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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참사 유가족 “눈 감으면 무섭고 눈 뜨면 괴로웠다”

용산 참사 9주기, 유가족들 ‘살아남은 자의 고통’ 여전히 아물지 않아

구민주 기자 ㅣ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8.01.19(Fri) 09:35:33 | 14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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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용산구 한강로2가 220-1 용산4구역. 2009년 1월20일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 현장에서 이제 더 이상 그날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9년 전 화마(火魔)로 뒤덮인 남일당 건물은 이듬해 1월 철거됐고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 후 7년간 버려진 땅처럼 주차장 역할만 하던 4구역 대지는 2016년 말 비로소 재개발 작업에 들어갔다. 현재 높은 펜스로 둘러싸인 이곳에 2020년이면 43층짜리 고층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고작 주차장으로 쓰려고 우릴 잔인하게 내몰았던가.” 매일 출근길 이곳을 지난다는 용산 참사 유가족 이충연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은 빈 땅을 볼 때마다 억울함이 치밀었다. 무엇 때문에 그리 등 떠밀려 쫓겨났으며, 왜 목숨을 잃어야 했는지 수시로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씨는 26년간 건물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아버지를 참사로 잃었다. 본인 역시 아버지 장례를 치르기도 전 수감돼 4년간 옥고를 치렀다. 참사의 물리적 흔적은 이미 세월의 흐름 속에서 사라졌지만, 그날의 악몽은 이렇게 틈틈이 유가족들을 찾아와 가차 없이 일상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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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공권력의 폭력

 

지난해 12월29일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첫 특별사면 대상에 용산 참사 당시 처벌받은 철거민 25명을 포함시켰다. 반가운 일이었지만 유가족들은 그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진 않는다고 말한다. 이미 주어진 실형을 다 살고 나왔으며, 참사 후 무너진 삶은 변함없기 때문이다. 이번 사면은 그저 지난 9년 첫발도 못 뗀 진상규명의 희망을 보여준 것이라고 이들은 해석한다.

 

참사 후 철거민들은 철저한 수사와 진상규명을 위해 장례까지 미뤄가며 정부·서울시와 싸웠다. 불길에 가족과 터전을 잃은 이들은 355일 긴 시간 동안 장례식장에서 생활했다. 어린 자녀들은 그곳에서 매일 경찰 대열을 헤치며 등하교했다. 이들의 생계는 무너질 대로 무너져버렸다. 남일당 건물에서 가게를 운영하던 이들은 지금까지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2015년 9월 서울시가 참사 관련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 일용직 혹은 무직자 비율이 약 70%에 달했다.

 

이충연 위원장은 “일을 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경찰 및 용역업체 직원들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부상을 당해 지금껏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는 이들도 상당하다. 실제 한 철거민은 당시 부상으로 다리뼈가 지속적으로 썩는 장애를 얻어 현재 13번째 수술 날짜를 잡아놓은 상태다.

 

정신적 고통은 말할 것도 없다. 참사 전후로 겪은 공권력의 위협은 유가족들에게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겼다. 참사가 있기 1년여 전 개발 인가가 떨어진 직후부터 이들이 운영하는 가게마다 용역업체 직원들이 상주하기 시작했다. 용역과의 물리적 충돌은 일상이 됐다. 그때마다 경찰은 쌍방에 벌금을 물리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했다. 철거민들이 도움을 청한 용산구청은 되레 ‘구청에 와서 떼를 써도 해 줄 게 없습니다’는 문구의 플래카드를 구청 앞에 크게 달아놓기도 했다.

 

“경찰에 신고한 지 6개월쯤 지난 어느 날 서부지검에서 용역업체 직원 3명과 우리 세입자 3명을 불렀다. 담당 조사관이 조사실로 들어오더니 대뜸 용역들에게 ‘사장님은 잘 계시느냐. 같이 조기축구 뛴 사이다’라며 보란 듯이 친분을 과시하더라. 제대로 말도 못하고 우린 그대로 나왔는데 그 후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됐는지는 9년이 지난 지금까지 들은 바가 없다.” 이씨는 이날 이후 더 이상 공권력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와 비슷한 일을 겪은 철거민들은 2009년 1월20일, 자신들의 목소리가 가장 잘 들릴 수 있는 높은 곳을 찾아 건물 망루 위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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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떳떳한 가해자들, 가슴이 무너진다”

 

참사 이후 지난한 싸움 또한 참사의 순간만큼 철거민들에겐 힘겨운 고통이었다. 아픔을 채 수습하기도 전인 2009년 4월 철거민들에 대한 첫 공판이 진행됐다. 이후 최종 대법원 판결까지 1년6개월여 동안 진행된 재판 과정에서 검찰의 태도는 지금까지 이들에겐 의문으로 남아 있다. 검찰은 무슨 이유인지 1심 재판 내내 3000쪽에 달하는 수사 기록을 유가족 측에 공개하지 않았다. 이후 항소심에서 수사 기록 공개를 결정한 담당 판사는 재판 중 갑작스레 좌천됐다. 참사 당시 발화원인으로 의심된 건물 내 발전기 스위치가 국과수에 의해 분실되는 일도 발생했다. 숱한 논란 끝에 대법원은 철거민 9명에게 유죄를 최종 선고했다.

