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대세돌’ 방탄소년단 팝의 본고장 뚫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7.12.26 09:02
  • 호수 1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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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성공 ‘DNA’는 ‘피·땀·눈물’…세계적 팝스타들과 어깨 나란히

 

K팝의 역사는 2017년을 기점으로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이 바로 방탄소년단(BTS)이다. 방탄소년단은 K팝이라는 하나의 문화를, 미국을 비롯한 해외 시장에 각인시켰다. 그들을 탄생시킨 방시혁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대표의 말대로, 방탄소년단의 2017년이야말로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역동적 서사’다.

 

2000년대 초반부터 K팝은 꾸준히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려왔다. 그러나 3대 기획사인 SM, JYP, YG도 기대만큼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방탄소년단은 달랐다. 중소형 기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출신의 방탄소년단은 미국 시장을 노린 적도, 정식으로 미국에 진출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미국의 유명 대중음악 순위 차트인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렸고, 전 세계 팬들의 요청과 주최 측의 초대로 미국 무대에 올랐다.

 

지난 11월1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2017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erican Music Awards·AMA)에서 방탄소년단의 히트곡 《DNA》 무대가 화려하게 펼쳐졌다. AMA를 독점 중계한 ABC TV를 통해 약 900만 명의 미국 시청자가 시상식을 봤다. 공연 도중 방탄소년단은 구글 실시간 트렌드 1위를 기록했다.

 

방탄소년단은 11월1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2017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A)에 K팝 그룹 최초이자 올해 유일한 아시아 뮤지션으로 초청받았다. AMA는 빌보드 뮤직 어워드, 그래미 어워드와 함께 미국 3대 음악시상식으로 불린다. © 사진=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빌보드 뮤직 어워드 K팝 그룹으로는 최초 수상

 

방탄소년단은 지난 5월 미국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K팝 그룹으로는 최초로 ‘톱 소셜 아티스트(Top Social Artist)’ 부문을 수상하며 이미 K팝의 역사를 썼다. 2011년 신설돼 최근 1년간 앨범 판매량과 팬 투표 등으로 수상자를 뽑는 이 부문에서, 6년 동안 팝스타 저스틴 비버가 수상을 놓친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비버를 비롯해 미국에서 10~20대에게 인기가 높은 아리아나 그란데, 셀리나 고메즈, 숀 멘디스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후보에 올랐지만, 방탄소년단이 3억2000만 표 이상을 받아 한국 그룹 최초로 트로피를 수상하는 이변이 벌어졌다.

 

지난 12월5일에는 빌보드 차트에서 한국 아이돌 그룹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방탄소년단의 《마이크 드롭(MIC Drop)》 리믹스가 ‘빌보드 핫100’ 차트에 28위로 진입한 것이다. K팝 그룹으로는 최초로 톱40에 진입하면서, 방탄소년단은 자체 기록이었던 《DNA》의 67위 기록을 경신했다. ‘빌보드 200’에서도 ‘LOVE YOURSELF 承 Her(러브 유어셀프 승 허)’ 앨범으로 148계단 상승한 50위에 랭크됐으며, 월드 앨범 차트 1위, 아티스트 100 12위, 인디펜던트 앨범 36위 등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 가수 중 빌보드 최고 기록은 2012년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를 강타했던 싸이가 갖고 있었다. 당시 싸이는 《강남스타일》로 빌보드 핫100 차트 7주 연속 2위를 기록하는 등 한국 가수로서 가장 큰 파급력을 발휘했다. 싸이 이후 4년 이상 전인미답이었던 빌보드 핫100 차트와 빌보드 200 차트에 방탄소년단의 이름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인기는 싸이와는 다른 양상이다. 싸이의 파급력이 코믹한 뮤직비디오와 춤, 보편적으로 사랑받는 EDM(Electronic Dance Music) 트렌드가 결합돼 나온 것이라면, 방탄소년단은 K팝의 전형을 보여주면서 승부를 걸었다는 점이 차별화된다. 계속 추구해 왔지만 해외 팬들에게 본격적으로 어필하지 못했던 K팝의 매력이 방탄소년단에 의해 드러났다는 평가다. 보편적 B급 정서에서 출발한 싸이와 달리, 전 세계에 분포한 강력한 ‘팬덤’을 바탕으로 밑바닥부터 시작한 경우라 지속 가능성에 대한 기대도 크다. 방탄소년단은 2017 빌보드 연말결산 톱 아티스트 순위에서도 10위를 기록하면서, 싸이가 지난 2013년 같은 부문에서 56위에 오른 기록을 뒤집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미국 음악 산업에서 세계화 단면을 대변한다”며 방탄소년단의 인기를 조명했다. 지난 7월에는 미국 대중음악 매거진 롤링스톤이 ‘꼭 알아야 할 10명의 아티스트’ 중 하나로 방탄소년단을 꼽았다.

