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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던 한반도 국가들, 왜 갑자기 흔들렸을까?

[이진아의 지구 위 인류사]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2.24(Sun) 15: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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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 연재를 통해 온난기에는 바다를 주(主) 무대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한랭기는 육지를 주 무대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득세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다. 한·중·일 3국 중에 온난기가 특히 큰 기회가 되어주는 편은 한반도에서 서해 바다를 낀 쪽에 살았던 인간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 

 

서기 원년 무렵부터 500년까지 지속되었던 ‘로마시대 기후최적’이라는 이름이 붙은 온난기 동안, 한반도에서는 사국시대라고 불리는 기간에는 바로 그런 양상이 전개됐다. 

 

일본은 바닷길 왕래라 해도 어차피 태평양 쪽으로 멀리 진출하지는 못하며 주로 한반도나 중국 동남해안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쪽은 이미 백제나 가야가 꽉 잡고 있었을 테니 이들과 경쟁하기보다는 연합하거나 그 수하로 들어갔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주류로 알려져 왔던 한족(漢族)이 바다에 익숙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이들의 본거지인 중원은 큰 강인 황하를 끼고 있지만, 하구 쪽 위도가 높은데다가 연안에 한류가 흐르고 항구로 이용할 만한 지형이 잘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해상활동의 베이스가 되기에 그리 적합하지는 않다. 뿐만 아니라 황하에서 이어지는 바다는 오래 전부터 한반도와 깊은 관련 있는 요하지역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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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만천과해(瞞天過海)’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하늘을 속이고 바다를 건넜다는 말인데, 일을 주도면밀하게 준비해야 실패가 없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 말이 이런 뜻으로 쓰이게 된 배경은 당 태종이 고구려를 정벌할 때의 사건이다. 바다를 지극히 무서워했던 태종이 배를 타기를 거부하자, 장군 장사귀가 배에 흙을 덮어 육지인 것처럼 속여 오르게 했다고 한다. 이밖에도 이 시기까지만 해도 중국의 배가 허접하고 중국 수군이 약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역사적 자료는 많이 있다.

 

요하인의 후손에 가까울 것으로 추정되는 백제인들과 남중국과 깊은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야인 등 한반도 해양족들이 승승장구하던 로마기후최적 온난기 동안 중국은, 아니 중국의 황허 유역을 중심으로 한 한족의 본고장은 지역별, 세력별로 쪼개져서 서로 싸우는 혼란을 연출하고 있었다. 전한을 쓰러뜨린 왕망이 세운 신나라에서 삼국시대, 남북조시대를 거치면서 거의 서로가 기진할 때까지 싸우는 형국이었다. 

 

온난기여서 농업생산성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인구가 늘어나게 되면, 그런데도 더 넓은 세상으로 진출할 기회가 차단돼 있으면 생기게 되는 현상이다. 황허에서 남쪽인 양쯔강 쪽으로는 이미 (아마 가야연맹 종주국으로서) 안정된 사회가 자리 잡고 있었고, 서해 쪽으로는 백제와 가야가 꽉 잡고 있었으며, 동북쪽으로는 별로 생산성이 높지 않은 산지 및 거기 터줏대감인 만만찮은 이민족들로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서기 500년 대 초반에 접어들자 세계 여러 곳에서 화산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그 화산재의 햇볕 차단 효과로 인해 갑자기 기온이 급강하하는 한랭기로 들어간다. 앞서 보았듯이 유럽에서는 이 시기가 지중해역에서 아랍인이 주도권을 잡는 중세암흑기였다. 

 

동아시아 정세도 빠르게 변해갔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활동 범위를 과시했던 가야가 일단 한반도에서 급격히 몰락해서 신라에 통합됐다. 규슈지방의 가야연맹 역시 끈 떨어진 연처럼 빠르게 원주민에 의해 퇴치됐을 것이다. 가랏파가 일본 원주민에게 붙잡혀 복종하게 된 얘기, 가라쿠니다케 바로 앞 에비노 고원 전투에서 가야군이 패망한 얘기를 설화 속 그림자처럼 남기고.

 

중국 대륙에서도 북부 내륙 쪽을 기반으로 한 육지 사람들의 활약으로 온난기동안의 혼란이 빠르게 수습되어 갔다. 이 한랭기에 권력을 주도한 이들은 중국 북쪽의 소수민족 선비족과 관련이 깊었다. 581년 수나라를 세운 문제는 선비에서 벼슬을 했던 한족 가문 출신이었고, 수를 이어 618년 건국된 당나라의 개국시조 이연은 선비족 출신으로 수나라 양제의 측근 중 하나였다. 물론 이들은 자신들의 선비족 관련성을 내세우지 않고 한족(漢族)의 정통성을 잇고 있음을 강조했다.

