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가면 5년 안에 국내 방위산업 망한다”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18.01.04 14:02
  • 호수 1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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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예정 영화 《일급기밀》의 실제 모델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

 

방위사업 비리를 다룬 영화 《일급기밀》이 오는 1월24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영화는 2002년 벌어진 차세대전투기(FX) 선정비리 사건과 2009년 일어난 계룡대 군납비리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됐다.

 

영화 등장인물의 실제 모델은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이다. 그는 해군 소령이던 2009년 MBC 《PD수첩》에 출연해 군 내부 비리를 폭로한 내부제보자다. 이로 인해 옷을 벗게 된 그는 국민권익위원회 조사관으로 활동하다 현재는 국방권익연구소를 세우고 방위사업 비리와 제도 개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서울 지하철 신용산역 부근에 위치한 연구소에서 2017년 12월28일 만난 김 소장은 현재의 시스템으론 국내 방위산업이 절대로 클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감사원이나 검찰의 방위사업 비리 조사가 막무가내로 진행됐다며, 정작 제대로 된 비리는 하나도 잡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구조대로라면 대한민국의 국방이 외국에 종속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 © 시사저널 이종현

 

방위사업 비리를 다룬 영화 《일급기밀》의 실제 모델이다.

 

“준비하는 데만 8년 정도 걸렸다. 이명박 정부 시절 기획해 박근혜 정부에서 제작했다. 제작에 들어갈 때 고생을 많이 했다. 박근혜 정부 눈치를 봐서인지 투자받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나마 정권이 바뀌면서 개봉도 할 수 있게 됐고, 뜻있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참여해 줬다.”

 

 

어떤 사건이 영화에 담겼나.

 

“공군 차세대전투기 사업과 해외에서 부품을 구입하는 사업, 계룡대 납품비리 사건 등을 다루고 있다. 모두 실제 있었던 일이다. 방산비리로 인한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들이 짊어지게 된다. 비리가 있었냐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중한 군의 자산과 생명, 국가의 안보가 흔들리는 문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었다. 그런 차원에서 기획된 영화다.”

 

 

“정치적 수사, 방위사업 벼랑으로 내몰아”

 

영화는 실제를 어느 정도 수위로 묘사하고 있나.

 

“상당 부분 비슷하게 묘사했다. 내가 겪은 일들을 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는 영화보다 더 추악하다고 봐도 된다. 기무사나 감사원, 군 검찰 등 사건의 진상을 밝혀야 할 당사자들이 사건을 덮는 데 가담했다. 사건에 가담했던 이들이 실제로 처벌받은 사례도 있었다. 그 사람들이 정의의 사도인 여당에 들어가서 안보특위 부위원장을 맡는 등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외국 관련 방위사업에 문제가 많은 것 같다.

 

“물론이다. 국내 방위사업보다 외국에서 무기나 부품을 구매하는 사업이 규모도 훨씬 크고, 비리도 더욱 정교하다. 현실은 오히려 영화보다 더 추악하다. 많은 정치인들이 관련됐었다. 상당히 과거의 일이지만, 실제 외국 관련 방위사업비 중 리베이트는 통치자금 명목으로 청와대에 들어가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방위사업=비리’로 인식되고 있다.

 

“과거엔 방위사업에 엄청난 비리가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요즘은 대부분 없어졌다. 특히 국내 사업에선 비리의 여지가 상당히 좁고, 있다 하더라도 규모가 작다.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에 만들어졌던 검찰의 합동수사단은 상당히 잘못된 수사를 했다. 일부 비리가 있긴 했지만 상당부분은 아니다. 과도하게 정치적인 수사였다.”

 

 

왜 그렇게 판단하나.

 

“당시 세월호가 침몰했고, 정윤회 문건 유출, 성완종 리스트 사건 등이 있었다. 정권 차원에선 관심을 돌릴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바로 그때 통영함 비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면서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이 구속됐다. 또 해상작전헬기 와일드캣 비리로 최윤희 전 합참의장이 구속됐다.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도 STX 뇌물로 구속됐다. 겉으로만 보면 성과가 나온 것 같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현재 황 전 총장과 최 전 합참의장은 무죄를 받았다. 정 전 총장 사건의 경우 내가 2009년 계룡대 군납비리를 폭로할 때 같이 불거진 사건이었다. 조사까지 끝난 사건이었다. 당시 군 검찰이 이를 덮었는데 검찰에서 자료를 그대로 가져와 새로운 사건인 양 포장했다. 검찰 합수단에서 방산비리 수사를 할 때, 대검 관계자들이 몇 번 나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었다. 그래서 대검 관계자들에게 ‘국내의 비리도 있지만, 외국에서 무기를 구매하는 사업에 비리가 훨씬 많다. 이것들을 수사할 것이냐’고 물었더니 ‘시간이 없고 전문성도 없어서 힘들다’고 하더라. 결국 진짜 방위사업 비리를 수사하려는 의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고는 ‘4성급 이상 장성 셋은 잡겠다는 결정이 내부에서 났다’고 하더라. 실제로 각본대로 됐다.”

 

 

당시 수사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데.

 

“이런 수사나 감사는 아주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피해는 국내에서 연구·개발을 하는 중소 방위사업체들에 돌아간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5년 안에 국내 방위사업 연구·개발은 망한다고 봐도 좋다. 이들이 망하면 부품 수입을 결국 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납품 단가가 올라가고 납품 단가가 올라가면 국내 업체는 점점 더 정부에서 요구하는 단가를 맞추기 힘들게 된다. 결국 완성장비를 계속 외국에서 사올 수밖에 없다. 국방이 외국 기업에 종속되는 것이다.”

 

 

“방산비리 적발, 고도의 전문성 필요”

 

외국 가격이 특별히 비싼 이유가 있나.

 

“현행법상 외국에서 도입하는 무기나 부품의 가격은 관세청을 통과할 때 가격이 기준이다. 외국에서 이들을 도입할 때 외국에 있는 업체가 생산업체로부터 사들인 뒤 관세청을 통해 국내에 납품하는 구조다. 관세청에 들어오는 시점엔 이미 원가의 몇 배 이상으로 가격이 올라간 상태다. 국내에 들어오기 전부터 비리가 발생할 여지가 높다. 하지만 수사 당국은 시간의 촉박함이나 능력 부족을 이유로 사실상 수사에서 손을 놓고 있다.”

 

 

해외 구매 사업의 비리를 잡는 방법은 무엇인가.

 

“사업 추진 단계부터 많은 부조리가 일어난다. 게다가 이 결정은 윗선에서 발생한다. 언젠가부터 ‘자주국방’이란 의미가 우리가 직접 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에서 사온 무기로 나라를 지킨다는 개념으로 바뀌었다. 비리를 잡으려면 어느 단계가 문제인지 정확하게 잡아내야 한다. 구매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추적하고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비리의 ‘종합예술’이라고 볼 수 있다. 전문성이 무조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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