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치용 “진짜 열심히 배구만 파고 살았다”
  •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2.29 15:54
  • 호수 1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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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의 생생토크] ‘성공한 배구인 롤모델’ 신치용 삼성화재 단장 “감독이 우승하겠다는 강력한 의지 보여야 선수들도 믿고 따른다”

 

2017년 12월16일 오전 7시30분, 삼성화재 신치용 단장(62)은 자신의 SNS에 ‘새로운 시작입니다. 52년 만에’라는 글을 올렸다. 평소 SNS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그가 이례적으로 글을 남긴 것도 눈에 띄었고, 그 내용에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곧장 신 단장에게 문자를 보내 그 글의 의미를 물었다. 신 단장은 고문으로 물러났다는 내용의 답을 보냈다.

 

1995년 삼성화재 초대 사령탑으로 취임한 신치용 단장은 겨울리그 최다 연승(77연승)과 최다 연속 우승(9연패)의 기록을 세우며 ‘우승 제조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5년 프로배구 V리그 출범 후에도 원년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시작으로 2007~08 시즌부터 무려 7시즌 연속 챔피언에 올랐다. ‘삼성 왕조’의 가치는 신치용 단장의 제자들인 신진식(삼성화재), 김세진(OK저축은행), 최태웅(현대캐피탈), 김상우(우리카드), 권순찬(KB손해보험) 등이 리그 사령탑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빛이 난다.

 

2014~15 시즌을 마치고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 삼성화재 배구단의 운영 주체인 제일기획 스포츠사업총괄 산하에서 배구단 단장 겸 스포츠구단 운영담당 부사장으로 승진했던 신치용 단장이 올 시즌을 끝으로 단장직을 내려놓고 상임 고문을 맡아 현장에서 물러난다. 신 단장을 지난 12월20일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신치용 삼성화재 단장 © 시사저널 임준선

 

단장직은 언제까지 유지되는 건가.

 

“12월31일까지로 알고 있다. 그래도 이미 방 뺄 준비는 다 했다(웃음). 분당 쪽에 사무실이 마련되면 곧장 이사할 예정이다.”

 

 

이런 인사가 이뤄지리라 예상했었나.

 

“어렴풋이 예상은 했었다. 그룹 전체가 57년생 이상 임원들은 정리한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들어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지난 12월15일 대전 홈에서 KB손해보험과의 경기를 앞두고 대전에 내려갔는데 서울 본사로부터 회사로 급히 들어와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차를 돌려 서울로 향하면서 나름 정리를 하고 회사에 들어갔다. 회사에선 내게 상임 고문직을 맡아 달라고 하더라. 사실상 잘렸다는 얘기였다. 감독 맡고 23년 동안 현장을 떠나지 않았던 내가 그날 처음으로 경기를 현장에서 보지 못했다. 만감이 교차했던 순간이었다.”

 

 

실감이 나나. 주위의 반응도 궁금하다.

 

“나이 많다는 이유로 물러나야 하는 건 받아들일 수 있는데, 시즌 중에 인사 발령이 나서 그런지 사람들이 오해를 하더라. 배구에서 엄청난 업적을 올렸고 23년째 삼성화재와 인연을 맺고 있는 데다 팀이 시즌 1위를 달리고 있는데 단장이 교체된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게 무슨 비리가 있거나 결정적인 흠이 있다고 보는 듯해서 상당히 언짢았다. 우리 팀이 흔들림 없이 지금의 성적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박)철우(사위이자 삼성화재 공격수)가 잘못하면 장인 나가니까 태업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철우한테 신신당부했다. 몸 관리 잘하고 좋은 성적 유지하라고. 잘못하면 서로 이상해질 수 있다고 말이다.”

 

 

별걸 다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아쉬움이 클 것 같다.

 

“조직에 남고 떠나는 건 인사권자의 권한이고 오래 했으니까 떠나는 것도 맞다. 그런데 이상한 소문은 못 견디겠더라. 그동안 이 자리에 있으면서 얼마나 많은 유혹을 받았겠나. 비리의 ‘비’자와 관계없이 살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삼성 임원으로 대우받으며 지냈다. 단장으로서 우승을 경험하고 싶었는데 그걸 이루지 못한 부분은 아쉬움이 남는다.”

 

 

선수들과는 아직 인사를 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배구단 숙소가 있는 삼성트레이닝센터에서 짐을 다 빼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고 또 센터로 출근하는 상황이 싫었다. 지금도 출근하면 사무실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구내식당에서 점심도 안 먹고 있다. 모든 게 정리되면 선수들을 모아놓고 정식으로 인사할 예정이다.”

 

 

솔직한 소감이 궁금하다.

 

“시원섭섭하다는 말이 가장 정확할 것 같다. 아직은 내가 배구단에 도움을 줄 일이 많은데 기회를 잃게 됐다는 서운함이 있는 반면 승부, 성적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난다는 해방감, 홀가분함은 존재한다. 평생 배구 하나만 보고 살았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감독이고 단장인데 현장을 떠나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고민도 많다.”

