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합의 때 日 비공개 요구, 정말 들어줬나?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7.12.2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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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단체 설득 노력하겠다”던 朴 정부…“접촉해온 적도 없었다”

 

박근혜 정부 때 발표된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두고 ‘이면합의’ 논란이 일고 있다. 당시 공개되지 않았던 발언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여기엔 소녀상 문제 등과 관련해 한국 측이 노력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런데 실제 노력은 전혀 없었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부가 위안부 합의가 끝나자 관련 문제에서 손을 뗀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외교부 장관 직속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가 2017년 12월27일 낸 보고서에 따르면, 2년 전 위안부 합의 발표(2015년 12월28일)를 앞두고 양국 외교장관은 비공개로 대화를 나눴다. 이는 일본 측이 묻고 한국 측이 답하는 식으로 이뤄져 있다. 

 

민주주의자주통일대학생협의회(민대협) 소속 대학생들이 2017년 12월28일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 촉구 기자회견을 마친 뒤 청와대 방면으로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비공개로 “노력하겠다”던 정부, 진짜 노력했나? 

 

당시 일본은 우선 “정대협(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 각종 단체가 불만 보일 경우 한국 정부는 동조하지 않고 설득해주기 바람”이라고 했다. 이에 한국은 “관련 단체의 이견 있다면 설득 위해 노력함”이라고 답했다. 정대협 등 위안부 관련 시민단체 6곳은 합의가 발표되자마자 비판에 나섰다. 

 

정부는 설득하려고 노력했을까. “전혀 노력하지 않았다”고 윤미향 정대협 대표는 12월28일 말했다. 그는 “오히려 우리가 외교부 면담을 요청했다”면서 “정부는 노력한 게 아니라 아예 우리의 입을 닫게 하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TF가 밝힌 두 번째 비공개 내용은 소녀상 이전에 관한 것이다. 일본은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어떻게 옮길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묻고 싶음”이라고 했고, 한국은 “소녀상에 대해 우려하는 점 인지하고, 대응방향에 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함”이라고 답했다. 

 

소녀상 설립을 주도한 정대협의 윤 대표는 “정부가 논의하려고 접촉한 적도 없다”고 했다. 이어 “우리의 의견을 수렴하거나 설득하려는 노력은 전혀 없었다”고 덧붙였다. 다만 정대협은 TF가 밝힌 비공개 내용이 이면합의란 주장에 대해선 동의했다. 

 

 

정대협, “전혀 노력 안 했다”

 

정부가 주저하는 사이 소녀상을 지킨 건 지자체였다. 서울 종로구가 2017년 7월 조례를 바꿔 대사관 앞 소녀상을 공공조형물로 지정한 것. 이에 따라 소녀상에 손을 대려면 설립 주체에게 통보하고, 관련 위원회의 심의도 거쳐야 한다. 

 

세 번째 비공개 내용은 해외 소녀상 설치 문제다. 일본은 “제3국에서 위안부 관련 상(像), 비(碑)의 설치에 대해, 이러한 움직임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함”이라고 했다. 그러자 한국은 “정부가 관여하지 않는다”라며 “이러한 움직임을 지원함이 없이, 한일관계 발전 위해 노력함”이라고 했다.  

 

이후 우리 정부가 소녀상을 외국에 두는 데 관여했는지의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개입하기도 힘들다.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소녀상 등 위안부 관련 조형물은 해외 11곳에 설치돼 있다. 다만 TF는 ‘지원함 없이’란 표현을 지적했다. 한국이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혔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이다. 

 

2017년 12월2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추모하고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해결하는 의미로 300개의 빈 의자와 소녀상이 설치돼있다. 정대협과 (주)아트앤아트코어는 이날 '빈 의자에 새긴 약속'이라는 주제로 퍼포먼스를 했다. © 사진=연합뉴스

 

“‘성노예’ 쓰지 말라”… 공개 문서 중엔 없어

 

마지막 비공개 내용은 명칭에 관한 것이다. 일본은 “앞으로 ‘성노예’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길 희망함”이라고 했고, 한국은 “공식 명칭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뿐임을 재차 확인함”이라고 했다. 

 

그 전까지 박근혜 정부는 성노예란 표현을 공식적으로 썼다.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은 2014년 3월 유엔 인권이사회에 참석해 성노예를 직접 말한 바 있다. 외교부의 ‘2015년 11월 남북관계일지’에는 “일본군 성노예”란 문구가 나온다. 반면 위안부 합의가 나온 2015년 12월 이후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성노예’란 키워드로 검색되는 문서는 없다. 

 

당시 정부가 일본에 비공개로 답변한 내용을 의식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예 위안부 문제에 관심조차 꺼버린 것일까. 위안부 합의 때 외교부 동북아국장으로서 실무를 이끌었던 이상덕 현 주싱가포르 대사에게 12월29일 전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 대사는 관계자를 통해 “통화가 곤란하다”는 짧은 입장만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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