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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제론트랜센던스” 들어보셨나요?…노년기의 得道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1.18(Thu) 14:05:44 | 14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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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론트랜센던스는 나 역시 처음 들어보는 단어다. 영어 단어 geron-transcendence는 노년학을 뜻하는 제론톨로지의 제론과 초월하다라는 뜻을 지닌 트랜센던스를 결합해 만든 신조어라 한다. 우리말로 번역하기가 쉽지 않아 다소 아쉽다. 낯설게 들리는 단어 제론트랜센던스는 고령화 및 고령사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은 물론이다. 제론트랜센던스란 나이 들면서 어느 순간 자신의 삶에 찾아온 깨달음 내지 득도(得道)의 순간을 포착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 개념을 만들고 평생토록 연구해 온 스웨덴의 노년학자 라스 톤스탐(Lars Tornstam)에 따르면, 노년기 제론트랜센던스를 경험한 이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고백을 공통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삶과 죽음의 의미가 가슴 깊이 새롭게 다가왔다는 고백, 의례적인 만남, 만남을 위한 만남, 의미 없는 만남 등이나 겉치레 활동, 보여주기식 활동, 무가치한 활동 등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대신 자신을 기쁘게 하는 만남, 충만하게 하는 관계, 만족스러운 경험에 관심을 집중하게 됐다는 고백, 물질적 풍요로움을 추구하거나 명예욕을 과시하기보다는 정신적 풍요로움의 가치를 깨닫게 되고, 평화롭고 고독한 삶의 매력을 즐기게 됐다는 고백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제 버리고 갈 것만 남아 홀가분하다’ 했던 작가 박경리, 눈을 감으며 ‘고맙습니다. 사랑하세요’라는 말씀을 남긴 김수환 추기경, ‘세상에서 지극히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 오직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다’고 했던 헬렌 켈러. 이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제론트랜센던스의 경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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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남긴 이들이 아니어도 우리는 주위의 가까운 이들로부터 불현듯 깨달음의 기쁨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인생은 그저 봄·여름·가을·겨울 같은 것이라, 삶은 그런대로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 젊은 시절엔 불평등하고 부정한 것만 눈에 띄었는데 살아보니 인생은 공평하고 공정한 것이더군, 신은 양손을 채워주지 않는다니 빈손을 보며 아쉬워하기보다 채워진 손을 보며 감사해야지 등등의 이야기를 말이다. 국내 대기업 중 은퇴를 앞둔 직원들을 대상으로 ‘죽음 체험’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체험토록 하는 이 프로그램에서는 교육생의 몸을 묶고 관 속에 들어가도록 한 후, 관 뚜껑을 닫고는 네 귀퉁이에 못을 박는 의례를 행한다고 한다. 바로 이 순간 대부분의 교육생은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는 것이다.

 

관에서 나온 후 눈물을 왜 흘렸는지 물어보면, 대부분이 본의 아니게 자신의 가족들에게 준 상처가 생각났기 때문이라 답한다는 게다. 큰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응급실로 실려 가던 순간에도 급한 서류가 있어 사무실에 남아 있었다는 아버지, 어머니 임종을 준비하라던 의사의 말을 뒤로하고 야근하기 위해 사무실로 돌아갔다는 아들, 아내가 아이 셋을 낳는 동안 자신을 절대로 귀찮게 하지 말라고 선을 그었다는 남편들은, 젊은 시절 자신의 모습을 후회하며 만일 한 번의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아들, 어머니, 아내 곁을 지키겠노라 다짐했다고 한다.

 

제론트랜센던스 개념에 주목하는 학자들은 득도의 순간이 왜 이리도 늦게 오는가에 주목하면서, 만일 깨달음이 이루어지는 순간의 주요 메커니즘을 밝혀낼 수만 있다면 깨달음의 시간을 보다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에 관심을 집중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인생을 허비하거나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것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말이다. 결국 제론트랜센던스는 고령세대가 중장년 세대와 청년세대에게 주는 값진 선물이 될 것 같다. 앞서 간 세대의 지혜와 여유가 앞으로 올 세대에게 전달될 수만 있다면 우리네 삶이 지금보다는 덜 소모적이고 덜 강퍅해지며 덜 초라해질 것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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