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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삼성 저격수’ 누가 될까

이건희 차명계좌 수사 촉구하는 여당 386 출신 의원들

박혁진 기자 ㅣ phj@sisajournal.com | 승인 2018.01.15(Mon) 16:00:00 | 14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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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수사 과정에서 우연하게 발견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계좌를 놓고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정기관 및 금융당국이 처리해야 할 사안에 여당 386 출신 의원들이 ‘부채질’을 해 대면서 사안이 확대되고, 여기에 부담을 느낀 금융당국 수장마저 꼬리를 내린 상황이다.

 

문제의 차명계좌는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이 회장 자택 인테리어 공사비 비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삼성 측이 차명계좌에서 발행한 수표로 수십억원의 공사 대금을 지불한 혐의를 포착했다. 이후 특검에서 밝혀지지 않았던 추가 차명계좌를 2011년 서울지방국세청에 신고했다는 삼성 관계자의 진술을 확보함에 따라 국세청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경찰은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과세 자료를 통해 2011년 이 회장이 약 1000억원대 양도소득세를 납부한 사실을 포착했다. 경찰이 발견한 이 회장의 차명계좌는 삼성 전·현직 임원들 명의였으며, 20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경찰청 특수수사과 측은 “차명계좌에 주식과 현금 등이 혼재돼 있고 매입·매도와 입출금이 빈번해 (차명재산 규모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세청 출신 한 세무사는 시사저널에 “주식 처분에 따른 양도소득세가 1000억원대 규모라면 이 회장의 차명재산은 수천억원대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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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징계 놓고 與 의원과 금융위원장 설전

 

이 회장 차명계좌와 관련한 가장 큰 쟁점은 과징금 부과를 비롯한 추가적 징계가 가능하냐는 점이다. 일단 금융위원회가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12월21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계좌에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금융행정혁신위원회 권고에 대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 자리에서 최 위원장은 “금융실명제법상 실명전환 의무는 주민등록증을 통한 실지명의 확인으로 완결됐고, 대법원 판결도 그렇다”고 밝혔다. ‘실지명의’란 주민등록상 또는 사업자등록상 명의를 말한다. 이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해 현행법상으론 과징금을 부과할 수 없다는 기존 금융위 의견을 유지한 것이다. 최 위원장은 “혁신위에서 과징금 부과가 필요하다고 한 것은 현행법 해석상에 따른 것이 아니라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최 위원장은 특히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만약 (과징금 부과를 위한) 입법을 한다면 삼성 건만 볼 수는 없다”며 “아이들 이름, 동창회 이름 등으로 유지되는 일명 ‘선의의 차명계좌’도 많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여기에 반발하고 나선 것은 다름 아닌 여당 국회의원들이었다. 최 위원장이 기자회견을 한 다음 날인 12월2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는 여당 의원들과 최 위원장의 설전이 벌어졌다. 정무위 소속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 위원장을 상대로 한 질의에서 “대법원 판결을 보면 금융실명제 이전 개설된 차명계좌에 대해 이자소득세 등을 원천징수할 수 있게 돼 있다”며 “이미 판결이 난 사안인데 왜 이걸 못하겠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따졌다. 그러자 최 위원장은 “(박 의원이 예로 든) 1998년 대법원의 관련 판결은 상당히 예외적이며 다수의 판례는 박 의원의 말씀과는 다른 방향”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이건희 차명계좌에 과징금을 부과한다면 그 밖의 선의의 차명계좌에 대해서도 해야 한다”며 불가 방침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자 박 의원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자꾸 한다. 도대체 이건희 계좌에 뭐가 들어 있기에 그러느냐”고 재차 따졌고, 최 위원장은 “계좌에 뭐가 있는지 저희가 어떻게 아느냐”며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 밖에 민병두, 이학영 등 여당 의원들 역시 최 위원장이 혁신위의 권고안을 사실상 ‘무시’했다고 비판에 가세했다.

 

 

“여권 실세 나서니 버틸 방법 없다”

 

그러자 금융위원회가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나 법제처에 법령해석을 요청했다. 금융위는 1월3일 보도자료를 발표하고 “1993년 8월12일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차명에 의해 실명전환하거나 실명 확인한 경우 1993년 긴급명령 및 현행 금융실명법 등에 따른 실명전환 및 과징금 징수 대상인지 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다”며 “행정운영의 적법성과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법제처에 법령해석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건희 차명계좌’ 관련 의혹이 불거진 이후 현행법상 이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과징금 부과는 어렵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해 온 것에 비춰보면 사실상 꼬리를 내린 셈이다.

 

차명계좌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금융위와 국회 관계자들의 눈길을 잡아끈 것은 최 위원장을 몰아붙인 의원들이 하나같이 386 운동권 출신으로 분류되는 의원들이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11월17일 민병두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이건희 차명계좌 태스크포스(TF)’까지 만들어 차명계좌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왔다.

 

이를 두고 금융위 내부에서는 “어떻게 보면 임종석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실세들과 정치적 뿌리를 같이하는 여당 의원들이 이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데 금융위원장이 버틸 재간이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 회장 차명계좌에 대한 여당 의원들의 압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월4일 아예 기자회견까지 열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전면 재수사를 촉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금융당국이 확인한 이 회장의 차명계좌 운용 내역을 토대로 2008년 조준웅 삼성특검이 밝힌 이 회장의 차명재산 4조5000억원이 비자금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여당 내부에서는 그 휘발성에 비해 세간의 관심 밖에 있던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 문제를 확실히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TF 소속 의원들의 활동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삼성 저격수’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해 대표적 여성정치인으로 떠오른 박영선 의원의 바통을 누가 이어받을지에 관심이 쏠려 있다. ‘삼성 저격수’란 타이틀이 가져다주는 정치적 후광효과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TF 소속 의원 중 민병두 의원과 이학영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의원은 초선 의원이다. 삼성 저격수로 주목받을 경우 대중적 인지도가 확실하게 올라갈 수 있다. 민주당 한 전직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이 회장 차명계좌 문제를 지적한 것이 꼭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보는 건 비약일 수도 있지만, 삼성 저격수라는 타이틀이 가져다주는 정치적 효과가 있는 것만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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