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 총수 다시 부른 검찰, 4년 수사 마침표 찍나
  • 박혁진 기자 (phj@sisajournal.com)
  • 승인 2018.01.19 17:20
  • 호수 1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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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비자금 조성 혐의…문재인 정부 첫 번째 총수 소환 불명예

 

100억원대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는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이 1월17일 검찰에 출석했다. 효성그룹은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의 차남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이 2014년 7월부터 친형인 조 회장을 상대로 수십 건의 고발을 제기하는 등 ‘형제의 난’이 4년째 계속되고 있다. 조 회장은 ‘형제의 난’이 벌어진 이후 4년여 만에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게 됐다.

 

조 회장은 2010〜15년 측근 홍아무개씨의 유령회사를 효성그룹 건설사업 유통 과정에 끼워넣어 ‘통행세’로 100여억원의 이익을 안겨주고, 그 돈만큼을 비자금으로 조성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자신이 지분을 가진 부실 계열사 갤럭시아포토닉스에 효성이 수백억원을 부당지원하게 한 혐의, 300억원 규모의 ‘아트펀드’를 통해 미술품을 비싸게 사들이는 방식으로 자금을 횡령하고, 이 부실의 연대보증을 효성에 떠넘긴 혐의도 조사 대상이다.

 

검찰은 조 회장이 노틸러스효성 등 계열사가 2000년대 중후반부터 홍콩 페이퍼컴퍼니에 ‘컨설팅’ 비용 명목으로 수년간 수십억을 보내게 하는 등 해외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도 의심하고 있다. 또 조 회장이 자신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미인대회 출신 영화배우, 드라마 단역배우 등 4명을 ‘촉탁사원’ 형식으로 허위 채용해 급여를 지급했다는 의혹 등도 조사할 방침이다.

 

1월17일 100억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효성 비리 의혹 자료, 우병우 변호사가 정리

 

검찰이 효성그룹 오너 일가를 직접적으로 겨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조 전 부사장의 제보 때문이다. 조석래 명예회장은 여러 비상장 계열사의 지분을 세 명의 아들에게 33%씩 나눠주는 등 나름 공정한 후계구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반대로 장남뿐만 아니라 차남이나 삼남도 효성그룹 경영 전반에 깊숙이 개입했단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차남이 어느 순간 그룹 경영에 불만을 가지고 등을 돌렸으니 거기서 흘러나온 정보는 효성그룹 오너 일가에 부메랑이 돼 돌아갈 수밖에 없다. 때문에 검찰에 처음 제보가 들어갔던 2014년 전후에는 ‘검찰이 효성그룹 관련 꽃놀이패를 쥐었다’는 말이 재계 주변에 나돌 정도였다.

 

게다가 조 전 부사장이 아버지와 형의 회사를 공격하기 위해 내세웠던 인물은 다름 아닌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다. 우 전 수석은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발탁되기 전이었던 2014년 2월, 조 전 부사장의 변호사로서 효성 측에 ‘회계장부 열람·등사에 대한 협조요청’ 공문을 보냈다. 뿐만 아니라 효성 계열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회계자료 사본 외에 엑셀파일과 계열사 간 풋옵션 계약서까지 요구해 상대 변호사와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우 변호사의 이런 강경한 태도에 효성을 대리한 김앤장 측이 적잖이 당황했다고 한다. 우 변호사는 이로부터 석 달 뒤인 2014년 5월 민정비서관으로 발탁됐다. 그가 실세 민정비서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하자 법조계 주변에서는 효성그룹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가 본격화될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게 제기됐다.

 

실제로 이 사건은 처음 조사부에 배당돼 수사가 시작됐다. 당시 조 전 부사장 측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담당하는 검사가 1명이었지만 사건이 잘 진행되고 있다가, 우 전 수석이 민정비서관에서 수석으로 영전하면서 갑자기 특수부로 재배당됐다”고 말했다. 조사부 사건이 특수부로 넘어가면서 조 전 부사장 측은  검찰이 수사 역량을 더욱 집중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상황은 반대로 흘러갔다. 앞서 언급한 인사는 이와 관련해 “오히려 조사부 때 수사가 더 적극적이었고 특수부로 넘어가서는 사건이 뭉개지는 느낌이었다”며 “만약 우 전 수석이 힘을 썼다면 특수부가 사건을 두고 그렇게 머뭇거릴 리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법조계나 재계에서는 효성 사건이 특수부로 넘어가면서 오히려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 박근혜 정부의 역할론을 제기하는 시선이 많았다. 조석래 명예회장이 2009년 전경련 회장 자격으로 박정희기념관 설립 때 협조공문을 보내는 등 많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박정희기념관 설립과 관련해 조 명예회장의 공로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전달됐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 검찰 수뇌부, 효성과 대부분 인연

 

박근혜 정부에서 결론 내지 못한 효성그룹 총수 일가 관련 의혹은 결국 문재인 정부의 검찰로 넘어왔다. 이번 검찰수사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점은 현 검찰 수뇌부가 효성그룹을 한 차례 이상 수사했다는 것이다. 2008년 첫 번째 효성그룹 비자금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는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으로 재직한 문무일 현 검찰총장이다. 2013년 12월 조 명예회장이 배임·횡령 혐의로 중앙지검 특수2부의 수사를 받을 당시 윤대진 현 중앙지검 1차장이 특수2부장이었다. 당시 윤 부장은 조 명예회장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횡령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이 기각했다. 이번에 조 회장을 소환한 서울중앙지검 조사2부는 윤 차장검사의 지휘를 받는 부서다. 효성에서는 4년 동안 3차례가 넘는 검찰수사를 받으면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형국이다. 효성 관계자는 “어떻게든 빨리 결론이 났으면 좋겠다”며 “검찰수사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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