 

 

혹시 다른 팀에서 감독 제안이 온다면 받아들일 의향이 있나.

 

“글쎄, 그건 지금 답할 수 없을 것 같다. ‘삼성화재=신치용’이란 이미지가 박혀 있는데 내가 다른 팀을 맡아서 경기에 나간다는 게 쉽게 상상이 안 된다. 물론 고민은 할 것 같다. 그래서인지 며칠 전 아내(전미애씨)가 이런 얘기를 하더라. ‘당신의 배구에 대한 열정과 실력이 그냥 묻히는 건 아깝다’라고.”

 

 

지난 2년간 단장직을 맡아 배구단 운영을 경험했다. 행정 일은 처음이었다.

 

“요즘 프로야구도 선수 출신 단장이 대세를 이루는데 배구단도 마찬가지다. 나처럼 현장을 경험한 사람이 단장을 맡으면 그 팀 감독, 코칭스태프가 큰 도움을 받는다. 훈련 스케줄이나 선수들 특징을 모두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결재나 행정 절차 등의 경험이 없어 애를 먹기는 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금세 일을 배울 수 있었다.”

 

2013~14 시즌 프로배구리그에서 통합 우승한 삼성화재 선수들이 신치용 담시 감독을 헹가래치며 환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흥미로운 건 감독직에서 내려온 후 삼성화재가 창단 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신 단장과 호흡을 맞췄던 임도헌 코치가 차기 감독을 맡았지만 1년 만에 경질됐다.

 

“처음 단장을 맡고 나선 ‘나댄다’고 할까봐 코트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임 감독이 내 밑에서 10년 가까이 코치를 했는데 내가 나서서 잔소리하는 것도 이상해 보일 것 같아 아예 선수단을 멀리한 것이다. 그게 내 실수였다. 감독을 처음 맡은 임 감독의 어려움을 나눠줬어야 했는데 오해의 시선이 싫어 임 감독에게 모든 걸 맡겨둔 부분이 후회된다. 결국 내 손으로 임 감독을 경질할 수밖에 없었다. 배구 인생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이었다.”

 

 

V리그의 감독들 면면을 살펴보면 삼성화재 출신들이 많다. 모두 제자들이었는데 어떤 특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나.

 

“대부분 선수 때의 모습이 지도자를 하고 있는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현대캐피탈의 최태웅 감독은 실험 정신이 강한 스타일이다. 선수 때도 그런 플레이를 즐겨 했었다. OK저축은행의 김세진 감독은 스케일이 큰 편이었고, 우리카드의 김상우 감독은 디테일한 면이 있다. 때론 그런 디테일로 인해 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때도 있다. 삼성화재를 이끄는 신진식 감독도 스케일이 있는 배구를 좋아한다. 가끔은 신 감독한테 ‘알고 하는 거야? 모르고 하는 거야?’라며 농담을 던지기도 하는데 선수 때도 스케일이 큰 배구를 좋아했던 선수였다.”

 

 

2015~16 시즌 정규리그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가 OK저축은행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 김세진 감독에게 무릎을 꿇었다. 이후 감독직에서 물러났었고.

 

“그건 전적으로 내 실수였다. 사실은 시즌이 끝나는 대로 감독직에서 물러나는 줄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 미리 귀띔을 해 줬기 때문에 챔피언결정전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철저하게 준비하지 못했던 게 결과로 나타났다. 그래서 경기 후 선수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이번 챔프전은 내 실수였다고. 지금도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 후회가 많이 남는다. 감독으로서의 마지막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 신치용답지 못했다는 게 가장 아쉬웠다.”

 

 

신치용의 배구를 ‘몰방배구’라고 비난하는 시선도 있었다. 외국인 선수에 집중된 공격력으로 인해 한국 배구의 수준을 후퇴시켰다는 내용이다.

 

“그건 배구를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다. 내가 몰방만 했나? 외국인 선수 제도가 생기기 전에도 다른 팀에 진 적이 없었다. 팀플레이가 우선돼야 몰방도 가능하다. 팀 구성원의 실력에 따라 몰방을 하든 스피드 배구든 할 수 있다. 삼성화재가 워낙 우승을 많이 하니까 이런저런 비난과 비판이 뒤따랐다. 그렇다면 2년 전 우승팀이었던 OK저축은행은 몰방 안 했나? 지난 시즌 우승팀이었던 현대캐피탈은 몰방을 안 한 건가? 현대는 문성민이 60% 넘는 공격점유율을 보인 적도 있었다. 외국인 선수가 삼성화재에만 있는 게 아니지 않나. 기본이 안 돼 있으면 이길 수가 없다. 라이트 공격수는 공격 점유율이 40% 정도 된다. 삼성화재에서 뛰었던 가빈도 캐나다 대표팀에서 공격 점유율이 65% 정도였다. 배구는 그런 구조로 돼 있다. 우승을 많이 했다는 것 외엔 규제나 규칙을 어기면서 우승하지 않았다.”

