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제대로 된 한·중 관계를 맺으려면
  • 박영철 편집국장 (everwin@sisajournal.com)
  • 승인 2017.12.13 09:04
  • 호수 1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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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 시작(12월13일)을 닷새 앞두고 이 글을 씁니다. 우선 문 대통령의 국빈 방문이 성공하길 기원합니다.

때가 때이니만큼 관련 기사가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기대감을 담은 기사가 주류를 이루지만, 문 대통령이 중국에 도착한 후에는 방중 행보 기사가 봇물을 이룰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문 대통령의 방중이 진짜로 성공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입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으로부터 적어도 사드 압박에 대한 유감 표명은 받아내야 하는데,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거의 무망(無望)해 보여섭니다.

 

한국은 집권세력이 좌파든 우파든 중국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중 수교 때 일입니다. 중국이 남한과 수교하려고 혈안이 돼 있었는데 우리는 정보수집을 안 한 탓에 중국과 수교하려고 몸이 달아 있었습니다. 당시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남조선과 수교하라”고 지시를 내렸는데도 말이죠. 그 결과는 남한은 대만과 단교, 중국은 남북한 동시 수교라는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대만은 오랫동안 국제무대에서 남한 편을 들어줬는데, 우리는 세련되지 못하게 대만과 인연을 끊는 바람에 대만인들의 원한을 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1월11일 베트남 다낭 크라운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반갑게 미소지으며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불평등조약을 자초한 한민족의 DNA는 박근혜 정부 때 중국의 전승절 참석 해프닝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2015년 9월3일 시진핑이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이 행사에 미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했습니다. 미국과 서방권은 모두 이 행사를 보이콧했는데 말입니다. 이로써 시진핑은 좌우에 러시아 대통령과 한국 대통령을 거느리고 세계만방에 한껏 위세를 과시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중국에 신세를 지우면 북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그 후로도 북핵문제에 여전히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고, 한국은 미국에 ‘못 믿을 나라’로 찍혔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미국은 예전보다 일본을 중시하는 스탠스를 취했습니다. 모양새가 더 우스워진 건 이후 북핵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박근혜 정부가 미국에 SOS를 쳤다는 겁니다. 결국 북핵 관련해서 한국이 기댈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는 현실을 만천하에 드러냈는데, 전승절 사태 이후로 한국을 바라보는 미국 조야(朝野)의 시선은 예전보다 엄청 싸늘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중국을 다루는 방식도 신통찮기는 마찬가집니다. 사드 배치가 첫 단추 격인데, 잘못 끼웠습니다. 사드 배치를 재검토할 수 있다는 스탠스를 집권 초기에 취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이렇게 풀었어야 했습니다. “사드 배치 문제는 한국과 미국 국가 간의 약속이기 때문에 정부가 바뀌었다고 해서 섣불리 변경할 수는 없다.” 이랬으면 중국은 사드 관련해서는 한국을 굴복시킬 수 없구나 깨닫고 접근방식을 바꿨을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사드를 배치하지 않을 것처럼 하다가 전격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시진핑의 감정을 건드려 사태를 악화시킨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드에 관한 한, 이 정권도 전 정권보다 별로 나은 점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정부도 이번 문 대통령의 방중으로 한·중 관계 정상화의 기반이 마련됐다고 선전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중 관계의 취약함은 중국이 사드 사태와 관련해서 취한 일련의 조치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전략적 동반자 관계니 ‘역대 최상급 밀월’이니 하는 수식어는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무시할 수 있다는, 한·중 관계의 씁쓸한 현실 앞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제대로 된 한·중 관계를 맺으려면 중국으로부터 사드 한한령(限韓令)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야 합니다. 그것이 어려우면 최소한 시진핑의 유감 표명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한·중 관계 개선은 사상누각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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