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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광복군 청사 철거 사실 숨겼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시절, 중국 내 임시정부 유산 실태 숨기기 급급

모종혁 중국 통신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2.29(Fri) 08:00:00 | 14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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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와서 보니 가슴이 멥니다.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기억해야 나라도 미래가 있습니다.”

 

12월16일 오전 중국 충칭(重慶)에 소재한 임시정부 연화지(蓮花池) 청사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감회는 남달랐다. 문 대통령은 오랫동안 대한민국 건국일이 임정 수립일인 1919년 4월13일이라고 말해 왔다. 대통령선거에선 임정기념관을 국립시설로 설립하는 공약을 내세웠다. 국가보훈처는 2020년까지 364억원을 들여 임정기념관을 짓기로 결정하고 2018년 예산을 확보했다.

 

문 대통령은 연화지 청사에서 이런 의지를 재확인했다. “임정은 대한민국의 뿌리이자 법통”이라며 “2019년은 임정 수립 100주년이 되고, 그것은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이다”고 말했다. 2011년 7월 필자는 베이징, 옌안(延安), 시안(西安), 푸양(阜陽), 치장(綦江), 충칭 등 중국 각지에 흩어진 임시정부와 광복군 관련 유적을 취재했다. 그 결과를 ‘망가지고 헐리는 광복군 유산’이란 제목의 기사로 고발했다. 사실 문 대통령은 이번에 충칭의 관련 유적을 제대로 살펴볼 수 없었다. 6년 전 건재했던 임정의 오사야항(吳師爺巷) 청사와 광복군 총사령부 청사가 철거돼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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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 ‘홍보용’으로 쓰인 中 임시정부

 

임시정부는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일본의 거센 핍박을 피해 상하이를 떠났다. 1937년엔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전면적인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임정 대식구는 창사, 광저우(廣州), 류저우, 구이양(貴陽), 치장 등 대륙을 떠돌다가 1939년 9월 충칭에 입성했다. 당시 충칭은 중국의 피난 수도였다. 일본 공군이 날마다 밤낮없이 폭격을 퍼부어 안전한 곳을 찾기 힘들었다. 이로 인해 임정은 보금자리를 네 번이나 옮겨야 했다. 또한 첫 번째와 두 번째 청사는 폭격과 화재, 도로 정비로 진작에 사라졌다.

 

임정이 세 번째로 마련했던 곳이 오사야항 청사다. 오사야항 청사는 《백범일지》 하권의 머리말에 등장한다. 당시 김구 선생은 병든 노구를 한탄하면서도 새로운 희망에 충만해 앞날을 낙관했다. 실제 임정은 1940년 9월 광복군을 창설해 대일 무력투쟁의 중심에 섰다. 1942년에는 김규식이 이끄는 중도파와 김원봉이 이끄는 사회주의 세력까지 아우르면서 통합정부로 발돋움했다.

 

오사야항 청사는 허핑루(和平路) 5~7호에 있었다. 2층 목조 가옥으로 방이 70여 칸일 정도로 컸다. 임정은 1945년 1월 연화지 38호로 옮겨갈 때까지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고, 그 뒤엔 요인들의 숙소로 사용했다. 필자는 2005년 오사야항 청사를 처음 찾았다. 건물은 일부밖에 남지 않았으나 기본 원형은 유지됐다. 당시 만났던 현지 주민은 반세기 전 건물의 전체 구조를 또렷이 증언했다. 하지만 2013년 필자가 마지막으로 방문하고 2주 뒤에 청사는 철거됐다. 청사 앞 표지석도 뽑혀 연화지 청사 창고에 처박혔다.

 

광복군 총사령부 청사는 도시 재개발사업에 따라 2015년에 헐렸다. 광복군은 1943년 사령부를 일본군과의 전선에서 가까운 시안으로 이전했다. 하지만 중국군과의 협력 및 군사적 지원 문제가 불거졌다. 이에 따라 도심 한복판인 쩌우룽루(鄒容路) 37호에 총사령부를 따로 설치했다. 본래 청사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원형대로 보존됐던 광복군 관련 유적이었다. 비록 건물 전면은 음식점이 사용하면서 개조됐지만, 뒷면과 전체 윤곽은 옛 모습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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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사야항 및 광복군 청사가 사라지는 기간 동안 박근혜 정부는 무엇을 했을까. 오사야항 청사 일대 부지는 오래전부터 도시 정화계획에 따라 철거가 확정됐다. 실제 청사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건물이 모두 헐렸다. 또한 청사 상태가 너무나 퇴락해 대대적인 개보수를 해야만 보존이 가능했다. 충칭시 정부는 “청사를 철거하고 그 터에 한국풍속거리를 만들어 복원하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다. 이는 한국 기업 투자와 한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광복군 청사도 철거하되, 일부를 한국거리에 복원하겠다는 의사를 우리 정부에 전달했다.

 

광복군 청사 부지는 번화가의 노른자위 땅으로, 10년 전 민간 부동산개발회사에 팔렸다. 즉, 우리 정부가 수백억원의 보상금을 지불하지 않는 한 원형 보존은 불가능했다. 충칭시 정부는 청사 보존에 줄곧 난색을 표했다. 이에 따라 2014년 1월 국가보훈처는 충칭시의 의견을 받아들여 “광복군 청사를 이전 복원하고 현 건물터엔 기념비를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참으로 아쉬운 결정이었지만, 외국 땅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는 사안이기에 어찌 보면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하지만 같은 해 4월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가 충칭을 방문해 쑨정차이(孫政才) 당서기에게 원형 보존을 요청했다. 이에 양국 간 합의는 3개월 만에 뒤엎어지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12월 국가보훈처는 “중국 측과 오랜 교섭 끝에 원형 보존이 결정됐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따라서 충칭시의 한국풍속거리 조성계획은 없던 일이 됐다. 그러나 불과 반년여 만에 광복군 청사는 전격 철거됐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뒤 국가보훈처는 이 사실을 숨겼다. 또한 독립기념관 홈페이지에서 두 청사의 소개를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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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도 복원도 못했으면서 행사는 최고급

 

이런 와중에 주 청두(成都) 총영사관은 두 청사 문제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는 “해외 독립투쟁 관련 유적의 보호와 관리는 국가보훈처 소관”이라는 외교부의 입장에서 비롯됐다. 사실 현지 공관의 관할 지역엔 우리 기업과 교민이 다른 곳보다 훨씬 적다. 따라서 오사야항 및 광복군 청사의 보존 및 복원이야말로 국익을 지키는 관할 공관의 주 임무라 할 수 있다. 지난 10월 총영사관 관계자는 “충칭시 정부 관리들이 사드 사태로 우리와의 만남을 피해 광복군 청사 문제를 협의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광복군 청사가 헐린 2015년은 한·중 관계의 친밀도가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행사까지 참석했었다. 지난 2년 동안 현지 공관은 임정 성립 기념식과 광복절 기념행사를 최고급 호텔에서 주최했다. 청사를 보존 내지는 복원하지도 못했으면서, 행사는 호화롭게 치렀다. 12월16일 청와대는 “이전 정부에서 합의됐으나 사드 문제로 인한 양국 간 갈등으로 중단됐던 광복군 총사령부 청사 터 복원 사업을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오사야항 및 광복군 청사에 얽힌 난맥상에 대한 진실 규명이 먼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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