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 철밥통 보험 ‘대학의 파벌싸움’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2.14 13:24
  • 호수 146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총장 선출 과정에서 갈등 표출…학연·지연으로 뭉쳐 끌어주고 밀어주고

 

우리 사회는 ‘파벌’이 하나의 문화처럼 인식되고 있다. 세 명 이상 모이면 파벌이 생긴다고 할 정도로 뿌리가 깊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파벌주의에 찌들어 있는 곳이 대학 사회다. 해마다 터져 나오는 ‘논문 표절’ ‘학위 위·변조’ ‘줄서기’ ‘금품 수수’ 등은 파벌 문화의 부산물이다.

 

총장 선출 과정에서는 교수 사회가 극심한 갈등을 표출하기도 한다. 파벌 없는 대학이 없고, 파벌이 대학 사회를 죽인다는 말까지 나온다. 파벌은 학문 연구와는 별개다. 대학의 주도권을 잡고 자기 밥그릇을 챙기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학문 연구를 추구하는 ‘학파’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동안 대학 사회는 파벌을 없애는 데 소극적이었다. 교수들이 자신의 ‘철밥통’을 지키기 위해 파벌을 보험으로 삼고 있어서다. 자신들의 밥그릇을 내팽개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학문은 멀고 줄서기는 가깝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 일러스트 배중열

 

얽히고설킨 교수 사회

 

최근 몇몇 대학에서는 총장 선출을 놓고 대학 구성원들이 갈등을 빚었다. 그 배경에 ‘파벌’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는 지난 11월6일 교육공무원인사위원회를 열어 총장이 공석 상태인 4곳에 대한 기존 후보자 적격 여부를 재심의했다. 이때까지 공주대는 3년8개월, 방송통신대는 3년2개월, 전주교대는 2년9개월, 광주교대는 1년1개월 동안 총장 없이 학사운영을 해 왔다. 

교육부는 공주대·전주교대·방송통신대의 경우 1순위나 1·2순위 후보자 대부분 ‘적격’으로 판정했다. 이로써 이들 대학은 장기간 총장 공백 상태를 해소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유독 광주교대만 1·2순위 후보자 모두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광주교대는 지난해 10월 제6대 이정선 총장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총장임용추천위원회’를 열어 1·2순위 후보자를 선정해 교육부에 추천했다. 박근혜 정부 교육부가 이들 후보자에 대한 적격 유무를 심사했으나 ‘부적격’하다고 판정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정권을 떠나 교육부는 두 후보가 총장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광주교대는 총장 공백 상태가 연장되는 상황이 됐다.

 

광주교대의 총장 후보인 두 사람은 학내 양대 파벌을 대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교대 교수들은 두 계파로 갈라져 갈등 양상을 빚어왔는데, 각각 후보자를 내세워 1·2순위가 됐다는 것이다. 두 사람 중 누가 총장이 되든 학내 갈등, 파벌싸움이 사라지기는 어려운 구조다. 광주교대는 총장 공백 상태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총장 선출 방식을 기존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꿨다.

 

현행법에 따르면, 국립대는 총장을 직선제나 간선제 중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교육공무원법에 따라 각 대학이 구성원 대표 등으로 이뤄진 총장임용추천위원회를 통해 선출 방식을 결정한다. 대학에서 총장 후보자를 선출해 교육부에 알리면 교육부 장관이 인사위원회 자문을 얻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총장 직선제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2012년 국립대 선진화 방안에 따라 간선제를 도입하는 대학에 대학재정지원사업 가점을 주는 방식으로 ‘간선제’를 유도했다. 사실상 돈을 앞세워 대학의 선거 자율권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겉으로는 과거 직선제의 폐단을 내세웠다. 파벌 형성, 흑색선전, 부정 선거, 공약 남발 등 직선제의 문제점을 부각시켰다. 하지만 뚜렷한 이유 없이 직선제 총장의 임용 제청을 거부한 사례가 적지 않아 정권 입맛에 맞는 인물들로 총장을 임명하려는 ‘불순한 의도’로 풀이됐다. 직선제 폐지를 통해 ‘자기 사람’을 심어 대학을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교육부는 ‘재정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총장 직선제를 압박했다. 부산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2015년 8월17일 인문대 국어국문학과 고현철 교수가 대학의 총장 직선제를 요구하며 교내에서 투신해 숨졌다. 그는 유서에서 직선제 사수와 대학 자율권을 침해하는 교육부를 비판했다. 고 교수의 희생으로 부산대는 직선제로 총장을 선출했고, 교육부가 이를 인정하면서 총장 직선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현재 국내 국립대 중 직선제 총장 선출은 부산대가 유일하다. 강원대는 총장 선출 방식을 놓고 학내 구성원들 사이에 갈등을 빚었으나 간선제로 총장을 선출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총장 직선제’를 선택하는 대학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대학이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아 자율적으로 후보자 선정 방식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정부가 각종 재정지원 사업을 통해 간선제를 유도하는 방식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2018년부터 교육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대학 자율로 총장을 선출할 수 있다. 

‘총장 직선제’가 대학 파벌에는 ‘독’일까, ‘약’일까. 총장 직선제는 대학 민주화와 연결된다. 1988년 학원 민주화 바람을 타고 도입됐다. 대학 내 총장 직선제가 도입되고 교수협의회가 결성되면서 대학 자율화 물결이 전국으로 퍼졌다.

 

1999년에 외부인사로 구성된 대학이사회가 도입되면서 총장 직선제 폐지 논란이 불거졌고, 국·공립대를 중심으로 ‘간선제’가 확산됐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재정지원’을 앞세워 총장 직선제 폐지를 인위적으로  유도해 국립대 구성원들의 반발을 샀다. 

