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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치면 쏟아지는 선인들의 ‘삶의 지혜’

이종묵 교수 등이 편역한 《한국 산문선》 전 9권 출간 한국 산문의 정수 모아

조창완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1.04(Thu) 19:00:00 | 14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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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위기는 언제나 닥친다. 그 위기를 이겨낸 고구려 을지문덕은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로 상대를 조롱하기도 했다. 몽골의 힘에 눌렸던 시기인 1320년 고려 충선왕은 모함을 받아 티베트로 유배 가는 처지에 빠졌다. 그때 당대 문객인 익재 이제현(1287~1367)은 원나라 실세 승상 백주에게 ‘우리 임금을 돌려주소서’(上伯住丞相書)라는 편지를 보냈다. 위기에 빠진 이를 구원한 우(禹)나 직(稷)의 예를 들며, 현명한 신하는 황제가 어질지 못한 것을 막는 것이라며 충선왕에 대한 압박을 풀 것을 요청한 것이다. 이제현의 글로 인해 충선왕은 유배에서 풀려났을 뿐만 아니라, ‘고려’라는 국호를 폐지하고 행성(行省)을 설치해 원나라가 우리를 직접 통치하려는 논의를 중지시킬 수 있었다.

 

한국과 중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열강의 각축장이 된 지금의 한반도에서 고려 말 이제현이 보여준 글의 힘은 어느 시기보다 절실하다. 하지만 이런 글의 힘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유교·불교 등 다양한 사상을 바탕으로 우리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 온 선인들의 정신세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출간된 《한국 산문선》 전 9권은 이런 우리 산문의 깊이를 느끼기에 충분한 책이다. 신라 고승 원효(617~686)부터 근대의 지성 위당 정인보(1893~1950)까지 한국 산문의 정수를 뽑은 이 책은 1478년 조선 성종의 명으로 서거정 등이 편찬한 《동문선》 이후 가장 큰 작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중견학자 안대회·이종묵·정민과 신진학자 이현일·이홍식·장유승 등 6명의 한문학자가 중심이 되어 편찬한 이 책에 관해 물어보기 위해 대표필자인 이종묵 서울대(국문학)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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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의 한문학자가 8년의 노력 끝에 탄생시켜

 

“이 책은 돌아가신 민음사 박맹호 회장님과 전 편집장인 장은수 대표의 한국 문화 정수를 모아보자는 의지에서 비롯됐습니다. 여기에 한문 번역자 모임인 ‘문헌과 해석’의 팀워크가 합쳐지면서 결실을 본 것입니다. 박 회장님은 그렇게 완성된 책을 보고 싶어 했는데, 2017년 1월에 돌아가셔서 영전에 바칠 수밖에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책에 둘러싸여 두 사람이 간신히 앉을 수 있는 비좁은 연구실에서 이종묵 교수는 조금 늦은 출간에 대한 아쉬움을 전했다. 하지만 8년의 세월은 헛되게 흐른 것이 아니었다. 작가 229인의 산문 613편을 모두 아홉 권으로 나눠 묶은 이 책은 작품의 선정부터 번역까지 각고의 노력이 있었다. 기획자부터 참여자까지 8년을 쏟아부은 동력은 무엇일까.

 

“과거에는 근대를 향한 진전이 한국학의 목적이었습니다. 근대가 지나니, 포스트모던이 새로운 목적지가 됐습니다. 또 4차 산업시대의 학문에 대해 말합니다. 그런데 이 모두 이전의 생각을 참고하고,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것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대 논란을 일으킨 만절필동(萬折必東) 사태처럼 우리 지도자들의 인문에 대한 지식이 너무 얕습니다. 과거 외규장각 반환 문제로 프랑스에 갔을 때, 프랑스 외교관들은 예술과 학문을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국익이라는 주장만 앞세우는 것을 보며 인문적 힘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습니다. 이번 작업은 우리 인문 지식의 집대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교수는 “이 책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 유학자의 고고한 철학까지 우리의 피에 내재한 문화의 힘이 담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현대에는 이런 인문 교양을 충족시킬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인문의 힘은 처음에 소개한 것처럼 이제현이 보여준 역사에 대한 혜안을 만들었다. 이런 바탕에는 시대를 읽는 통찰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지혜도 담겨 있다. 이런 혜안에는 경계를 허물고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포용의 정신이 담겨 있다. 흔히 유교 맹신주의자로 평가되는 김부식이지만, 그가 쓴 ‘혜음사를 새로 짓고서’에 보면 그가 불교에 깊은 조회와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정신에는 불교의 논리가 깊게 있을 만큼 편협한 면만이 있지 않다고 이 교수는 말한다.

