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벽을 넘는 한 걸음, 위안부 합의 보고서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1.02 10:41
  • 호수 1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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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27일 발표된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결과 보고서’(이하 합의, 보고서)를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아 읽어봤다. 여러 언론이 요약해 주고 있지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위안부’ 문제는 1990년 윤정옥 교수가 ‘정신대’라는 이름을 거론하면서 처음으로 우리 의식의 지평으로 들어온 이래,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과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오늘날의 운동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어려운 시간을 이어왔다. 고통스러운 기억과 싸우며 아주 조금씩 전진해 온 해결 노력이 결정적 암초에 부딪힌 것이 바로 저 2015년 합의다. TF 보고서는 세간의 의심대로 그 합의가 매우 수상쩍고 거짓으로 가득 찬 것임을 알려줬다. 한 대목 한 대목에서 드러나는 굴욕적 협상 결과가 참담했다.

 

2017년 12월27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TF’의 검토 결과를 발표했다. © 시사저널 고성준

그럼에도 이 보고서는 중요한 진전을 담고 있다.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천명함으로써 ‘합의’가 저지른 전횡을 드러냈고, 전시 성폭력인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의 규범에 따라 접근해야 함 또한 천명했다. 이 이야기는 일본의 전쟁범죄 회피 노력에 우리 정부가 협조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본이 ‘합의’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우리 정부를 강박한 것으로 보이는 내용은 국제사회의 비난으로부터 숨겠다는 의도를 지닌 것들이다. 합의 내용 중 국제사회에서의 상호 비판, 비난 자제와 제3국 기림비 건립사업에 정부 지원 반대, ‘성노예’ 용어 사용 반대 등이 보여주는 바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유엔에서 위안부를 ‘성노예’로 정식 명명한 것에 부담을 느끼는 한편, 세계 여러 지역에 소녀상이 건립되는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왔다. 일본은 어디까지나 이 문제를 한·일 간의 문제로 축소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보고서는 21쪽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위안부 합의는 한·일 양자 차원에서 일본 정부의 책임, 사죄, 보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보편적 인권 문제, 역사적 교훈으로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것을 제약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축소 시도에 동조하고 있는 야당과 일부 언론의 태도는, 국가이익의 측면에서뿐 아니라 바로 이러한 보편인권 감수성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더욱 개탄스럽다.

 

한편, 위안부 문제 해결을 국제 규범에 따라 일본에 요구하는 일의 가장 큰 장애가 일본의 완강한 거부 못지않게 우리나라의 이중적 태도라는 점 또한 인정해야만 한다. 대한민국 역시 전시 성폭력을 저지른 역사가 있다. 베트남전 참전 당시 한국 군인에게 강간당한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미 상당히 나와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정부를 대신해 이분들에게 사과하고 연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대한민국이 스스로 저지른 전시 성폭력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배상할 때 과연 일본이 이 문제를 피해 갈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을까.

 

그런 뜻에서 이번 보고서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 정부에도 중요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자기를 성찰하는 힘으로 국제연대를 이뤄냈으면 한다. 치욕이 자부심으로 바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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