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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흥길 "내 작품, 정치적으로 이용 말라"

완주 자택서 만난 ‘등단 50주년’ 윤흥길 작가 “6․25 비극은 현재진행형”

전북 완주=김경민·조문희 기자 ㅣ kkim@sisajournal.com | 승인 2018.01.18(Thu) 1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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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월. 전북 익산(당시 명칭 ‘이리’)의 8살 소년은 오전 수업을 마치고 학교 안 우물로 물을 길러 가고 있었다. 운동장에 있던 아이들이 하늘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하얀 비행기 편대가 북쪽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잠시 후 이번엔 북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전투기 편대가 날아 내려왔다. 환호하는 아이들 틈에서 넋 놓고 하늘을 올려다보던 소년의 눈에 뭔가 이상한 것이 보였다. 전투기에서 까만 점들이 툭툭 떨어졌다. 수박씨만하던 까만 점들은 이내 수박덩어리만 해졌다. 폭탄이었다. 까만 수박덩이는 사방에 폭발음을 울리며 땅을 흔들어댔다. 아이들의 환호는 비명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날 소년은 난생 처음 시체를 봤다. 폭탄과 방공호, 시체, 참을 수 없었던 구토. 소설가 윤흥길(76)이 기억하는 ‘6․25 전쟁’에 관한 최초의 기억이다. 

 

1월17일 서울에서 기차로 두 시간, 차로 30분을 더 달려 윤흥길 작가의 완주 자택에 도착했다.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회색 면류관의 계절》이 당선된 후,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은 윤흥길 작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2014년 ‘귀향’을 결심한 뒤 5개월간 정성껏 지었다는 2층집 응접실에서, 그는 오래 전 ‘그 날’ 에 대한 기억부터 꺼내들었다.

 

그의 작품세계는 어린 시절 겪었던 6․25전쟁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출발한다. 문학계에서 통상 ‘분단 문학 계열’ ‘산업화 문제 계열’ ‘풍자 해학 계열’ 등으로 나눠지는 그의 작품세계는 그 근원을 이 전쟁에 두고 있다. 이후 한국 사회가 밟아온 고도의 산업화, 군부 독재, 빈부 격차, 외교 갈등 및 정당간 반목 등 대부분의 사회적 문제는 전쟁이 불러온 민족적 비극에서 시발한 것이란 게 작가의 통찰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독재를 행하면서 핑계로 삼은 것이 ‘북한에 대적하기 위해 강력한 정치체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6․25가 낳은 분단의 비극은 박정희 유신 독재에 대한 구실 역할도 했다. ‘호전적인 북한과 싸워 이기려면 자유, 천부 인권, 평등, 부의 분배 등 모든 권리를 유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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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이러한 이분법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는 것 같다.

 

“​지금도 선거철만 되면 당리당략에 따라 ‘좌파’‘사회주의’‘종북’ 이란 말들이 등장한다. 6․25가 불러온 한반도의 비극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북한을 추종한다고 해서 ‘종북’이란 표현이 사용되는데, 사실 오늘날 북한을 추종해야할 이유가 전혀 없다. 지금의 북한은 공산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니다. 3대 째 권력을 세습하는 절대왕조일 뿐이다. 그런데 아직도 공산주의니, 사회주의니 운운하는 일부 정치권 사람들을 보면 ‘이거야 말로 전쟁의 비극이구나’ 싶다. 

 

매년 막대한 국가 예산을 사용하는 국방의 문제나, 징병제도 전쟁이 초래한 엄청난 손실이다. 젊은이들이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학업까지 중단해가면서 병역의 의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지 않나. 분단 상황으로 인해 국제적으로도 얼마나 많은 패널티를 안고 있나.”​

 

 

윤흥길 작가의 작품, 유독 정치권에서 인기가 있다. 지난해엔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위원회를 겨냥해 “윤흥길의 소설 《완장》을 보면 동네 건달에게 노란 완장을 채워주자 완장에 취해 거들먹거리면서 군림하는 모습이 나온다. 지금과 같은 상황을 연상시킨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치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완장》처럼 칼럼이나 사설에 자주 인용되는 경우도 참 드문 것 같다. ‘아전인수’로 해석한 경우도 있어 어떨 땐 너무 어처구니가 없더라. 이 소설로 인해 비판받아야 할 권력이 오히려 자기네한테 유리하게 해석해 인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완장》 4판 서문에 '지금까지 칼인 줄 잘못 알고 남의 깃털을 무단히 가져가 아무렇게나 휘두르신 분들이 계시다면, 제발 그 보잘것없는 물건을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으실 것을 이 자리를 빌려 간곡히 당부드리는 바'라고 썼다.”​

 

 

작품에 대한 해석은 결국 독자의 몫 아닌가. 자신의 작품을 오롯이 작품으로만 보길 바라나.

