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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전의 ‘눈물’ 지금도 통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시대를 뛰어넘은 감동

하재근 문화 평론가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2.23(Sat) 15:00:00 | 14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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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가수들의 명곡 리메이크가 관습으로 자리 잡은 가요계에 비해 드라마계엔 리메이크 문화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최근 리메이크 드라마가 등장해 화제다. 바로 tvN의 4부작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인데, 1회 방영이 끝나자마자 눈물 흘리며 봤다는 시청자 반응이 속출할 정도로 호응이 컸다.

 

가족을 위해 평생 헌신해 온 중년 주부가 어느 날 갑자기 암 선고를 받는다는 내용이다. 남편은 집안일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무뚝뚝한 전형적인 한국 가부장으로 유동근이 연기한다. 주부 역할은 미국에서 돌아와 컴백한 원미경이 맡았다. 정정했을 땐 시집살이를 시켰고 노년기엔 치매에 걸려 며느리를 끝까지 고생시키는 시어머니 역은 김영옥, 엄마에게 무심하고 자기들만 아는 딸과 아들은 최지우와 최민호가 연기한다.

 

극 중에서 어머니의 삶은 오로지 가족을 위한 희생 그 자체다. 하지만 아무도 그 희생을 알아주지 않는다. 저마다 자기 사정만 생각할 뿐, 어머니의 고충은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다. 어머니가 으레 그 자리에서 밥 차려주고, 청소해 주고, 빨래해 주고, 일 있으면 다독여주고, 걱정해 주며, 입바른 잔소리를 하는 그런 존재로 영원히 있을 것만 같은 평범한 가정. 그러다 말기암 진단이 벼락같이 닥치며 가족이 비로소 어머니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어머니는 퍼주기만 하면서 영원히 자리를 지키는 로봇이 아니었다.

 

무뚝뚝했던 남편부터 회한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고, 어머니 속을 썩이기만 했던 가족들 한 명 한 명이 비로소 어머니를 걱정하게 된다. 이러면서 모래알처럼 각자 떨어져 살던 가족이 마침내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난다는 이야기다. 원미경은 실제 미국에서 세 아들을 돌보느라 전성기 시절 한국에서 드라마를 찍을 때보다 더 정신없이 살았다고 한다. 자식들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는 극중 주인공과 비슷한 것이다.

 


 

‘96년엔 엄마 생각에, 지금은 자식 생각에 울어’

 

리메이크하면서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다. 1996년에 방영된 원작과 거의 유사한 구성이다. 당시 MBC 창사 35주년 특집극 4부작으로 방영됐는데, 그때의 노희경 작가가 이번 작품에도 역시 직접 대본을 맡았다. 1996년 당시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백상예술대상 작품상과 대상을 수상했다. 그땐 주부 역할에 나문희, 남편은 주현, 시어머니는 김영옥, 딸에 이민영, 아들은 이종수였다. 김영옥이 무려 21년의 시차를 뛰어넘어 같은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 놀랍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며느리 역의 나문희가 치매 시어머니인 김영옥을 부둥켜안고 같이 죽자며 오열할 때 온 국민이 눈물을 흘렸다. 주인공 병명이 난소암·자궁암이었는데, 드라마 방영 후 이 병을 검진하려는 사람들이 병원에 장사진을 이뤘다고 한다.

 

‘초딩(초등학교) 때 첨 보고 꺼이꺼이 울었다’ 등 당시 드라마를 보며 대성통곡했다는 댓글이 이어지며 그때와 지금의 드라마를 비교하는 사람들도 나왔다. ‘1996년에 넘 넘 많이 울었어요. 근데 이제 엄마가 되어서 보니 그때보다 슬프네요. 그때는 울 엄마 생각에 울고 지금은 남겨질 내 새끼를 생각하니 더 슬퍼지네요’라며 21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가슴을 후벼 판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얼마나 많은 막장 드라마가 판을 쳤으면 20년 전 작품이 다시 나와도 공감을 얻을까?’라며 현 세태를 꼬집는 여론도 있다.

 

 

리메이크 가능케 한 것은 보편적인 공감의 힘

 

당시 드라마가 워낙 인기를 끌어 1997년엔 노희경 작가의 소설로도 출판됐고, 2008년엔 한국창극원의 창극으로 공연됐으며, 2010년엔 연극으로 관객과 만났다. 2011년엔 배종옥·김갑수·유준상 등이 출연한 영화로도 개봉됐다. 같은 해에 포토 시나리오북이 출판됐고, 2013년엔 고3 모의고사에 작품 대본 일부가 지문으로 출제됐다. 2015년엔 소설 개정판이 나왔으며, 올해엔 이례적으로 리메이크 드라마까지 등장한 것이다. 이 정도로 끊임없이 조명받아 왔다는 것은 이 작품의 무언가가 한국인의 정서 깊은 곳을 건드려 보편적인 공감을 얻어냈다고 봐야 한다.

 

그것은 바로 전통적인 어머니상과 가족의 가치다. 이 작품에서 어머니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헌신한다. 본인이 아프면서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직접 돌보기까지 하는 것이다. 시어머니는 글자 그대로 ‘벽에 똥칠을 하는’ 고전적인 중증 치매다. 그런 시어머니를 묵묵히 돌보며 남편·자식들까지 챙기는 어머니. 우리 전통적인 어머니상을 실제보다 과장해 그렸다. 그런 어머니가 갑자기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다는 설정에 사람들이 공감하며 눈물을 흘린다는 건, 아직까지도 그렇게 희생하는 어머니가 많다는 뜻이다.

 

1996년에 국민이 공감했던 어머니상이 2017년에도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물론 그 사이에 세상이 많이 달라지기는 했다. 또 이런 드라마의 주 시청층이 중년 주부들이기 때문에, 중년 주부들의 자기 인식이 과하게 반영된 측면도 있다. 누구나 자기 자신을 ‘착한 희생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작품은 주 수요층에 대응하는 캐릭터를 착해서 당하기만 하는 역할로 그리는 경향이 있다. 주부들을 위한 ‘한풀이’ 드라마의 성격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 점을 감안해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여전히 보편적인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내는 건 분명하다. 요즘도 ‘엄마’는 가장 헌신적으로 자식을 보듬어 안아주는 넉넉한 품이고, 자식들은 나중에 어머니가 기력을 잃었을 때에나 그 품의 소중함을 깨닫고 뒤늦게 그리워한다. 바로 그런 정서를 이 작품이 그린 것이다. 서로 엇나가기만 하던 가족이 마침내 복원되며 ‘따뜻한 우리 집’을 이룬다는 설정도 보편적인 지지를 이끌어낸다. 외롭고 각박한 사회가 되면서 가족의 가치는 더 소중해졌다.

 

이렇게 보면, 희귀한 드라마 리메이크를 가능케 한 것은 결국 보편적인 공감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21년 전과 지금을 관통해 흐르는 정서를 잡아낸다면 리메이크도 성공적일 수 있는 것이다. 왜 하필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공감의 지점이 어머니의 처절한 희생이고 며느리의 한이냐는 점이 씁쓸한 대목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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