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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초 새벽 뿜어나온 ‘후쿠부쿠로’ 열기

[이인자 교수의 진짜일본 이야기] 日 설날 전통행사 ‘하쓰우리’를 찾는 사람들

이인자 도호쿠대학 교수(문화인류학)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1.15(Mon) 20:00:00 | 14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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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2일 새벽 6시, 신년을  맞이한 센다이 상점가 아케이드를 둘러봤습니다. 아직 어둑어둑한 상점가에 사람들이 붐빕니다. 백화점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은 벌써 백화점 주변을 돌돌 말며 역과 연결돼 있는 쇼핑몰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역 전체를 에워싸고 줄을 서 있기에 역사(驛舍)가 포위된 상태입니다. 추운 정월 새벽의 차가운 기온 때문에 사람들이 내뿜는 하얀 입김이 활기찬 아침의 열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앞줄에 서 있는 사람들이 튼튼한 종이박스와 침구가 될 만한 짐을 한쪽에 정리해 놓은 걸 보면 밤을 새운 흔적이 역력합니다.

 

엄동설한의 추운 정초 새벽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는 건 일본 설날의 전통행사인 하쓰우리(初賣)에서 무언가를 사기 위한 것입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후쿠부쿠로(福袋)를 손에 넣기 위해 밤샘을 하거나 긴 시간 줄을 서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쓰우리란 새해 들어 처음 하는 장사를 뜻하고 그 장사에서는 내용을 알 수 없는 후쿠부쿠로를 파는 게 관습입니다. 복주머니라고 직역이 가능한 후쿠부쿠로는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가격대비 좋은 상품들이 들어 있습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인지 어떤지 알고 사는 것이 아니기에 연초 운을 점쳐보는 재미도 있다고 합니다. 내용물이 맘에 들면 좋은 한 해가 될 거라 즐거워합니다. 대체로 지불한 액수보다 월등히 비싼 물건들이 들어 있기에 대부분 기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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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있어 힘들지 않아요”

 

연초에 일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으로 최근에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관광객들까지 하쓰우리에서 후쿠부쿠로 구입을 경험하기 위해 여행을 온다고 합니다. 현지인이 이 정도로 흥분하는 세시풍속이기에 오랜 전통과 연유를 몰라도 외국인 관광객은 큰 구경거리가 되고 덩달아 복주머니를 사게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하쓰우리로 가장 유명한 곳은 센다이입니다. 호화경품을 주는 걸로 유명하지요. 구입상품보다 값진 경품을 주는 것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정한 경품에 관한 법률로 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센다이 하쓰우리 경품에 대해서는 300년 넘게 이어온 미풍양속으로 인정받아 연초 3일간에 한해 법 저촉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매년 설 연휴 뉴스 중 1월2일 아침뉴스에는 센다이 하쓰우리가 전국에 방영됩니다. 가장 호화경품을 주는, 차를 파는 오차노이게타(お茶の井ケ田)라는 가게 앞의 광경이 단골입니다.

 

제가 이날 이게타 가게 앞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6시 조금 넘어서였습니다. 벌써 250여 명이 줄을 지어 서 있었습니다. 1번으로 서 있는 사람에겐 벌써 기자들이 인터뷰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치(愛知)현 가마고리(蒲郡)시에서 12월27일 저녁에 도착해 줄을 섰습니다. 작년(2017년 새해)에도 12월30일 아침부터 줄을 섰는데 애석하게도 4번째였습니다. 선착순으로 3명에게 주는 가장 큰 경품을 받지 못해 올해는 꼭 그걸 받고 싶어 일찍 왔지요.”