 

“​꼭 그렇진 않다. 나는 사회에 뭔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작품을 쓴다. 《완장》도 그렇다. 1982년 3월부터 1983년 2월까지 월간문예지 《현대문학》에 연재했던 소설이다. 전두환 정권이 가장 극성스럽던 그 시기였다. 이 무소불위의 권력이 우리 사회에 가져다주는 폐해를 신랄하게 야유하고 싶다는 동기에서 연재를 시작했다. 때문에 작품을 통해 권력을 희화화하고 권력이 갖는 한계를 알려주고자 했다. 문제는 내가 비판하고자 했던 세력들이 오히려 그걸 인용해서 엉뚱하게 해석하는 경우다.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품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인터뷰를 하면서 보니, 참 ‘반골’이시다.

 

“​그래서 살기 힘들었다.(웃음) 한국작가회의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창립멤버였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1974년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위해 결성된 문학운동 단체다. 11월18일 창립선언 당시 고은 신경림 백낙청 황석영 등과 광화문 사거리에서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내용의 ‘문학인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그때 전투경찰들한테 붙잡혀서 종로 경찰서에 가 얻어맞고 조사받았다. 그 뒤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이사를 많이 했는데, 어디로 이사만 하면 다음날 제일 먼저 오는 손님이 그 지역 사찰계(지금의 정보보안과) 형사였다. 이들이 한 달에 한 번은 불시에 집으로 찾아왔다. 형사가 한번 다녀가면 모든 의욕이 꺾인다. ‘아, 내가 이렇게 항상 감시받고 독안에 든 쥐처럼 살고 있구나’란 생각이 드니까.”​​

 

 

군부 시절엔 어땠나. 작품 활동 어떻게 이어갔나.

 

“​매일같이 나가서 데모를 하거나, 성명에 참여하거나, 그러다 저녁이면 문인들과 모여 앉아 ‘깡술’을 마시며 울분을 토했다. 그러다 1980년 계엄사 합동수사본부가 생겼는데, 거기에 끌려가 며칠을 고생하다 중앙정보부로 넘겨져 이른바 ‘순화교육’을 받았다. 그렇게 며칠 만에 집에 돌아왔다. ‘이제부턴 오로지 작품으로 얘기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때 구상을 시작한 게 《완장》이다. 그 뒤로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장마》등을 발표했다. 제 작품들이 검열에서 걸리는 것은 물론이었고, 현실 속에선 저 자신이 사찰 대상으로 감시당해야 했다.”​​

 

 

지난 정권 ‘문화계 블랙리스트’ 문제가 드러났을 때, 어땠나.

 

“​나라에서 문학인들에 대한 혜택을 준다더니, 그걸 빌미로 이런 검열을 했을 줄이야. 아직까지 그런 식의 검열과 사찰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한국 사회에서 다시는 존재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참…. 나 역시도 정권을 비판하는 문학인 성명에도 참여하고 그랬는데, 정작 블랙리스트엔 안 올라있더라. 내가 정부의 창작활동 지원기금 같은 것에 일체 지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감사하게도 나는 몇 편의 책 인세 수입으로 그럭저럭 생활이 가능한 형편이다. 그런 내가 지원금까지 받으면 후배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는 문학인들이 많다. 2011년 빈곤 속에 끝내 ‘쪽지’ 하나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고(故) 최고은 작가와 같은 가슴 아픈 일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전작(全作․소설 등을 여러 회로 나누지 않고 한 번에 집필하거나 발표하는 작품)을 쓰기 어렵다. 작품을 완성할 동안 생계에 대한 부담감이 크기 때문이다. 또 독자들도 그만큼의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베스트셀러 작가들조차 생활이 어려워서 주변으로부터 유혹을 많이 받는다. 대표적인 게 비교적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연애 소설을 써보자는 제안과, 재벌 기업 창업주나 임원의 전기(傳記)를 써달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작업 한번만 하면 작가의 생활수준이 확 달라진다. 