 

방탄소년단의 전 세계적인 인기는 미국 현지 미디어를 통해 비틀스의 인기와 비견되기도 했다. 지난 11월 AMA 축하무대 참가차 미국을 방문한 방탄소년단은 일주일 동안 미국 3대 전국 방송의 간판 토크쇼에 출연하며 스케줄을 소화했다. CBS 토크쇼 《제임스 코든의 더 레이트 레이트 쇼(The Late Late Show with James Corden)》와 NBC 《엘렌 드제너러스 쇼(The Ellen DeGeneres Show)》, ABC 《지미 키멜 라이브(Jimmy Kimmel Live)》 등에 출연했다. 특히 11월27일 방송된 《엘렌쇼》에서 엘렌은 “LA 공항에 왔을 때 비틀스가 온 것 같았다”고 비유했다.

 

 

“음악으로 승부를 보겠다” 정공법 택해 성공

 

RM(김남준, 1994년생, 리더), 진(김석진, 1992년생), 슈가(민윤기, 1993년생), 제이홉(정호석, 1994년생), 지민(박지민, 1995년생), 뷔(김태형, 1995년생), 정국(전정국, 1997년생).

 

7명의 방탄소년단은 방시혁 대표의 지휘 아래 3년여의 연습시간을 보내고 2013년 6월 데뷔했다. 데뷔 후 2년간은 큰 조명을 받지 못하고 국내와 일본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조명을 받지 못할 당시에도 멤버들에 대한 주목도는 높았다. RM과 슈가 등 프로듀싱 능력을 갖춘 멤버들이 많았고, 막연한 대중성을 쫓기보다 자신들만의 음악을 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기 때문이다. 당시 슈가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인기는 인간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며 “음악으로 결국 승부를 보는 게 정공법”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2015년 11월 내놓은 《화양연화》 연작 시리즈가 주목을 받으면서 성장세가 시작됐다. 2015년 11월에 발표한 《화양연화 pt.2》와 지난해 5월 내놓은 《화양연화 영 포에버》가 ‘빌보드 200’에 171위와 107위에 걸리면서 ‘BTS 신드롬’을 예고했다. 이후 빌보드 200에 한국 가수 최초로 4연속 진입했고, 마침내 AMA에서 최초로 단독 공연을 펼친 K팝 가수가 됐다.

 

정공법을 택하겠다는 방탄소년단의 약속답게, 트레이드 마크인 군무 실력은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멤버들이 직접 음반 제작에 참여하는 것도 주목된다. 특히 슈가와 RM은 연습생 시절부터 작사와 작곡, 프로듀싱을 해 왔다. RM과 슈가는 《봄날》을 작사·작곡했고, RM은 히든트랙 《바다》와 팬송의 프로듀싱을 맡기도 했다. 슈가는 수란의 《오늘 취하면》의 프로듀싱을 맡아 2017년 MMA에서 프로듀서로 수상했다. 히트곡 《DNA》 역시 슈가와 RM이 작사·작곡에 참여했다.

 

방탄소년단은 “총알을 막아낸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이름이다. 10대와 20대들이 사회적 편견과 억압을 받는 것을 막아내고, 당당히 자신들의 음악과 가치를 지켜내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러한 취지에 맞게, 방탄소년단의 음악에는 10~20대 청춘의 방황과 고민이 들어 있다는 평가다.

 

방탄소년단은 5월21일 미국에서 열린 2017 빌보드 뮤직 어워드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왼쪽부터 뷔, 진, RM, 정국, 슈가, 지민, 제이홉 © 사진=AFP 연합

 

방탄소년단이 새롭게 쓴 인문학

 

방탄소년단은 데뷔 앨범 ‘2 COOL 4 SKOOL(투 쿨 포 스쿨)’(2013)을 시작으로 ‘Skool Luv Affair(스쿨 러브 어페어)’까지 ‘학교 3부작’을 발표했다. 

 

“지겨운 same day 반복되는 매일에/어른들과 부모님은 틀에 박힌 꿈을 주입해/장래희망 넘버원…공무원?/강요된 꿈은 아냐/9회말 구원투수/시간 낭비인 야자에 돌직구를 날려/지옥 같은 사회에 반항해 꿈을 특별 사면/자신에게 물어봐 네 꿈의 profile/억압만 받던 인생 네 삶의 주어가 되어 봐.”

