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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전 입소문부터 탔던 ‘웰메이드 다큐’ 둘

여성 생리 다룬 《피의 연대기》와 용산 참사 다룬 《공동정범》 개봉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1.26(Fri) 13:30:00 | 14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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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는 《노무현입니다》 《공범자들》 등 사회적 메시지 전달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다큐영화들이 여럿 등장했다. 올해 극장가도 다큐영화 열풍이 이어질 전망이다. 1월 개봉 다큐 중에는 이미 지난해 열린 서울독립영화제 등에서 관객의 입소문을 타고 화제가 됐던 두 편이 포함돼 있다. 여성의 생리에 대한 모든 것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의 다큐인 《피의 연대기》, 2009년 용산 참사의 진실을 재구성했던 《두 개의 문》(2011)의 후속작 《공동정범》이다. 문제의식과 구성 면에서 두루 탁월한 다큐들이다. 두 다큐가 겨냥하고 있는 문제는 다르지만, 개개인의 문제에서 출발해 종국에는 훨씬 거대한 사회적 담론을 제기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생리를 생리라 부르지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 서사도 아니건만, 생리는 그 이름 대신 온갖 엄한 말들로 불려온 대표적 단어다. 그날, 마법, 달거리, 빨갱이, 대자연…. 《피의 연대기》는 여성들이 그간 왜 생리를 공론화할 수 없었는지, 생리는 왜 부끄러운 것으로 학습됐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세상의 모든 가임기 여성들은 한 달에 한 번, 일 년에 12번, 생애 최소 400번,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흐르는 피를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피의 연대기》는 매달 그 자연적 고난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여성들의 당혹스럽고 귀찮고 불편한 심경을 아주 솔직한 표현으로 대변하고 접근하기를 자처한다. “씨X, 존X 귀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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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생리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피의 연대기》

 

이 다큐는 우연히 외국 친구와, 생리를 대하는 자신의 입장과 생각에 큰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 김보람 감독의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했다. 이후 제작진이 역사와 인종, 기록과 여성들의 실제 경험을 넘나들며 차곡차곡 모은 이야기들은 지금껏 어디에서도 듣지 못했던 생생한 경험담이자 놀라운 지적 기록들이다. 궁극적으로 이 다큐가 지향하는 것은 ‘더 잘 피 흘리기 위한’ 방법이다. 이는 여성이 자신의 몸을 더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과 직결되는 문제 제기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피의 연대기》는 생리를 더러운 것,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에 부끄러운 것으로 인식해 왔던 우리의 고정관념을 부드럽게 부순다. 그러면서 여성의 생리는 보편적으로 이야기되어야 할 주제며, 사적 영역이 아닌 공적 영역의 담론으로도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분명히 한다. 특히나 얼마 전 국내에서 뜨거운 이슈였던 저소득층 청소년들의 ‘깔창 생리대’와 유해물질 생리대 파동처럼 사회적 문제와 연결된다면, 생리는 더는 개인적 차원의 주제에 머무를 수 없다. 생리를 공적 담론으로 만들고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나가기 위해 직접 발로 뛰는 정치가, 저널리스트, 대학 총학생회 등 다양한 분야 여성 활동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카메라는 이 다큐가 단순히 여성들의 개인적 경험담을 모으는 차원에서 그칠 생각이 없음을 알린다.

 

꼼꼼한 자료 분석과 인터뷰, 재기 발랄한 화면 구성은 다큐로서 《피의 연대기》가 지닌 큰 장점이다. 감독은 자신의 문제의식을 특정 세대와 지역의 이야기로 국한하는 우를 범하지 않고 역사와 세대, 인종과 문화를 가로지르며 연대기를 구성하고 여성들의 목소리를 충실하게 담아낸다. 일일이 종류를 세기도 어려운 다양한 생리용품 소개는 실용적 정보를 제공할 뿐 아니라 유독 패드 생리대에만 익숙한 여성들의 관심을 흥미롭게 유도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결국 생리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관객이 자연스럽고도 즐겁게 이 주제에 동참해 이야기하도록 만드는 것이 《피의 연대기》의 가장 큰 성취로 보인다. 물론 그 대상에는 남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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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지속되는 용산의 아픔, 《공동정범》

 

공동정범(共同正犯). 형법 제30조. 하나의 범죄를 각자 분담하고 이행했지만 각자는 그 전체에 대해 형사책임을 져야 한다는 법률 용어다. 2009년 1월20일 용산 참사 현장, 불타는 망루로부터 살아남았던 생존 철거민들은 동료와 경찰관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목으로 공동정범 판결을 받은 채 수감됐다. 《공동정범》은 그 이후에 남은 이야기다. 

 

2012년 개봉한 전작 《두 개의 문》은 용산 참사 당시 경찰 특공대원의 진술, 수사기록, 법정 재판 기록 등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용산 참사의 진실을 재구성한 작품이었다.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지니고 그날의 진실에 접근했던 이 다큐는 당시 전국 관객 7만3000명을 모으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전작과 이번 영화의 공동 연출을 맡은 김일란 감독은 “《두 개의 문》이 영화의 완성도나 내용과는 무관하게 ‘미완성의 영화’였다”고 말한다. 망루에 올랐던 철거민들이 죽거나 감옥에 간 상황에서 그들의 기억을 담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두 개의 문》이 ‘국가 폭력은 어떻게 이뤄졌는가’에 대한 접근이라면, 《공동정범》은 ‘국가 폭력이 남긴 상흔은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작품이다. 진상 규명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고, 생존 철거민들은 출소 이후에도 그날의 공포와 아픔에 사로잡혀 있다. 국가가 이들에게 자행한 폭력은 결과적으로 서로를 향한 갈등과 분노 그리고 억울함으로 발현됐다. 생존자들은 용산 철거민, 연대 철거민의 입장으로 나뉘어 서로 반목하게 됐다. 입장은 조금씩 다르지만, 여전히 이들은 ‘동료가 나 때문에 죽었는가’라는 고통에 시달린다.

 

《공동정범》은 그들의 마음과 상태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은 채 이 모든 상황을 묵묵히 지켜보고 그들의 말을 담아낸다. 감정적으로 서로를 할퀴며 더 큰 상처를 입는 이들의 모습은 명백한 국가 폭력의 흔적이자 부조리다. 더불어 사건의 양면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공동정범》은 신중함을 잃지 않는 다큐다. 《두 개의 문》이 경찰은 가해자며 철거민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문제를 다르게 바라보도록 만든 다큐였다면, 《공동정범》은 ‘신성한 피해자’는 없음을 말한다. 보기에 따라 가해자와 피해자를 넘나드는 이들의 모습은 사건 이후 남은 사람들을 바라보는 이 다큐의 신중한 접근법을 새삼 실감케 한다.

 

김일란 감독은 “살아남은 자들의 감정의 참사를 극복해야 국가 폭력으로서 용산 참사의 진상을 규명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감정의 참사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 다큐 《공동정범》의 몫이었다면, 진상을 규명하는 것은 국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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