 

나 역시도 이런 유혹이 왔었다. ‘억대의 고료를 주겠다’, ‘집필 기간 동안 승용차와 비서를 붙여주겠다’, ‘인세를 파격적인 조건으로 주겠다’는 조건이었다. (왜 거절했나) 당시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가족회의를 했다. 나만 빼놓고 다 반대하더라. 아이들도 '어려워도 지금까지 살아왔으니까 조금 더 참자'며 의젓한 소리를 했다. 가족이 결국 나를 지탱해준 셈이었다. 그렇게 힘들지만 고집을 지키며 써온 작품들이 많진 않지만 꾸준한 수입원이 돼줬다. 그래서 나는 요즘 하루하루가 감사하다. 글을 써서 처자식을 먹여 살리고 자식들 하고 싶어하는 공부도 끝까지 시켜주고. 집도 있고, 좋진 않지만 차도 한 대 있지 않나. 정말 큰 혜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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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등단 50년이다.

 

“​요즘의 나는 하루하루 생명이 연장되는 게 감사하다. 워낙 장기간 집필하다보니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의자에 앉아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다보니 심혈관에 문제가 생겼다. 젊을 때 기계체조, 구기종목 등 워낙 운동을 많이 했었다. 그때 저축한 체력으로 지금까지 버티다가 이제는 잔고가 바닥이 난 셈이다. 

 

내가 믿는 신이 나로 하여금 나이 팔십에 가까워지도록 살게 해주신 데엔 내게 허락하신 그 문학적 달란트(특수한 재능을 의미하는 기독교적 용어)를 최대한 활용하길 바라시는 의도가 있다고 믿는다. 몇 살이 될 진 모르지만, 대대로 단명했던 우리 집안에서 이렇게 칠순 넘어서까지 살게 해주신 데엔 마지막까지 좋은 작품 많이 써서 남기라는 것 아닐까.”​​

 

 

꾸준히 집필을 이어왔다고 들었다. 올해엔 5권짜리 전작 《문신》 출판을 앞두고 있다.

 

“​《문신》은 출판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연재하던 문학잡지가 갑자기 폐간하면서 수년간 출판권 분쟁을 겪었다. 이어서 찾은 다른 출판사도 자진 폐간하면서 같은 문제를 되풀이했다. 다행히 출판권을 되찾았다. 고향에 내려온 뒤 원래의 스토리를 수정했다. 현재 5권 중 4권을 집필한 상태다.

 

앞으로도 쓸 작품들이 많다. 아마 《문신》에 앞서 동화로 먼저 독자들을 만나게 될 것 같다. 대한민국 예술원 문집에 실릴 것 같다. 동화는 항상 쓰고 싶었던 분야다. 특히 귀향 뒤 자연과 가까워지면서 주변에 동화 소재가 널려있더라. 최근 손주가 생긴 뒤로 아이가 크면서 읽을 수 있도록 꼭 동화를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윤흥길 작가 부부는 “요즘 우리는 ‘손주바보’로 활동 중이라며 웃었다. 집안 곳곳에 손주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내 자식이 나중에라도 아버지를 기억할 때 ‘참 훌륭한 아버지였고 좋은 작가였다’라고 기억하길 바란다. 사실 나는 가족 외엔 주변의 눈치를 그리 신경쓰는 편이 아니다. ‘한 번 해야겠다’ 마음먹으면 누가 뭐래도 밀고 나가는 성격이다. 친구들이 ‘독종’이라고 부를 정도다. 하지만 작품 쓸 때마다 그 누구보다 가족들을 의식한다. 가족들이 작가인 남편, 작가 아버지를 누군가에게 얘기할 때 부끄럽게 느끼게 할 순 없다는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쭉 그런 생각으로 작품을 써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또 지금 자라나는 세대나 후배들이 내가 죽고 없더라도 ‘참 좋은 작가였다’ ‘좋은 선배였다’ 이렇게 기억해줬으면 한다. 지금처럼 기억력이 좋고 정신이 깨끗한 상태가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아마 모든 작가들이 바라는 것 아닐까."


윤흥길 작가는 오래 전의 일도 매우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신춘문예 합격자 발표를 받던 날, 연작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위해 사전취재를 하던 당시의 기억은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도 사용해야 할 많은 어휘들이 머릿속에 가득 들어차 있는데, 이게 나이를 먹으며 점점 까먹기 시작한다. 최근 4권까지 탈고를 마친 총 5권짜리 전작 《문신》(2018년 하반기 출판 예정)을 쓸 때의 일인데. 내가 작업을 하는 방식이, 따로 메모를 하지 않고 머릿속에 모든 구상을 짜놓고 첫 문장부터 써내려가는 식이다. 그러다 어떤 단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그 단어가 떠오를 때까지 한 줄도 진행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생각보다 집필에 오래 걸렸던 점도 있었다. 제발 오래도록 ‘머리’가 살아있어. 필요할 때 원하는 것을 제때 꺼내 쓸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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