 

1년 가까이 벌인 정부·서울시와의 줄다리기 끝에 유가족들은 정부의 진정한 사과만을 요구하며 협상을 끝맺었다. 이씨는 “돌아가신 분들은 차가운 냉동고에 계속 보관돼 있고 유가족 모두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며 “어느 순간 이 정권에선 진상규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그 정도에서 협상을 마친 것”이라고 회고했다. 이씨의 어머니 역시 “남편이 사망하고 아들마저 수감된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협상을 잘 마무리해야 아들이 하루라도 빨리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전했다.

 

공권력에 대한 혐오와 불신은 시간이 지나도 이들에게서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씨의 아내 정영신씨는 지금도 경찰을 만나면 필요 이상으로 예민해진다. 1년 가까이 용역업체 직원들로부터 24시간 사찰당한 기억에, 여전히 자신을 쳐다보는 타인의 시선을 극도로 피하기도 한다. 정씨는 “9년 전 기억은 우리 식구 각자에게 트라우마를 심어줬다. 남편은 독방에 수감돼 있던 탓에 작은 발자국 소리에도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반대로 나는 남편의 수감 후 어두운 집에 혼자 남겨졌을 때가 생각나, 아주 잠깐의 적막과 암흑도 너무나 무섭다”고 말했다. 괴로운 현실을 피하려 눈을 감으면 캄캄한 암흑에 또다시 두려움이 밀려온다는 것이다.

 

9년이 지났음에도 수시로 삶에 들이닥치는 그날의 기억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유가족들은 가해자들의 처벌과 명백한 진상규명만이 유일한 ‘치유’라고 답한다. 지금도 생계나 신체적 고통보다 훨씬 자신들을 괴롭히는 게 있다.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 김석기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 등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김석기 서울청장은 2013년 박근혜 정권 초 한국공항공사 사장을 역임했으며 20대 국회에서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경북 경주에서 당선돼 현역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공항공사 사장으로 내정됐을 당시 유가족들은 항의차 공사 건물을 방문했다. 그때도 김석기 당시 사장은 용역업체를 동원해 이들을 진압했으며, 이후 업무방해로 고소해 2년간 재판이 진행되기도 했다.

 

20대 총선 때도 유가족들은 경주로 내려가 시민들에게 그가 용산 참사 당시 경찰 책임자였음을 알리는 활동을 했다. 그 결과, 유가족들에게 돌아온 건 역시나 선거법 위반 벌금 70만원이었다. 이처럼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유가족들의 싸움은 9년간 쉬지 않고 이어져왔다. 이충연 위원장은 “참사 가해자 그 누구에게도 지금껏 처벌이 가해진 적 없다”며 “TV를 틀면 진압 책임자가 떵떵거리며 잘사는 모습이 나오는데 우리가 어떻게 제대로 치유될 수 있겠는가”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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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 세입자 이주 대책 바뀐 게 없다”

 

용산4구역이 참사의 흔적을 잃어가는 동안, 당시의 기억 역시 해를 거듭하면서 점차 사람들에게서 잊혀져갔다. 유가족들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장례를 치렀는데, 그 후 사람들이 용산 참사가 마치 다 해결된 것처럼 빠르게 잊었다”고 전했다. 사익을 위해 투쟁한다는 일부 여론의 비판도 이들에겐 뼈아팠다.

 

참사 후 철거민·유가족을 비롯해 각계 인사들로 꾸려진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제2의 용산 참사 방지를 외치며 공권력 남용을 막기 위한 다양한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그중 하나로 세입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내쫓기는 일이 없도록 강제퇴거금지법 제정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줄곧 국회에 계류돼 있다가 19대 국회에서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유가족들은 법률의 부재로 여전히 제2, 제3의 용산 참사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특히 주거 세입자보다, 용산 참사 피해자와 같은 상가 세입자들의 이주 대책은 9년 전과 비교해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고 이들은 강조한다. 이충연씨는 “그나마 그때와 달라진 건 이주할 때 지원 비용을 3개월 치에서 4개월 치로 늘려 지급하는 것뿐”이라며 “3개월 있다가 죽을 거냐, 4개월 있다가 죽을 거냐 정도의 차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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