그러나 총장 직선제 방식에서도 대학 파벌은 여전했다.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했다. 총장 선출 과정에서의 줄서기와 학연·지연 등 연고주의로 뭉친 파벌이 형성됐다. 선거가 과열돼 혼탁 양상을 빚기도 했다. 금품 거래와 비리, 파벌 조성 등으로 학원을 싸움터로 만들었다.

 

교수 채용이나 임용 과정에서 온갖 잡음이 생겼다. 선거로 뽑힌 총장은 논공행상을 통해 보직을 배정했다. 능력을 떠나 보상 인사를 한 것이다. 학문 연구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향후 총장 직선제를 실시하는 대학의 경우 이런 폐단을 어떻게 최소화할지 고민해야 한다. 물론 간선제 총장 선출 방식에서도 파벌은 여전했다. 양쪽 계파로 나뉘어 총장을 대리인으로 내세우고 갈등을 키우는 곳이 적지 않았다.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교수 사회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끼리끼리’ ‘줄서기’ 병폐

 

교수 사회에서 학연과 지연은 줄서기와 맥을 같이한다. 현재 대학 내 파벌은 국·공립대에서 사립대까지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다. 일부 사립대와 종교 사학에서의 파벌 문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교수 채용 과정에서 제자와 후배 챙기기, 출신 학교별 편가르기, 금품 수수, 자기 사람 심기 등이 여전하다.

 

학연과 지연을 통한 교수 채용은 학과 내에 보이지 않는 서열을 만들기 마련이다. ‘끼리끼리식’ 파벌도 생긴다. 특정 대학 출신이 학과를 독점하면서 생기는 병폐는 크다. 학문의 비판이 사라지면서 그만큼 학문 발전도 저해된다. 문제는 대학 사회에서 줄서기와 인맥 쌓기가 자연스럽고 당연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교수들 파벌싸움에 학생들이 동원되거나 상대 피해자의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해 5월 부산 동아대에는 손아무개 교수(35)가 제자를 성추행했다는 대자보가 붙었다. 성추행을 공식 사과하지 않으면 실명과 사진을 공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손 교수는 대자보가 자신을 지목한 것에 결백을 호소하고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손 교수의 유족은 경찰에 손 교수가 결백하다고 주장하며 수사를 요구했고, 결국 허위 내용인 것으로 드러났다. 유족은 “학과 내 파벌싸움의 희생양”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부산의 한 사립대에서 ‘대자보 비방전’이 벌어졌다. 11월8일 이 학교의 특정 학과 학생회는 A교수가 상습폭행과 욕설, 인격모독을 했다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였다. 며칠 뒤 학과 내 다른 학생들의 반박 대자보가 붙었다.

 

A교수 외에 학과 내 다른 교수와 강사 등 4명이 감사를 받는데 학생회 대자보에는 전혀 언급이 없다며 의도가 있다고 했다. 교수들의 비위 문제가 학생들의 대리 비방전이 된 모양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교수들의 파벌싸움이 학생들 간 이전투구로 표출된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교수회의 파벌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 교수는 실력만으로 안 된다는 것이 우리나라 교수 사회의 현실이다. 학연·지연이 없거나 금품을 제공하지 않으면 교수 임용이 어렵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실력이 없어도 줄만 잘 서면 교수가 될 수 있다는 말도 있다.

 

2016년 1월25일 강원 춘천시 강원대학교 대학본부 앞에서 ‘총장 직선제 쟁취를 위한 강원대 학생 공동행동’ 소속 학생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학 경쟁력 떨어뜨린 연고주의

 

종교 사학의 경우 일반적으로 학내 권한이 이사회에 집중돼 있다. 예산부터 교원 신규임용까지 거의 모든 학내 운영이 이사회의 권한에 달려 있다. 일부 종교 사학의 경우 이사 대부분이 ‘종교인’으로 구성된 곳도 있다. 몇몇 학교는 학내 분규로 인해 파행을 겪기도 했다.

 

교수 채용을 둘러싼 비리나 불공정 시비는 패거리주의가 원인이다. 교수 임용 시에는 해당 학과의 교수들이 당락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자신이 키운 제자를 합격시키려고 힘쓴다. 자신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하나라도 더 끌어들이려고 한다. 능력에 관계없이 같은 대학 출신 제자나 후배를 뽑으려고 한다.

 

교수 채용이 있을 때마다 교수 사회가 두 파로 분열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같은 학교 출신 밀고 끌어주기, 뒤 봐주기는 예사다. 학연과 지연을 통한 교수 채용은 학과 내에 보이지 않는 서열을 만들기 마련이다. 특정 대학 출신이 학과를 독점하는 등의 병폐도 크다.

 

지방대의 경우 보통 본교 출신 교수들과 다른 대학 출신 교수들로 파벌이 형성된다. 양측이 서로 자기 파벌을 한 사람이라도 더 만들려고 힘겨루기를 벌인다. 이런 경향은 교수 임용 시에 그대로 나타난다. 파벌을 중시하다 보니 우수한 능력을 가진 지원자가 임용에서 탈락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대학이나 교수들도 알지만 고치지 않는다. 자신들의 학내 기득권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일부 대학은 이러한 폐단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재임용 시 업적 평가 기준을 강화했다. 직급 정년제를 도입해 일정 직급에서 더 이상 진급하지 못할 경우 교수직을 그만두도록 했다. 하지만 실효성은 미지수다. 대학 내의 ‘파벌’은 부메랑이 된다. 학연과 지연을 매개로 한 연고주의는 대학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그 폐해는 고스란히 학생들과 대학 구성원들에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