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대 결손법인이 어떻게 4400억원대 사업 따냈나
  • ​이상엽 기자 (sisa213@sisajournal.com)
  • 승인 2017.12.20 09:53
  • 호수 1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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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의 수상한 도시개발 사업자 지정 논란…고양시 “규정대로 처리했다”

 

자본금 5000만원으로 설립된 주택건설회사가 있다. 다음해 2억5000만원을 증자해 자본금 3억원짜리 회사가 됐다. 하지만 10년 동안 주택건설과 관련한 사업을 단 한 건도 시행하지 못하면서 수백억원대 결손을 냈다. 결손법인은 그해 당기순이익이 전혀 없는, 즉 이익은 없고 손실만 있는 회사라는 뜻이다. 2016년 말 기준으로 이 회사의 부채는 1894억여원을 기록했다. 미처리 결손금만 553억여원에 달한다. 자본금 3억원은 이미 잠식당한 지 오래다. 그런데 이 회사가 2014년 7월 고양시로부터 4400억원 규모의 도시개발사업 시행자로 지정받는 ‘잭팟’을 터뜨리면서 뒷말이 무성하다.

 

사업 시행자로 지정받은 2014년 말 당시 이 회사의 재무제표가 궁금해졌다. 부채는 1188억여원, 미처리 결손금은 381억여원에 달했다. 회사가 땅을 매입해 아파트를 건설해 갚겠다고 금융권 등으로부터 대출받았던 부채를 모두 정산해도 381억여원의 손실을 보게 된다는 의미다. 당연히 수천억원대 도시개발사업 시행자 자격에 의문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고양시는 선뜻 4400억원대 도시개발사업 시행자로 이 회사를 선정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고양시가 2014년 수천억원 규모 사업의 시행자를 지정하면서 재무구조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 시사저널 이상엽

 

재무 건전성 ‘제로’ 회사가 4400억대 사업 수주

 

고양시 측은 “절차대로 처리한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고양시 도시정비과 한 관계자는 “관련 서류에 미비점이 없으면 통상 인허가를 해 줄 수밖에 없다”며 “도시개발법상 결손법인이라 해서 사업시행을 하지 못한다는 규정은 없다. (고양시가) 회사의 재무 상태까지 챙겨봐야 할 의무는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의 생각은 달랐다. 한 도시개발 전문 변호사는 “자금조달 계획을 살펴보면서 일반인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통해 회사의 재무제표를 파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며 “‘회사의 재무 상태까지 챙겨봐야 할 의무는 없다’는 고양시의 해명은 결국 회사의 재무 상태를 파악하는 데 소극적이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 된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해당 구역 토지 소유자 중 한 명인 A씨는 2014년 9월 “S산업개발의 사업 수행능력을 판단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며 고양시에 민원을 제기했다. A씨는 당시 “자본금 3억원대 회사가 4400억원대 도시개발사업 시행자로 지정받은 만큼 사업수행 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우려된다. 내자 2500억원, 외자 1900억원을 유치하겠다는 회사 측의 입장 또한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고 지적하며 인허가 과정상의 문제를 제기했지만, 고양시는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며 민원을 묵살했다.

 

도시개발법상 주택법과 건설산업기본법 적용을 받는 시행자의 요건은 당기순손실이 발생하지 않는 법인으로서, 경영 건전성 판단을 가장 중요한 사업 시행자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도시개발사업을 시행하면서 시행자의 재무 건전성을 꼼꼼히 살피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업인가 후 부도 등으로 건설이 중단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서민 피해를 예방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고양시는 이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만들지 않았다. 사업 시행자인 S산업개발이 ‘도시개발구역의 국공유지를 제외한 토지면적의 3분의 2 이상을 소유한 자’라는 이유만으로 사업자 지정을 해 줬다.

 

고양시의 논리는 해당 건설사가 사업자 지정 신청 당시 해당 토지의 3분의 2 이상을 소유한 토지 소유자로 도시개발법 11조 1항 5호의 요건을 충족한 만큼 절차에 따라 사업자로 지정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도시개발사업이란 토목공사에 의한 개발방식으로, 토목건설사업에 적합한 요건을 갖춘 사업자가 시행자로 참여해야 한다. 고양시는 사업자를 토지 소유자로 해석, 사업 시행자로 지정해 줬다는 점에서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지자체 도시개발부서의 간부는 “도시개발법상 시행사의 부도 등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시행자로서 요건을 갖춘 적격자 판단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결손법인의 경우 배제되는 것이 일반적인 일처리 방식”이라며 “결손법인인 시행사를 토지 소유자의 개념으로 인식하고 사업자 지정을 해 준 것은 주민의 피해는 염두에 두지 않은, 자의적인 재량행위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S산업개발은 2014년 말 사업 승인을 받았지만 아직까지 착공도 못하고 있어 조합원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상엽

 

사업 승인 3년 지났지만 첫 삽도 못 떠 피해 우려

 

더욱이 해당 업체는 시행자가 직접 건설해 일괄 공급하는 방식으로 사업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토지를 싼값에 매입한 뒤 지역주택조합에 비싼 값으로 되판 후 대행사로 물러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S산업개발은 수백억원대 차익을 얻었다는 점에서 시가 특정 업체의 땅투기를 방조해 준 것이 아니냐는 비난마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문제의 부지에 있는 목암지구 S밸리 공사현장은 당초 2018년 12월말 준공 예정이었지만 아직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 S산업개발이 2017년 9월 주택조합에 토지를 매매하면서 실수요자 공급 방식으로 사업이 변경됐기 때문이다. 2018년 12월말 준공을 목표로 한 사업계획은 현재 2019년 12월말로 사업시한이 변경된 상태다. 하지만 아직까지 착공 계획조차 접수되지 않고 있다. 해당 기간 내 사업 시행이 불투명한 상태여서 주택조합원들의 집단 피해가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인허가 과정상의 문제 등에 대해 고양시를 상대로 감사청구 등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역 정치권에서도 해당 민원이 접수될 경우 적극 개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파문이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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