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화재 “드라이비트만 탓할 순 없어, 원칙 시공이 중요하다”
  • 김경민 기자 (kkim@sisajournal.com)
  • 승인 2017.12.22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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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신현준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화재안전연구소

 

12월21일 사망자 29명, 부상자 29의 인명 피해를 낸 충북 제천 화재의 원인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1층의 주차장에 세워진 차량에서 최초 발화가 시작됐다는 소방당국의 발표와 주차장의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불꽃이 튀어 화재로 이어졌다는 목격자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국내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단에 ‘드라이비트’라는 다소 생소한 용어가 자리잡았다. 드라이비트는 건축 시공법 중 하나로 스티로폼에 시멘트를 바른 단열재를 외장용으로 쓰는 방식이다. 제천 화재가 발생한 건물에 이 드라이비트 공법이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일부 언론에서 이를 급속한 불길 확산의 원흉으로 지목하며 누리꾼들의 관심을 끈 것이다.

 

‘드라이비트’란 명칭은 특정 독일 시공사의 외벽 단열 시스템을 지칭하는 상표명이다. 고유명사가 일반명사화된 케이스다. 건물에 필요한 단열 기법 가운데 외벽에 단열재를 보충하는 ‘외단열 공법’의 하나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내단열 공법보다 단열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시공이 쉽고 간편해 공사 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데다, 공사비도 저렴한 편이다. 다가구주택이나 주상복합 건물 등의 외벽 마감재로 많이 쓰이는 이유다.

 

12월22일 대형 참사를 빚은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현장에서 경찰, 국과수, 소방당국이 화재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드라이비트는 외단열 공법 중 하나 지칭

 

하지만 외부충격과 화재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화재발생시 단열재인 스티로폼에 불꽃이 옮겨 붙으면 빠른 시간에 번지는데다, 연소과정에서 유해물질과 연기가 많이 발생한다. 2015년1월 경기도 의정부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 당시 많은 인명피해를 냈을 때 드라이비트 공법이 도마에 오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2015년 의정부의 한 도시생활형 주택에서 발생한 이 화재로 5명이 숨지고 125명이 다쳤다. 당시 소방당국은 해당 주택의 외벽 마감재가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돼 있다 보니 불이 순식간에 위층으로 번졌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사고 이후 지난해 건축법 개정이 되면서 새로 짓는 6층 이상 건물에는 드라이비트 사용이 금지됐다. 화재가 난 제천 화재 현장인 두손스포리움은 법 시행 전인 2011년 7월에 준공이 돼 적용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삽시간에 8층짜리 건물을 불태우고 58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제천 화마. 과연 드라이비트 때문이었을까.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화재안전연구소 소속 신현준 선임위원은 12월22일 시사저널과의 전화인터뷰에서 “화제의 원인을 ‘드라이비트 때문이다’고 싸잡아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이 공법 자체가 화재 위험 노출시 취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잘못 시공된 드라이비트는 ‘굴뚝효과’ 낳아 화재시 위험

 

그는 “드라이비트 공법도 정확한 외단열 시공기준에 맞춰 시공하면 큰 문제가 없다”며 드라이비트 공법 자체를 위험 인자로 규정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단 건물의 본체를 이루는 콘크리트에 얼마나 밀착해 붙였는지, 또 단열재 바깥쪽에 몰탈과 같은 불연재마감처리를 규격에 맞게 했는지, 지면과 닿는 부분의 밀폐 마감을 잘 했는지 등 시공 요건을 맞췄는지 확인하는 게 우선이란 설명이다. 

 

“오래된 건물에 가보면 지면에 닿는 부분의 마감이 잘 안 돼 있어 어른 손 하나가 쑥 들어가기도 한다. 만약 그런 부분으로 불이 옮겨 붙게 되면 ‘굴뚝효과’(부력에 의해 공기가 흐르는 현상)에 따라 열이 빠르게 위로 확산된다. 그 과정에서 단열재는 오히려 불쏘시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신현준 선임위원은 이번 제천 화재 사고에서 1층에서 시작된 불길이 어떻게 저렇게 빠른 속도로 윗층으로 번질 수 있는지 놀라울 정도라고 말했다. 현장을 영상과 사진으로밖에 접하지 못해 조심스럽다는 그는 “외부에서 시작된 불길이 어떻게 저렇게 빨리 내부로 확산돼 들어갈 수 있나”며 “건물 내에 가연성 물질이 상당히 많은 것처럼 보일 정도”라고 말했다. “과연 저 건물 안에 방화 설비들이 제대로 돼있었나 싶을 정도”라고도 덧붙였다. 

 

신 선임위원은 “결국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건축물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들어가는 시공, 감리, 발주, 허가 등 모든 단계가 원칙을 지켰다면 이런 참사가 빈번히 발생하진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건축법과 소방법 등에 화재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규칙들이 담겨 있다. 하지만 법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기준이다. 법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이 최소한의 것만 지켜도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는데, 그나마도 안 지키는 게 우리 현실이다.”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는 중에도 또 다른 화재 현장에 나가있던 그는 안전장치에 대한 투자를 아끼는 시공주들에 대해서도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다. 그는 “많은 시공주들이 눈에 보이는 인테리어, 조경 등엔 돈을 아끼지 않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고 언제 활용하게 될지 모르는 안전장치에 대해선 돈을 들이지 않으려 한다”며 지적했다. 화재는 언제든, 어떤 이유로든 발생할 수 있는 것. 그는 “내 생명은 내가 지킨다는 마음으로 건축물을 시공해야 한다”며 “안전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12월22일 오후3시 현재 제천 화재 사고에 대한 정확한 원인 규명은 이뤄지지 않았으며, 현재까지도 경찰과 소방당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합동으로 화재 원인 규명을 위한 현장 감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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