 

 

외국인 선수 영입에 성공한 사례를 보여줬었다. 몸값이 싼 선수를 데려와 최고의 공격수로 키워내지 않았나.

 

“안젤코는 10만 달러 선수였다. 가빈은 17만5000달러였고, 레오는 40만 달러 선수였다. 다른 팀에서 50만 달러, 100만 달러 이상의 몸값을 주고 외국인 선수를 데려갈 때 우린 가장 저렴한 몸값의 선수를 영입해 코트에 세웠다. 그걸 인정하고 칭찬해 주지는 못할망정 외국인 선수의 몰방 배구 덕분에 우승한다고 비난하는 건 비겁한 지적이다. 한번은 강만수가 나한테 ‘야, 너 혼자 다 해먹어서(우승) 배구 인기가 떨어진다’고 말하더라. 그렇다고 감독이란 사람이 경기에서 패하려고 선수들 훈련시키겠나.”

 

 

삼성화재를 이끄는 신진식 감독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있다면.

 

“신 감독이 잘하고 있는 건 기본기 강조다. 기본이 안 돼 있으면 절대 이길 수 없다. 단 내가 지도했을 때보다 훈련량이 많이 줄어들었다. 선수들이 힘들어한다고 감독이 먼저 배려해 주면 선수들은 나약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감독이 독하게 마음먹고 강하게 이끌어야 하는데 훈련량 줄여주고 선수 입맛에 맞게끔 선수단을 이끌어가면 분명 탈이 날 수밖에 없다. 난 훈련이 우승의 길을 만들어준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다. 감독이 우승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선수들도 믿고 감독을 따른다. 감독 시절 선수들 통제를 많이 했다. 그 결과, 우승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렇게 배운 선수들이 은퇴 후에는 V리그 사령탑으로 활약 중이다. 난 내가 했던 방법을 믿고 갔다. 설령 그 방법으로 비난을 받았다고 해도 말이다. 감독은 내공이 쌓여야 한다. 경기 시작하면 우리 팀이 아닌 상대팀의 수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박철우 선수와 신 단장의 딸 신혜인씨의 결혼은 배구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렸다. 당시 박철우 선수가 삼성화재의 라이벌 팀인 현대캐피탈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결혼에 성공함으로써 로미오와 줄리엣의 해피엔딩 시나리오를 완성했는데 FA 자격을 얻은 박철우 선수가 삼성화재로 이적하면서 숱한 오해와 소문들이 횡행했었다.

 

“혜인이가 철우랑 사귄다는 얘길 듣고 크게 반대했었다. 내가 말려도 말을 듣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고 어렵게 허락한 스토리가 있다. 그런 선수가 우리 팀으로 이적했으니 배구판이 얼마나 시끄러웠겠나. 팀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만났을 때는 나한테 많이 혼났었다. 배구 기초가 안 돼 있어 좋은 경기력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엔 나만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철우가 나보다 더 힘들었을 거란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2년간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해선 주장을 맡아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르고 선수들을 독려하며 팀을 잘 이끌어가고 있다. 올 시즌 꼭 우승하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내가 사위를 잘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한테도 굉장히 잘한다. 난 선수, 코치, 감독할 때 가족들은 안중에도 없었는데 철우는 두 가지를 다 잘하고 있다.”

 

 

배구인 신치용에게 스스로 점수를 준다면 몇 점 정도 줄 수 있겠나.

 

“80점 이상은 줘도 된다고 본다. 우승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진짜 열심히 배구만 파고 살았기 때문이다. 선수 시절부터 새벽 4시40분, 5시 출근은 불문율이었다. 새벽까지 술을 마셔도 이 루틴은 깨지 않았다.”

 

 

2014년 1월 신치용 단장은 당시 체육인으로는 처음으로 ‘자랑스런 삼성인상’을 수상했다.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과 모범이 되는 행동을 보인 임직원 20명이 수상자였는데 20회 만에 체육인 1호 수상자가 된 것이다. 당시 삼성그룹에선 수상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두 달 동안 뒷조사를 벌였다고 한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치용 단장은 탈탈 털었는데도 먼지 하나 없었고 결국 수상에 이르렀다.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일찍 접고 한국전력 코치와 대표팀 코치 생활을 이어가며 지도자의 길을 밟았던 신치용 단장. 천생 배구인일 수밖에 없는 그는 성공한 배구인의 롤모델로 자리한다. 평생을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았던 그가 잠시 휴식을 취하지만 어쩌면 그 휴식이 길게 가지 않을 것만 같다. 어떤 형태로든 배구인 신치용으로 곧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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