명이 정 전 의원의 사면복권을 호소하는 탄원서를 문 대통령에게 제출하기도 했다.

 

사면과 관련해 박원석 전 정의당 국회의원은 시사저널에 “정권 첫 사면을 잘못했을 경우 의외로 큰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때문에 청와대에서 정무적 판단까지 고려해 신중히 사면할 것”이라며 “한 전 위원장이나 이 전 의원 등이 사면 명단에 포함될 경우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내년 지방선거에서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떠오를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야당이 이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