 

인터뷰를 한 다케우치 요시아키(竹內義明)씨는 1940년생입니다. 80세를 바라보는 분이 일본에서도 추운 동북지역의 센다이에서 일주일 가깝게 노숙을 하면서 줄을 섰다는 것입니다. 센다이는 그가 살고 있는 곳에서 630km나 떨어져 있는 곳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경품을 주기에 일주일이나 줄을 서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5000엔 이상 상품을 사는 사람 100명에게 오차집에서 특수주문을 해 만든 오차박스를 공짜로 나눠줍니다. 친절하게 5000엔에 소비세가 붙은 가격의 후쿠부쿠로(안에는 8000엔 상당의 상품이 포장돼 있음)를 팔고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구입하고 공짜 박스를 받습니다. 박스 안엔 그 가게의 상품인 오차, 과자 등은 물론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기포트 등이 들어 있습니다. 1935년부터 시작한 오차박스 경품은 그 박스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오차가 상하지 않게 오래 보관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박스는 일상생활에서 옷이나 중요한 서류를 넣어두는 것으로도 요긴하게 쓸 수 있어 인기였다고 합니다. 선착순 3명에게는 대박스를, 또 20번째까지 도착한 사람에게는 중박스를, 100번째까지는 소박스를 경품으로 줍니다. 소박스 안에 들어 있는 상품과 박스 값을 합하면 2만 엔 정도 된다고 하니 혼자 들지도 못하는 대박스의 값은 그보다 훨씬 높은 가격의 상품들이 들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자들의 취재가 소나기 그치듯 멈칫할 때 그분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여러 날 줄을 지키기 위해 노숙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 아닌가요?”

 

그러자 그분은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힘들지 않고 즐거웠어요. 처음 참가했던 3년 전 제 뒤에 섰던 사람들과 친구가 됐거든요. 그 친구들이 자리를 봐주는 사이에 센다이 구경도 하러 다니고 아주 편하게 하쓰우리를 즐기고 있습니다.”

 

TV에 방영되는 센다이 하쓰우리 모습을 보고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3년 전 일에 여유가 생겨 처음으로 참석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때는 12월30일부터 줄을 서 1등을 차지했고 그때 2~3등으로 서 있던 센다이 사람들과 친구가 됐던 것입니다.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고 함께 줄을 서서 기다린 게 인연이 돼 다케우치씨는 그해 두 번째로 다시 센다이에 옵니다. 같은 시간대에 갔지만 이번엔 4등, 그리고 친구들은 5~6등. 3년째인 이번엔 철저히 준비해 12월27일 밤부터 줄을 서 첫해와 마찬가지로 1등에서부터 3등까지 석권했습니다. 서로 어떤 관계처럼 느끼느냐는 질문에 그는 “멀리 사는 친척 같은 느낌이지요. 올해도 센다이에 도착하자마자 연락해 함께 줄을 서고 그들의 가족 중 누군가가 매끼 주먹밥을 싸왔어요. 그믐날에 먹는 소바도 함께 먹은걸요. 설날에 먹는 떡국도 먹고요”라고 웃으며 답했습니다.

 

 

하쓰우리의 매력은 ‘사람’

 

다케우치씨가 일주일 노숙해 얻은 것은 TV 화면이나 신문기사를 통해 보면 호화판 경품의 오차집 대박스인 것처럼 보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그럴지 모르지만 다른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경품 때문이라면 그는 이미 3년 전 대박스를 받았고 2년 전엔 중박스를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630km의 길을 3년째인 올해도 달려온 것은 첫 번째 줄을 섰을 때 친구를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돌아간 뒤에도 그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를 유지하면서 서로 사는 곳의 특산품을 보내는 관계가 됐다고 합니다. 가족과 함께 지낼 그믐과 설을 오죽하면 밖에서 지낼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8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노숙을 자처하면서까지 한걸음에 달려오는 다케우치씨를 보면 하쓰우리의 매력은 경품이나 득이 되는 후쿠부쿠로가 아닌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들이 뿜어내는 열기 같은 것이 더 중요한 매력을 내포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실제로 몇 날을 지새운 사람들은 줄서기  전후로 친구가 돼 있었습니다. 인류학을 연구하는 저로서는 긴 시간 지역사람들이 열광하며 아끼는 전통행사에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내년엔 제 연구실을 총동원해 이게타오차야의 하쓰우리에 도전해 볼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차를 보관할 오차박스도 탐이 나고 날밤을 새우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게 연결된 사람 냄새 나는 스토리도 탐이 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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