 

앞에서 나왔듯이 당나라는 약 600년 만에 양쯔강 유역을 다시 장악한 북방계 한족이었다. 앞 장에서 추정했던 대로 양쯔강 유역을 본거지로 한 해양족의 국호가 가야였든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이었든, 갑자기 한랭해지는 기후와 함께 어쩔 수 없이 빠르게 쇠락해갔을 것이다. 한반도와 규슈의 가야연맹은 그보다 먼저 와해됐고, 배를 만들 목재가 귀해 바다를 통해 새로운 영토를 확보하기도 어려웠을 터이다. 이들은 결국 한족으로 흡수되면서 일부는 그리 높지 않은 벼슬을 부여받아 중앙으로 진출하기도 했을 테고, 대부분은 지방의 해상(海商)으로 남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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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의 북서부 이민족, 선비족 출신인 당은 북동부 장악력이 약했다. 고구려는 퇴치했지만,  그 자리에 고구려 유민들이 세운 나라 발해가 등장했다. 발해는 동아시아 판세에서 곧 두각을 나타내서 요하유역을 대부분 회복하고 연해주까지 이르는 크고 강건한 국가로 성장했다. 그렇게 해서 중국과 한반도의 관계는 발해, 신라와 함께 세 나라가 필요에 따라 서로 대립각을 세우기도 하고 적당한 우호관계를 갖기도 하는 것으로 굴러갔다. 

 

그러면서 중원을 중심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국가가 들어서게 해주었던 한랭기는 또 지나가서 900년 무렵부터 온난기에 접어든다. 한랭기동안 육지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세워놓았던 질서는 당연히 다시 뒤집히기 시작한다. 

 

당이 중국을 장악했다 해도 그 통치력이 그렇게 견고한 것이 아니었다. 지방 토호 세력의 통치권을 사실상 그대로 인정하면서 중앙에서 ‘절도사’라는 관직명을 주어 적당히 엮어서 관리하는 형태였고, 세력이 큰 지방토호의 자제들을 환관으로 만들어 궁중에 인질처럼 묶어두는 관행도 비일비재했다. 온난기가 되어 다시 이런 지방 세력들, 특히 해양족들의 활동 규모가 커지자 이들의 반란이 없을 수 없었다. 결국 907년 절도사 주전충에 의해 당나라가 붕괴되자, 중국 대륙은 5대10국의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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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는 어땠을까? 900년대부터 1300년대까지의 온난기인 ‘중세 온난기’동안 유럽에서는 인구 폭발을 가져왔을 정도로 식량생산성이 높았고, 유럽인들이 주도하는 지중해 교역이 다른 어느 때보다도 번창했었다. 그 이전 온난기인 ‘로마시대 기후최적’ 동안 유럽 못지않은, 아니 여러 모로 유럽을 훨씬 능가하는 번영을 구가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반도 해양족들이다. 이번에도 그렇게 화려한 플레이를 보여주었을까?

 

이 시기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서기 원년부터 500년 정도에 걸쳤던 로마시대 기후최적기 당시보다는 훨씬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아무리 중국에 의해 역사왜곡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 정도 번영을 구가했다면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을 구석이 남아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시기의 기록은 정반대의 상황을 전해준다. 한동안 잘 나가던 발해는 900년대 들어서면서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해서 926년 거란족의 요나라에 의해 붕괴되고 만다. 당나라까지 동원, 국권을 튼튼히 하려했던 신라는 약 200년 후인 800년대 말에 위기를 맞고, 후삼국시대로 분열됐다가, 936년 이 모두를 통합한 왕건의 고려가 세워지면서 종말을 맞는다.

 

고려는 하대 신라에 비해서는 해상활동이 활발했던 것으로 보이나, 이전 시대의 가야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눈에 띠는 것은 이때쯤부터는 한반도 국가의 국격이 중국에 비해 많이 낮아졌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자료들이 적잖이 있다는 점이다. 이어지는 한랭기에 세워졌던 조선보다는 나았을지 몰라도, 한반도 국가는 고려 때부터 중국에 밀리는 모습을 확실히 보여준다.

 

서기 900년 무렵, 중세 온난기로 불리는 온난기가 다시 지구상을 덮었다. 빙하기 이후 1만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반도에 그렇게도 풍성한 혜택을 베풀어주었던 온난기가 온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 국가들은 예전의 위용을 되찾기는커녕, 오랜 세월동안 비교적 열세에 있었던 중국에 오히려 눌려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인다.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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