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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용돈 시댁에 드리고 심부름 처가에 시킨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2.22(Fri) 10:30:00 | 14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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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 시댁에 드리고 심부름 처가에 시킨다.” 최근 SNS에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기사 제목이다. 처음엔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기사라 생각했다. 1980년대 초반 조사에서도 이미 시댁과는 공식적이고 경제적인 교환 관계를 맺고 있었고, 친정과는 비공식적이고 정서적인 교류 관계를 맺고 있었음이 두루 감지됐기 때문이다.

 

한데 기사의 내용보다 정작 눈길을 끌었던 건, SNS를 떠다니던 댓글의 논조가 예상외로 격하다는 사실이었다. “처가가 아직도 봉이냐” “이 시대의 새로운 차별방식이구나” “친정엄마의 AS는 도대체 언제 끝나나” “딸만 둔 우리 엄마는 뼈 빠지게 일만 하고 용돈은 어디서 받지” 등등.

 

친족관계가 일방적 부계(父系)제를 지나 미묘한 양계(兩系)제로 변형돼 가는 와중에, 저마다 무엇을 어찌해야 좋을지 감조차 잡기 어려운 아노미 상태에 빠져든 것 같다. 지금까지 부계제를 유지해 온 전통적 친족 규범은 설득력을 잃었는데 아직 양계제에 부응하는 규범은 출현하지 않았기에 갈등과 혼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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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2000년대 초반 《장남과 그의 아내》란 책에서는 당시 젊은 여성들의 며느리 정체성이 약화일로에 있음을 예증한 바 있다. 시어머니 세대는 맏며느리는 하늘이 내린다고 믿어왔건만, 며느리 세대로 오니 “제가 맏며느리예요” 하는 대신 “제 남편이 장남이랍니다” 하게 된 변화를 예리하게 포착했던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어머니 편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들 또한 편치만은 않다. 당신 며느리 시절, 고추보다 맵다는 시집살이하느라 기 한번 못 펴고 살았는데, 막상 시어머니가 되고 보니 며느리가 사라져버렸다는 푸념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20대 며느리들이 “우린 고부갈등 없어요” 하는 이유는 며느리 머릿속에 시어머님이 거의 안 계시기 때문이라지 않던가.

 

“시댁에 얼마나 자주 전화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요즘 며느리들은 “시댁으로부터 얼마 받았는데요”라고 답한다는 정도는 시어머니들도 익히 알고 있다. 강북지역 전세 얻어주셨으면 한 달에 1번 전화드리면 된다나. 그래도 이 정도는 약과다. 아들이 골라온 며느리를 대놓고 반대했더니, 결혼하고 찾아간 아들네 신혼집 앞에서 문전박대(門前薄待)를 당했다는 시어머니 실화는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딸 입장에서는 그래도 친정엄마가 만만하기만 한데, 입장을 바꿔 사위 목소리를 들어보면 당혹스럽긴 매한가지다. 결혼 조건으로 처가의 경제력을 따져보긴 하지만, 막상 처가 근처에 신혼집을 마련하고 보면 장모님 잔소리에 스트레스가 고조된다는 사위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이제 고부갈등의 시대는 가고 장서갈등의 시대가 왔다지 않는가.

 

문제는 친족 사이에 오가는 미묘한 갈등과 혼란의 근저에 한국 특유의 역할중심적 인간관계가 자리하고 있음일 것이다. 시어머니도 한때는 며느리였다는 사실, 내 며느리가 사돈댁 딸이요, 내 아들이 사돈댁 사위라는 사실을 그 누가 모르겠는가. 그럼에도 상대의 입장이 돼 보기보다, 시어머니일 때는 철저히 시어머니 역할에 충실해 며느리를 못마땅해하고, 친정어머니일 때는 어느 새 딸 편이 돼 사위에게 잔소릴 해대는 것이 우리네 슬픈 자화상일 게다.

 

어쩌면 서구에서도 개인주의를 제도화하고, 역할 대신 보편적 가치에 입각해 인간관계를 이루기까지는 분명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행여 시댁엔 용돈 드리고 친정엔 심부름 부탁하는 것이 불편하고 부당하다고 생각된다면 시댁, 친정 굳이 가리지 말고 은퇴한 부모님들께 용돈 드리고, 아들·딸·사위·며느리 구분하지 말고 인간관계에서 요구되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희생과 헌신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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