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위반할라"···'살얼음판' 걷는 호남 지자체장들
  • 전남·북 = 정성환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18.01.20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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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과의 대화' 행사, “현역 프리미엄 최대 활용” vs “선거법 위반 소지” 사이서 고민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광주와 전남북 단체장들이 선거법 위반 시비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고 있다. 일부 시장과 군수들은 연초행사로 잇따라 '주민과의 대화'에 나서고 있으나, 선거법 위반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對)주민 행사와 홍보가 자칫 '양날의 칼'이 될 수 있어서다. 현역 프리미엄을 마음껏 행사할 수 있는 호기이지만 동시에 선거법 위반 시비에 휘말려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불씨가 될 소지가 있는 행사나 모임을 줄이거나 아예 피하는 등 근신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는 단체장도 있다. 관례대로 주민 행사를 개최하더라도 최대한 법 테두리 안에서 기회를 살려보겠다는 의도가 역력하다. 반면에 선거관리위원회와 출마 예정자들은 '매의 눈'으로 선거법 위반 여부 등을 감시하는 등 단체장 '치적 홍보'를 둘러싸고 지역정가가 술렁이고 있다. 

 

강인규 전남 나주시장이 1월 9일 올해 첫 연두 순방 일정으로 빛가람동에서 '주민과의 대화'를 갖고 있다. ⓒ 나주시 제공

일선 지자체장이 주민을 손쉽게 대규모로 접촉할 수 있는 행사가 이른바 '주민과의 대화'다. 올해 자치단체의 주요 업무계획과 각 읍·면·동의 현안사업을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지역발전 아이디어와 정책제안, 건의사항을 듣는 자리다. 주민들의 생생한 현장 목소리를 듣고 소통의 시간을 갖겠다는 취지다. 지자체에 규모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적게는 4000여 명에서 최대 1만여 명의 지역주민을 단기간에 만날 수 있다. 현직 시장과 군수들은 지방선거 전 실시되는 당내 경선을 앞두고 현직의 최대 프리미엄인 주민과의 대화의 장을 통해 합법적으로 지역 주민에게 얼굴도 알리고 조직도 사전에 '점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지자체장 '주민과의 대화' 최고의 선거운동…'양날의 칼'

 

'주민과의 대화' 실시 여부는 광역과 기초자치단체에 따라 확연히 갈리고 있다. 전남북 광역자치단체의 경우 대부분 올해 주민과의 대화를 실시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도지사 권한대행 체제인 전남도는 연초 '도민과의 대화'를 생략했다. 전북도도 마찬가지다. 매년 실시해 온 송하진 도지사의 연두순방 겸 '도민과의 희망의 대화'를 올해는 하지 않기로 했다. 국회에 계류 중인 새만금특별법 개정 등 4대 현안 법안 통과에 주력하겠다는 것이 송하진 도지사의 뜻이다. 당면한 도정 현안 처리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한민희 전북도 공보관은 "당초 지난해 말 4대 법안 모두가 통과돼 올해 초부터 현안사업들이 본격 추진될 것으로 전망했지만 국회 상임위원회 여야 의원 간 찬반이 갈리면서 계류되고 있는 실정이다"며 "이에 송 지사께서 올해는 일선 시군 연두 순시보다는 4대 법안 통과 등 현안에 도정 역량을 집중하기로 일찌감치 방침을 정했다"고 말했다. 

 

반면에 일선 기초자치단체의 셈법은 다르다. 광주지역 일부 구청과 전남북지역 일부 시·군은 '주민과의 대화'를 개최하고 있다.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 현역 기초단체장들이 앞 다퉈 '주민과의 대화'에 나서는 것은 마지막 현역 프리미엄을 선거에 최대한 활용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공직선거법은 '60일전 행사 금지'를 규정하고 있어 시점 상으로는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주민들을 만나는 과정에 자칫 선거법 등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각 자치단체는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각 자치단체들은 선거법 위반 소지를 없애기 위해 관할 선거관리위원회에 세부 상황을 문의하거나 감수까지 받아가며 주민과의 대화를 진행 중이다.

 

광주에서는 동구가 지난 1월8일부터 25일까지 13개 동을 순회하며 ‘2018년 주민과의 대화’를 열고 있다. 동구는 주민의견을 접수 받아 진행하고 있으며, 진행시간도 대폭 단축하고 간소하게 진행 중이다. 전남에서는 김성 장흥군수가 지난 12일부터 '군민과 소통하는 연두순방'을 시작해 오는 25일까지 읍·면을 돌며 '주민과의 대화'를 연다. 

