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베트남, ‘리틀 차이나’ 아닌 동남아 경제 강국으로
  • 베트남 호찌민 = 감명국 기자 (kham@sisajournal.com)
  • 승인 2018.01.09 09:21
  • 호수 1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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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차이나’ ② 동남아] 소득 증가와 중산층 증대로 우수한 소비시장 보유

 

베트남 현지 주재원으로 2017년 12월 현재 6년째 호찌민에 머물고 있는 CJ그룹 베트남 지역본부의 김중현 부장은 “베트남은 중국·일본과 달리 정치·외교적 리스크가 없어 오로지 사업에만 신경 쓰면 된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한국 경제를 부러워하고 한류문화를 좋아하는 등 한국에 대해 무척 호의적이어서 기업 활동하기에도 좋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베트남을 찾았을 때 기자가 걱정한 것은 한국에 대한 부정적 정서가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1960~70년대 베트남전쟁에 한국군이 파병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부장은 “의외로 베트남 국민들은 미래지향적이다. 과거의 일은 과거일 뿐,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밝혔다.

 

실제 현지 분위기도 그랬다. 호찌민의 한 무역회사에 다닌다는 20대 후반의 베트남 여성 안은 “베트남전쟁에 대해 잘 알고는 있다”면서도 “하지만 과거의 아픔을 딛고 경제 발전을 이루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똑같이 전쟁의 아픔을 겪었으면서도 큰 경제 성장을 이룬 한국은 좋은 본보기가 된다”고 말했다. 정작 그녀가 한국에 대해 갖는 우려는 딴 데 있었다. 안은 “가끔 뉴스를 통해 한국으로 시집간 베트남 여성이 학대와 차별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솔직히 기분이 나쁘다”고 밝혔다.

 

베트남 최대 경제도시 호찌민은 지하철 공사로 인해 교통 혼잡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 시사저널 감명국

베트남 최대 경제도시 호찌민은 지하철 공사로 인해 교통 혼잡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 시사저널 감명국

 

한때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한국인들이 미국을 찾았던 것처럼, 이제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의 젊은이들은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을 찾는다. 하지만 지금도 한국엔 이들에 대한 배타적이고 우월적 정서가 엄연히 존재한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문제점도 여전히 국내의 사회문제로 자리하고 있다. 베트남 현지에선 한국에 대한 동경과 함께 이런 한국인들의 배타적 우월감에 대한 반감도 일부지만, 분명 상존하고 있다. 한 나라의 국민 정서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비롯돼 나중에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비약할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중국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베트남 내에는 지금 ‘반중(反中)’ 정서가 매우 강하다. 중국과의 영토 분쟁 때문이다. 지금 그 반사이익을 한국과 일본이 보고 있는 측면도 분명히 있다. 앞서 소개한 김 부장의 언급처럼 한국에 우호적인 베트남 국민들의 정서는 현지에 진출해 있는 국내 기업들엔 큰 힘이 되지만, 이를 계속 유지·발전시키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베트남 국민들은 자존심이 강한 것으로 유명하다. CJ오쇼핑의 베트남 현지법인인 ‘SCJ TV쇼핑’의 오정훈 법인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베트남인들은 정말 근면하다. 나는 지금까지 인도·터키 등 해외지사에서 오래 근무했는데, 베트남인들처럼 자발적으로 출근을 일찍 해서 미리 일을 준비하는 국민들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실력도 우수하다. 무엇보다 열정이 있다.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발전 여지가 무궁무진하다. 다만, 유의해야 할 것은 아무리 잘못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공개된 사무실에서 특정 직원에게 야단을 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따로 불러서 조용히 지적하면 충분히 수긍한다. 베트남인들은 교육 수준이 높은 만큼, 자존심도 매우 강한 편이어서 그런 점은 조심해야 한다.”

 

호찌민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22층 규모의 CJ 대형 사옥 © 사진=CJ 제공


 

호찌민 중심가에 위치한 CJ 대형 사옥

 