데뷔 타이틀 《No More Dream》에서는 획일화된 성공 법칙을 강요하는 것에 반발하며, 청소년들의 꿈에 대한 메시지를 던졌다. 미니앨범 ‘O!RUL8,2?(Oh! Are you late, too?)’의 《NO》를 통해서는 교육 현실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방탄소년단의 전환기로 꼽히는 2015년 내놓은 ‘청춘 2부작’ 《화양연화 pt1~2》(2015)에서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는 뜻의 타이틀에 맞게,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20대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수록곡 《쩔어》를 통해서는 청춘들을 응원하고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3포 세대 5포 세대/그럼 난 육포가 좋으니까 6포 세대/언론과 어른들은 의지가 없다며 우릴 싹 주식처럼 매도해/왜 해 보기도 전에 죽여 걔넨 enemy enemy enemy/왜 벌써부터 고개를 숙여 받아 energy energy energy/절대 마 포기 you know you not lonely/너와 내 새벽은 낮보다 예뻐.”

2016년 가을 발매된 ‘WINGS’ 앨범은 헤르만 헤세의 고전문학소설 《데미안》이 모티브가 됐다. 《데미안》은 주인공 싱클레어가 세계의 균열을 겪으며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소설이다. 티저 형식의 쇼트 필름부터 뮤직비디오, 곡의 구성에 이르기까지 전체 콘셉트를 《데미안》에서 따왔다. 마지막 쇼트 필름은 소설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다.”

RM은 “방탄소년단은 원래 소년의 성장과 10대, 20대의 고민을 음악에 담고자 한다. 《데미안》 속 싱클레어가 성장하면서 데미안을 만나고 여러 가지 고난과 시련을 맞닥뜨리는 과정이 저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맞닿았다”며 “많은 분들이 아시는 작품에서 영감을 빌려오면 좋을 것 같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유혹을 만나 갈등을 겪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의 성장을 그린 이 앨범은 방탄소년단 자신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LOVE YOURSELF 承 Her’는 방탄소년단이 2018년까지 선보이는 ‘러브 유어셀프 시리즈’의 첫 번째 앨범으로, 사랑에 빠진 풋풋한 청춘의 모습을 담았다. 이러한 ‘분명한 메시지’가 방탄소년단의 미국 차트 K팝 기록을 세웠다는 해석도 있다. 빌보드는 지난 10월 칼럼을 통해 “방탄소년단은 말하고자 하는 분명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며 “‘《피 땀 눈물》에서 안무를 통해 인생과 어긋난 관계를 표현하는가 하면, 정신적인 고뇌와 아이돌로서의 삶, 여성을 응원하는 노래까지 한국 문화에서 잘 다루지 않는 독특한 주제를 다뤘다”고 설명했다.

 

 

SNS로 적극적인 팬덤 구성·V앱 생중계도

 

해외에서 방탄소년단의 인기는 입덕한 팬들이나 대중문화 관련 종사자들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급작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은 이미 퍼포먼스와 SNS를 통해 전 세계 팬들을 사로잡을 준비가 돼 있었다.

 

방시혁 대표는 방탄소년단의 성공 시발점이 어디였는지를 묻는 질문에 “《쩔어》라는 노래가 유튜브에서 리액션을 중심으로 한 유튜버들의 관심을 받게 되고, 아이돌 팬들의 용어로 소위 ‘영업’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것 같다”며 “이어 《불타오르네》라는 노래로 결집된 팬들의 관심이 응축됐고 《피 땀 눈물》로 인해 대중성을 확보하게 된 것 같다. 이후 빌보드라든지 미국 언론들의 관심 등이 모여 현재에 이르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방탄소년단의 성공 비결로 꼽히는 것 중 하나 역시 SNS상에서 이루어지는 팬과의 소통이다. 당연히 방탄소년단 팬덤인 아미(ARMY)를 떠나 논할 수 없다. 특히 아미는 국내나 미국 내 아시안 커뮤니티에 국한되지 않고, SNS를 기반으로 뜨거운 연대를 보이고 있다. 아미에게 방탄소년단이 보내는 애정도 각별하다. 아미와 SNS를 통해 일상을 공유하고, 네이버 ‘V앱’을 통해 팬들과 실시간 소통하고, 멤버들의 생활을 리얼리티로 보여준다. 데뷔일인 6월13일에 맞춰 매년 팬들과 홈파티를 연다. 2017년 열린 홈파티도 V라이브로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방탄소년단은 트위터에서 국내 가수 중 최초로 1000만 팔로워를 돌파했으며, ‘트위터 최다 활동’ 남성 그룹 부문에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미국 주간지 US 위클리가 선정한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유명인’(The Most Influential Celebrities on Social Media)에 비욘세, 아리아나 그란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과 함께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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