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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이 AI를 만나니, 내가 만화 주인공이 됐다

웹툰 《마주쳤다》, 기존 웹툰에 AI·AR·VR 등 첨단기술 접목

박소정 인턴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1.26(Fri) 17:01:00 | 14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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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거 아니거든. 눈에 뭐 들어간 거야.’ 모바일 웹툰 속 주인공이 나에게 말한다. 나는 휴대폰 액정을 향해 다정스레 입바람을 분다. 바람을 불어주자 주인공의 머리가 흩날린다. 그러자 주인공은 눈을 감고 입술을 내민다. 나는 휴대폰 액정에다 입을 맞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다소 이상하다고 느낄 법한 이 행위는 웹툰 《마주쳤다》를 보는 방식이다. 1월10일 연재를 마친 하일권 작가의 웹툰 《마주쳤다》는 인공지능(AI), 증강현실(AR) 등 첨단기술을 스토리와 결합해 선보였다. 독자들은 “신기하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불과 여덟 편만으로 구성된 단편작은 조회 수 5000만 이상의 흥행을 기록했다. 이제 스크롤을 내려가며 눈으로만 웹툰을 감상하는 시대는 지났다. 첨단기술이 접목된 웹툰을 ‘경험’하는 시대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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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쳤다》 누적 조회 수 5000만 돌파

 

《마주쳤다》는 첨단기술을 적용해 기존 웹툰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형식을 구현했다. 웹툰을 읽는 독자가 셀프카메라를 찍으면 독자 얼굴과 닮은 모습의 캐릭터가 생성돼 웹툰 속 주인공이 된다. 여기에는 두 가지 기술이 활용됐다. 하나는 얼굴인식 기술이고 다른 하나는 AI의 일종인 ‘머신러닝’이다. 머신러닝은 컴퓨터가 스스로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이다. 사용자가 셀카를 찍으면 앱이 얼굴을 인식하고, 하일권 작가의 화풍을 익힌 머신러닝 기술을 통해 얼굴을 자연스레 웹툰 그림체로 변환하는 식이다. 웹툰 속 주인공이 현실 세계에 나와서 말풍선을 통해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여기에는 AR이 활용됐다. 사용자가 카메라로 주변을 비추면 주인공이 해당 장면에 겹쳐지면서 마치 웹툰 속 인물이 현실로 튀어나온 것처럼 연출한 것이다.

 

《마주쳤다》에는 스마트폰에 내장된 기존 기술을 응용하기도 했다. 주인공에게 입맞춤을 해야 다음 이야기로 이어지는 장면은 터치 기능을 활용했다. 손가락 두 개를 동시에 사용해야 터치를 인식하는 ‘2점 멀티터치’를 적용해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자연스럽게 화면에 닿게끔 유도한 것이다. 입바람을 ‘후~’ 하고 불 때 주인공의 머리카락이 날리는 장면은 마이크 기능을 이용했다. 사용자가 휴대폰을 향해 바람을 불면 마이크가 데시벨(dB)을 측정하고, 데시벨 강도를 웹툰 속 바람으로 표현한다.

 

《마주쳤다》는 네이버 웹툰팀과 하일권 작가가 공동제작했으며, 연구·개발(R&D) 전문 자회사인 네이버랩스도 참여했다. 총 59명의 구성원이 함께 작업해 탄생했다. 투입된 인력도 많지만, 제작에 소요된 시간도 상당했다. 《마주쳤다》 최초 기획을 시작한 것은 2016년 12월이다. 하 작가와 공동작업을 시작한 것은 2017년 2월부터다. 기술과 스토리의 완벽한 결합을 위해 작가와 웹툰팀은 정기적으로 미팅을 가지며 긴밀히 협업했다. 그리고 1년여 만인 2017년 12월 중순 《마주쳤다》의 첫 연재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내가 웹툰 주인공이 된다면 어떨까’라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기획을 맡은 정진 네이버 웹툰팀 매니저는 시사저널에 “자신의 이름과 얼굴이 들어간 웹툰을 통해 독자들에게 생생하고 재미있는 콘텐츠 경험을 제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아이디어와 기술 요소가 만나 《마주쳤다》가 탄생했다”고 말했다.

 

일종의 ‘실험작’이란 생각으로 세상에 공개했지만 독자들의 반응은 의외로 뜨거웠다. 1월10일 마지막 화인 에필로그가 공개된 후 누적 조회 수는 5000만을 돌파했다. 《마주쳤다》를 완독한 대학생 조남준씨(25)는 “신기했다. 다른 웹툰보다 훨씬 집중해서 보게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독자는 댓글을 통해 “생각보다 함께 제작해 주신 분들이 많아서 놀랐고, 새롭고 멋진 웹툰에 한발 내디뎌주셔서 감사하다”고 후기를 남겼다.

 

제작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기술과 콘텐츠를 적절하게 조화시키는 것이었다. 기술의 과잉이나 어설픈 접목은 자연스러운 스토리 진행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개발을 담당한 송창근 네이버 웹툰 팀장은 “기술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으로 콘텐츠의 재미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재미와 몰입감을 놓치지 않는 선에서 기술이 콘텐츠 적재적소에 녹아들도록 만드는 데 많은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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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요구 있다면 패러다임 변화 가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마주쳤다》의 등장을 놓고 ‘웹툰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긍정적 평가와 ‘작가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부정적 평가가 공존하고 있다. 김병수 목원대 교수(만화애니메이션과)는 “만화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잘 적응해 갈 수 있겠다는 희망을 봤다. 새로운 시대에 웹툰이 갈 길을 보여줬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팀은 현재 작가들이 각종 기술을 동원하고도 좋은 스토리의 웹툰을 쉽게 만들 수 있는 툴(제작도구)을 개발 중이다.

 

반면, 한창완 세종대 교수(만화애니메이션학과)는 “출판물 중심으로 만화가 연재되던 과거에 비해 지금 웹툰 작가들의 노동 강도는 다섯 배 이상이다. 매주 그림 그리기도 바쁜데 기술까지 새로 배워야 한다면 부담이 커질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한 교수는 “기술적 부담감을 최소화하고 작가들의 노동 강도를 효율적으로 분배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로 나아가야 한다. 따라서 웹툰에 응용될 기술이 ‘작가 중심적’으로 개발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렇다면 IT기술이 접목된 웹툰의 등장은 향후 시장의 패러다임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까. 관건은 새로운 형식의 웹툰에 대한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과 요구다. 웹툰 정보 사이트 ‘웹툰가이드’의 강태진 대표는 “《마주쳤다》 독자들의 폭발적 반응이 아직까지는 일시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신기술이 적용된 웹툰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생산비용이 합리적이어야 하고, 창작자들의 기술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 대표는 “무엇보다 독자들의 계속된 요구가 바탕이 돼야 한다. 이런 조건만 충족시킬 수 있다면 패러다임 전환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미 새로운 형태의 웹툰 플랫폼 구축에 나선 업체도 있다. 가상현실(VR) 웹툰 플랫폼 ‘코믹스브이’가 대표적이다. 현재 이곳은 월간 1만 명의 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양병석 코믹스브이 대표는 “짧은 시일 내엔 힘들겠지만 당연히 웹툰의 패러다임은 전환될 것”이라며 “궁극적으로는 혼합현실(MR) 형태로 웹툰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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