 

장흥군은 선관위의 유권해석을 통해 주민 홍보물을 배포할 수 없어 군정 성과와 올해 군정 사업 계획 등을 PT(프레젠테이션)로 대체했다. PT내용 역시 혹시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는 부분은 선관위 감수를 받아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인규 나주시장도 현재 주민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으며, 구충곤 화순군수 역시 '군민과의 행복공감 대화'를 하고 있다. 주철현 여수시장도 해마다 연초에 해왔던 '시민과의 대화'를 이날부터 시작했지만, 선거법 위반을 고려해 방식을 바꿨다. 시가 주도하는 '시민과의 대화'는 선거법 위반소지가 있다는 선관위의 해석에 따라 주민이 주도하는 '주민 주도 토론회' 형식으로 변경했다. 

 

전북에서도 일부 기초자치단체에서 실시하고 있다. 정헌율 익산시장은 일찌감치 지난 1월4일부터 17일까지 하루 3곳씩 29개 읍면동을 순회하며 총 5000여 명의 주민과의 대화를 실시했다. 선거법 위반을 염두에 둬 프레젠테이션으로 진행했다. 이환주 남원시장은 지난 1월15일 금지면을 시작으로 21일까지 읍·면·동을 순회하면서 지난해 시정성과를 설명하고 올해 시정계획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시정설명회를 열고 있다. 김종규 부안군수는 지난 16일 부안읍·주산면을 시작으로 새해 읍면 연초방문 행사로 '오복공감 이야기마당' 토크쇼를 25일까지 개최하고 있다. 연인원 4000여 명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행사는 토크쇼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은 선거법상 선거일 60일 전인 오는 4월14일부터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가 금지됨에 따라 광주·전남지역 다른 일부 기초단체도 이 기간 내에 주민과의 대화를 계획 중이다. 반면에 일부 지자체는 할까 말까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송하진 전북도지사가 2017년 12월15일 오전 전북 전주시 완산구 르윈호텔에서 열린 '자치분권 로드맵(안) 현장 토론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관위·경쟁자들, 불법·탈법 행위 '매의 눈‘ 감시

 

경쟁 후보 측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일부 경쟁자들은 주민과의 대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을 불법·탈법 행위에 대비해 동태파악에 나서는 등 촉각을 세우고 있다. 선관위도 행사과정에 자치단체장들의 선거법 위반 등의 행위가 있을지 여부에 대해 눈여겨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역정가의 한 관계자는 "주민과의 대화는 합법적인 범위에서 선거를 앞둔 현직 단체장이 누리는 최고의 '선거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상대 후보 역시 현장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당내 경선이 가까워지면서 근신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는 단체장도 늘고 있다. 지역 기초단체장들의 지역 행사 참여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일부 단체장들은 신년교례회와 읍면동 연두 방문 등 의례적인 행사에만 참석하고 있다. 선거법 적용 전보다 지역 행사 참석 빈도를 줄이고 있는 것이다. 선거철을 앞두고 선거법이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게 한 군청 비서실 관계자의 설명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사석에서 타 후보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거나 지지하는 행동은 자제하고 있다. 기초단체장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치적 일색이던 소식지도 정보제공 위주로 내용이 바뀌었다. 광주의 한 구청 관계자는 "소식지에 구청장의 모습이 담긴 단체 사진을 첨부하기 전에 선관위에 미리 전화해 선거법 저촉 여부를 문의했다"면서 "전체적으로 조심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덤터기 쓸라' 일선 지자체, 선관위 유권해석·감수 필수

 

일선 지자체 홍보담당자들의 고충도 감지된다. 선거법이 강화되면서 이들 홍보담당자 역시 살얼음판을 걷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6·13 지방선거에 출마할 입지자를 모시고 있는 일선 기초의회, 구청 홍보담당자들은 애로사항을 토로하고 있다. 자칫 선거법을 위반했다가는 본인이 몽땅 책임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일선 시군의 홍보 담당자들은 보도자료 배포에서부터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정책 홍보성 보도자료를 안 내보낼 수도 없는 입장이다. 궁여지책으로 각종 보도자료를 작성 및 배포하기 전 선관위에 미리 전화문의 후 작성하고 있다. 자칫 잘못했다간 해당 의원이나 지방선거 출마예정인 각 단체장들이 선거법 위반에 저촉 될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전북의 한 군의회 홍보담당자는 "선거법 180일 전 치적홍보 및 홍보물 발행이 금지된다고 해서 의원들 동향에 대한 보도자료를 배포할 때 신중을 기하고 있는 상황이다"며 "자칫 잘못하다간 선거법 위반으로 단속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홍보담당자 입장에서는 신경이 많이 쓰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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