약 1억 인구에 육박하는 베트남 국민의 평균 연령은 29.9세(2017년 기준)다. 이미 평균 연령이 40대에 접어든 한국에 비하면, 확실히 베트남은 활기가 넘친다. 도로 곳곳마다 오토바이 물결을 이루는 베트남 젊은이들은 보다 좋은 스마트폰을 갖고 싶어서, 보다 좋은 화장품을 사기 위해서 하루하루 열심히 땀을 흘린다. 한·중 간 정치적 리스크로 인해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자, 베트남이 중국을 대체하는 새로운 시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러시를 이뤘다. 특히 한국의 사드 배치로 중국의 경제적 대응조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해 한-베트남 교역액이 급성장했다. 이는 수치로도 잘 드러난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2016년 351억 달러였던 양국 교역량은 2017년 600억 달러까지 증가할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상반기에만 이미 290억 달러로 전년 동기대비 45.5%가 증가한 탓이다. 이러한 성장세는 올해도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기업의 베트남 진출은 1990년대부터 시작됐다. 그 선봉장은 철강 부문의 포스코와 ‘베트남 국민기업’ 소리까지 듣는 신발 사업의 태광실업이었다. 2000년대부터 삼성·LG로 대표되는 전기·전자 사업 진출이 베트남의 경제지표를 뒤바꾸기 시작했다. 중국을 대체하는 전기·전자 제품 및 관련 부품 생산기지로 베트남이 급부상하면서 삼성전자·LG전자 등이 베트남의 전자기기를 선도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휴대폰은 지난해 상반기 베트남 수출품목 1위를 기록했다. 이처럼 한국 기업이 베트남 전체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25% 이상일 정도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베트남 북부 하노이와 주변 지역에는 삼성전자 협력사만 약 300개가 동반 진출해 있을 정도다.

 

북부지역 경제에 삼성·LG가 있다면, 호찌민을 중심으로 한 남부 베트남에는 포스코가 있다. 포스코 설립자인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이 ‘한국이 베트남에 졌던 전쟁의 불행한 빚을 투자를 통해 갚아야 한다’는 지론을 펼치며 1990년대 초반부터 베트남에 투자를 시작했던 게 지금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호찌민 인근 붕따우에 대규모 공장부지를 확보해 형강·철근 등 다양한 철강 사업을 현지에서 추진하고 있다. 2009년 붕따우에 설립한 동남아 최대 냉연공장이 대표적이다. 포스코는 연산 120만톤 규모인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동남아 전역에 공급하고 있다. 현재 총 6개의 철강 관련 법인을 운영하고 있고, 하노이 등 북부지역 4개 법인까지 합쳐 총 10개 법인이 포스코 이름을 달고 베트남에 진출해 있다.

 

베트남전쟁의 여파인지, 하노이를 중심으로 한 북부와 호찌민을 중심으로 한 남부지역의 정서는 확연하게 구분된다. 사회주의 정서가 강한 북부지역은 다소 집단적·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반면, 사이공으로 불렸던 호찌민 등 남부지역은 상당히 개방적이고 문화 향유 욕구가 높은 편이다. 프랑스 식민지 영향 탓에 파티를 즐기고 빵과 맥주 등 음식문화를 좋아한다. 이런 남부 베트남의 정서를 가장 잘 파고든 기업이 CJ다. 베트남 진출 2세대 기업의 선봉장은 CJ라고 할 수 있다. 실제 호찌민 시내 중심가에는 22층 규모의 대형 빌딩이 자리하고 있는데, CJ 로고가 선명하다. CJ 베트남 현지법인 사옥이다. CJ는 이 빌딩을 2014년 1월 우리 돈으로 472억원에 사들였다.

 

현재 베트남은 건설 경기 호조 속에 곳곳에서 대형 건물 공사가 한창이다. © 시사저널 감명국

 

CJ, 유통·식품·문화 사업으로 베트남 정서 파고들어

 

2012년 4월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CJ 글로벌 컨퍼런스’를 열며, 베트남을 ‘제3의 CJ’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제1의 CJ는 물론 한국이고, 제2의 CJ는 중국이었다. 물론 지금도 CJ의 해외매출은 중국이 최고를 차지한다. 미국도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G2인 중국과 미국을 제외한다면, 단연 두드러지는 게 베트남이다. 삼성·LG·포스코·태광실업 등 진출 1세대 기업들은 제조 분야에서 당시 값싼 베트남 노동력을 노린 현지 공장 중심이었다. 반면 CJ는 식품·유통·문화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며 베트남 국민들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문화의 힘은 또 다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2012년 CJ의 베트남 매출은 2200억원대였다. 하지만 2017년 1조원을 넘겼다. CJ 베트남 현지 사무실에는 ‘GCP’란 글자가 자주 눈에 띈다. ‘Great CJ Plan’의 약자로 2020년 전체 매출 100조를 달성하는 것을 말한다. 이 가운데 해외매출 비중이 절반이다. 전체 해외매출 중에서도 베트남의 비중은 10%를 차지한다. 즉 베트남 CJ가 2020년까지 매출을 지금의 1조원 규모에서 5배인 5조원까지 늘려야 한다는 뜻이다.

