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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여류시인'이란 말, 이상하지 않아요?

'여혐(女嫌)'의 두 얼굴

노혜경 시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1.28(Sun) 15:00:00 | 14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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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두 유명한 여성이 서점을 열었다. 시인 김이듬의 ‘이듬 책방’과 가수 요조의 <책방무사>다. 이들을 지칭하는 신문기사에는 이들의 성별이 여성임을 드러내는 표지가 거의 없다. 그냥 김이듬 시인, 또는 시인 김이듬, 그냥 뮤지션 요조 또는 가수 요조.

 

‘여류시인’이라는 말이 있다. 시인이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면, 그는 그냥 시인이 아니라 ‘여류시인’이라 불리고, 그가 쓴 시는 앞에 수식어가 따로 붙어 ‘여류시’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여류’란 여성을 차별해 부르는 말이므로 폐기돼야 하고, 여성인 시인도 남성인 시인과 마찬가지로 시적 역량으로 평가돼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1990년대 후반 여성시운동의 결과로 문단 자체에선 ‘여류시’ 또는 ‘여류시인’이란 말이 거의 사라졌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여류’란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심지어 신문에서도, 좀만 나이 들었다 싶은 필자는 거의 예외 없이 여성인 예술가를 지칭할 때 꼭 ‘여류’를 앞세우곤 한다.

 

‘여류’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20년대부터 등장한 ‘신’여성들 때문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여전을 나오거나 유학을 다녀와서 남성들의 사회 영역에 발을 내디딘 여성들은, 패션에서 사생활까지 온통 주목의 대상이었다. 반드시 문필가가 아니라도 여기저기 매체에 다양한 글을 써서 ‘여류문사’라 불리게 된 일군의 지식인 여성들은 언제나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즉 ‘여류’란 특출한 여성을 가리켰다. ‘여류’라는 특별한 집단에 속한 여성. ‘남류’와 구분하기 위해서 생긴 말이 아니라, ‘여성들 중 특별한 부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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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란 말은, ‘여성혐오’란 반드시 여성을 비하하거나 모욕하는 방식으로뿐 아니라 치켜세우고 보살피는 방식으로도 드러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여류란, 단순히 성별을 알리기 위해서 붙이는 접두사엔 ‘류’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여학생, 여가수 등을 생각해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그래서 한때는 스스로를 ‘여류’라 부르고 싶어 한 ‘여류’들도 있었다.

 

이렇게 되자 ‘여류’라는 말은 이중적으로 쓰였다. ‘여류’라 불린 여성과 그렇지 못한 여성이 차별됐다. 정확히 말하면 ‘여류’라고 불려야 세상의 무대에 등록될 수 있었고 나머지는 없는 존재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여성은 아무리 뛰어나봐야 ‘여자일 뿐’이라는 차별 또한 여전히 고수됐다. 문사와 ‘여류’문사. 시인과 ‘여류’시인, 작가와 ‘여류’작가. 이렇게만 놓고 보아도 ‘여류’라는 말이 지닌 ‘2등 인간화 효과’를 인지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여류’가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힘든 언행을 했다고 간주될 때의 응징은 훨씬 더 가혹했다. 우리가 지금 ‘선각자들’이라고 부르는 여성 선배들, 나혜석·전혜린 등이 걸어간 삶을 조금만 반추해 보아도 마음이 슬퍼진다.

 

신여성이란 말이 죽은 말이 된 지금도 ‘여류’란 말은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의 깊이와 끈질김을 드러내준다. 무심코 사용하는 말 속에 이런 비하와 차별이 숨어 있다면, 이런 말들을 드러내 비판하는 여성들의 말에 귀 좀 기울이시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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