 

 

문장·문헌에 있어 중국과 대등하다는 자부심

 

그런 점에서 고전은 현재 우리 정치의 가장 난제인 국제정치를 보는 혜안을 주기도 한다. 우리 선조들 역시 수많은 국난을 당했지만, 이를 이겨낸 힘에는 평화를 중시했던 우리의 힘이 있다고 봤다. 가령 신숙주가 쓴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 서문에는 이종무의 쓰시마 정벌이 평화를 해칠 수 있다는 비판의 논리가 있는 등 우리 선조들은 평화를 통한 국권 유지를 잘 활용했다고 봤다. 또 지난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 패권을 유지해 온 중국에 대해서도 우리는 대등하다는 의식을 가졌는데, 그 힘에 ‘문헌의 나라’ ‘문장의 나라’라는 자부심이 있다고 봤다. 한자로 산문을 쓰는 것은 지금으로 보면 우리가 영어로 에세이를 쓰는 것과 같은데, 그 부분에서 우리 선조들은 중국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위대한 문장을 만들었고, 그것이 한국의 힘이 됐다고 그는 말했다.

 

이 교수는 또한 자신의 약점인 작은 체구와 검은 얼굴을 오히려 ‘소오자’(小烏子·새끼 까마귀)란 호로 사용한 권근(1352~1409)이나 지인 김자정의 대머리를 부각해 ‘동두설’(童頭說)이라 한 것처럼 부족한 점을 숨기지 않는 것에도 있다고 봤다. 지나치게 성급한 현대인들에게는 ‘기우자’(騎牛子·소를 타는 사람)라는 호를 쓴 이행의 글을 권했다. 그는 이 글에서 빠른 말을 타지 않고 소를 타는 예를 통해, 속도보다는 느리게 가야 더 자세히 진리를 볼 수 있다는 평범한 이치를 말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 9권이나 되는 이 큰 전집을 어떻게 다 읽을까. 필자의 질문에 이종묵 교수는 손에 잡히는 책을 펼쳐서 나오는 부분에 집중해도 좋다고 말했다. “선인(先人)들의 글에는 인생에 교훈이 될 만한 것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부부싸움을 한 후 퇴계가 쓴 글을 읽었는데, 그때 느낌을 모티브로 해서 《부부》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이 책은 그런 변화를 주는 책이다”고 말했다. 

 

 

 

New Book

 

내가 시작한 미래

하만조 외 지음│한살림 펴냄│1만4000원

 

내가 속한 마을과 사회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즐거운 상상을 현실로 바꾸는 10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를 찾고 함께 실천할 수 있도록 북돋워주는 길잡이다. 전환마을·돌봄·적정기술·협동조합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미 시작되고 있는 변화와 미래사회의 희망을 엿볼 수 있다. 

 

 

뇌를 해방하라

이드리스 아베르칸 지음│이세진 옮김│해나무 펴냄│1만8000원

 

 

비범한 사람들이 알고 있는 탁월성의 비밀은 무엇일까. “주의력과 시간을 쏟아부어라”라고 저자는 말한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교육·학습·시스템은 인간의 창의성을 북돋워주기는커녕 오히려 고통을 가중시키고, 가지고 있는 재능마저도 짓밟아버린다는 데서 출발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무한한 능력을 꺼낼 수 있는지를 도발적으로 제안하는 책이다. 

 

 

푸른 매화로 깨달음을 도장 찍다

학담평창 지음│푼다리카 펴냄│4만원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던 서산대사의 제자 청매인오선사의 문집을 평창(評唱·상세한 해설과 비평)해 내놓은 책이다. 중생들이 가장 핍박받고 불교도 탄압 받던 상황에서 치열한 삶과 구도행, 그리고 자비행을 보여준 기록이다. 이 책과 더불어 소요태능의 선게(禪偈)집 《소요태능선사를 다시 노래하다》도 같이 출간됐다. 

 

 

개기는 인생도 괜찮다

오민석 지음│살림 펴냄 │1만3000원

 


한 일간지 ‘삶의 향기’라는 코너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오민석 단국대(영문학) 교수의 첫 수필집이다. 자신이 만나온 불완전하지만 아름다운 청춘들과의 일화를 통해 개기는 인생을 논한다. ‘개김’은 반항이 아니라 부모나 친구, 사회 규범에 휘둘리지 않고 ‘진짜 자아’로 살아간다는 의미다. 고민을 들여다보는 색다른 관점,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 인생 방법론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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