 

베트남 진출 초기엔 누구나 그렇듯이 CJ도 어려움이 많았다. 베트남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국가다. 일당 체제의 정부가 운영된다. 외국 회사는 베트남 현지법인과 합병해도 지분의 50%를 넘을 순 없다. 독단적인 회사 운영이 불가능한 셈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현지법인과의 제휴를 위해 좋은 파트너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중국과 달리 베트남은 외국 기업의 진출에 매우 우호적이고, 합리적이다. 그만큼 경제발전에 대한 의지와 열망이 큰 것이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도 베트남의 발전 가능성을 주목하고 이미 활발하게 사업을 진출시키고 있다. 그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일본이다. 일본은 이미 호찌민 지하철 1호선 공사권도 한국을 제치고 따냈다. 기자가 지난해 2월 호찌민을 처음 방문했을 때와는 달리, 10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방문 땐 호찌민 시내 도로의 지하철 공사가 본격화되고 있었다. 때문에 교통체증이 더욱 극심해졌고, 도로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뒤엉켜 있다. 도로의 자동차와 오토바이는 온통 도요타와 혼다 물결이다. 문화·유통·식품 등에 주력하는 CJ 입장에선 경쟁자가 따로 없다. 오히려 한국의 롯데·신세계 등과 겹친다. 김중현 부장은 “결국 우리의 경쟁자는 일본도 중국도 아닌 바로 한국 기업”이라고 말한다. CJ는 한류 붐을 등에 업고 베트남 국민들의 문화 곳곳에 잘 스며들고 있다. 극장가는 CGV가 거의 장악하고 있고, 제과제빵 업계는 뚜레주르가 압도적이다. 홈쇼핑도 SCJ TV가 베트남에서 단연 1위 채널이다. 이들은 베트남 현지에서 모두 넘버원을 차지하며, 베트남인들의 정서를 파고들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증대하고 소비문화가 확산됨에 따라 호찌민에도 대형 유통 몰과 마트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국내 대표적 유통업체인 롯데와 신세계는 롯데마트와 이마트의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먼저 움직인 곳은 롯데였다. 2008년 12월 국내 유통업체 중 최초로 호찌민에 ‘남사이공점’을 오픈하며 베트남에 진출한 롯데마트는 중부지역의 ‘다낭점’을 포함해 현재 총 13개의 롯데마트를 운영 중이다. 국내에선 압도적 1위인 이마트 역시 최근 베트남 시장 확대를 서두르고 있다. 2015년 12월 호찌민에 ‘고밥점’을 오픈해 운영 중이고, 내년 오픈을 목표로 현지 2호점을 준비 중이다. 이마트 베트남 법인의 이형순 팀장은 “대형마트 사업의 경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부지 확보다. 호찌민 최대 상권인 고밥 지역에서 이미 1호점이 성공적으로 가고 있는 만큼, 2호점에 이어 3호점·4호점 등의 좋은 부지 확보를 위해 베트남 정부와 긴밀하게 대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호찌민 인근 붕따우에 위치한 포스코 베트남 법인 공장 © 사진=포스코 제공

 

롯데마트에 이어 이마트도 베트남 진출 주력

 

이마트 고밥점에서는 어렵지 않게 국내 제품들을 접할 수 있다. 그중 눈에 띈 것은 한편에 진열되어 있는 주류 코너였다. 베트남은 맥주 소비가 많은 나라다. 국민들이 맥주를 매우 즐겨 마신다. 베트남의 맥주 시장 규모는 연간 20억 달러에 이른다. 사이공 맥주, 타이거 맥주, 333 맥주 등이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소위 국민 맥주다. 여기에 국내의 하이트진로가 뛰어들었다. 하이트진로가 내세우는 상품은 맥주가 아닌 소주다.

 

호찌민에서 하이트진로 공식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정의영 실장은 “지금은 소주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베트남에서 소주 시장의 가능성은 크다고 본다”면서 “다만 베트남 현지에 맞게 도수를 좀 낮추고 자몽소주처럼 과일 맛이 든 소주를 개발하면 맥주 일색의 베트남에서 소주가 통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이트진로 역시 이 같은 가능성을 내다보고 하노이에 이미 진출했다. 올해부터는 호찌민에도 지사를 만들어 한국 본사에서 직원을 파견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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