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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더 “북한 문명국가 아니다. 그래도 대화는 이어가야”

[단독 인터뷰] 게르하르트 슈뢰더 前 독일 총리 ① 정치현안·리더십, 남북관계

송창섭 기자 ㅣ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8.01.29(Mon) 15:01:00 | 14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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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지난해 펴낸 자서전 《문명국가로의 귀환》에서 ‘한국은 특별히 기억에 남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한국이 자신의 조국 독일처럼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나라여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일 관계가 아직 해결점을 찾지 못한 점을 아쉬워하면서 자신이 주도한 경제·사회개혁 프로그램 ‘아젠다 2010’이 한국에서 꽃피우기를 기대했다. 그가 최근 여생의 절반을 한국에서 보내겠다고 밝히면서 한국과의 인연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여러 면에서 2000년대 초반 독일 슈뢰더 정부와 닮아 있다. 재도약과 추락의 중간 지점에 서 있는 지금의 한국 경제·사회에 슈뢰더 전 총리의 한마디는 그래서 중요하다. 슈뢰더 전 총리와의 단독 인터뷰는 1월2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됐으며 추가로 궁금한 부분은 서면으로 대신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기간 미국 내 인기가 바닥을 기었다.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정권을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후보에게 넘겨준 것은 당시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날 카터는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전임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퇴임 후 그가 세운 카터재단은 인권과 환경, 국제 분쟁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럽 정치 지도자 중 카터와 견줄 만한 인물은 누가 있을까?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비슷하다. 중도좌파인 슈뢰더 전 총리는 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기민당 헬무트 콜 정권을 무너뜨리며 1998년 집권에 성공했다.

 

하지만 집권 후 독일은 ‘덩치만 큰 약골’에 지나지 않았다. 통일 후유증으로 경제는 병들어갔다. ‘유럽의 병자’라는 비난이 뒤따른 것은 당연했다. 2002년 재선에 성공한 슈뢰더 전 총리는 이듬해 3월13일 ‘아젠다 2010’이라는 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아젠다 2010의 핵심은 하르츠(Hartz)에 의해 마련된 노동시장, 사회보장체계 개혁 프로그램이다. 슈뢰더 전 총리는 폴크스바겐의 인사노무 담당 이사 페터 하르츠를 위원장으로 한 ‘노동시장의 현대적 노무급부를 위한 위원회’를 측면에서 강력하게 지원했다. 당시 이 위원회가 정한 원칙은 저임금 노동과 부분시간 노동을 확대함으로써 일자리를 늘리고 실업을 줄여 나가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독일 내 반응은 뜨거웠다. 무엇보다 지지층인 노동계가 강력하게 반발했다. 시행 초기 혼란과 역대 최고치인 11.3%의 실업률은 슈뢰더 정부의 발목을 잡았다. 그 결과, 집권 7년 만인 2005년 슈뢰더 전 총리는 정권을 앙겔라 메르켈(현 독일 총리)의 기민당에 넘겨줬다. 그러나 독일 경제와 사회를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진행한 슈뢰더의 개혁은 독일의 번영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슈뢰더 전 총리는 독일을 넘어 전 세계로부터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용기 있는 지도자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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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현안·리더십 

 

재임 기간 중 여러 한국의 정치 지도자를 만났다. 그중 기억에 남는 정치 지도자가 있다면 누구를 꼽겠는가.

 

“내가 만난 한국의 정치인들은 모두 흥미롭고 훌륭한 분들이었다. 그래서 어느 한 분도 빠트리고 싶지 않지만 특히 인상 깊은 분은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의 오랜 친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개인적으로 김 전 대통령을 두 번 만날 기회가 있었다. 2000년 3월 김 전 대통령의 독일 베를린 국빈방문 시 처음 만났으며 2000년 가을 서울에서 열린 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 정상회담에서 다시 만났다. 2000년 3월 독일 국빈방문은 굉장히 의미가 있었다. 2000년 북한은 독일에 수교를 요청했는데, 당시 나는 김 전 대통령이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아야만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김 전 대통령은 ‘독일이 북한과 수교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고 이를 계기로 북한과의 수교를 결정했다. 그 결과, 독일은 공식적으로 2001년 3월 평양에 독일대사관을 세울 수 있었다.”

 

 

지난해 여러 매체를 통해 한국의 촛불 시민혁명을 봤을 것이다. 한국의 평화적 정치혁명을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당연히 나도 촛불혁명을 독일에서 주의 깊게 지켜봤다. 촛불혁명은 한국 국민의 정치적 성숙도를 다시금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대선에서 한국은 평화적인 정치 교체를 이뤄냈다. 하지만 현재 문재인 대통령은 지지층의 둘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받는다. 당신은 재임 중 적극적 지지층인 노동자층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혁을 이뤄냈다.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확신을 어떻게 갖게 됐는지 궁금하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지층이 자신에게 걸고 있는 기대와 필연적으로 수행해 나가야 할 경제정책 사이에서 균형을 잘 맞춰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 인상은 빈부격차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고 생각한다. 독일에서도 이러한 조치를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취한 바 있다. 비록 초기에 경제 분야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는 했으나 결국에는 우려가 현실화되지 않았다. 나는 경제 강국인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지지층 사이에서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하더라도 국가의 이익을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도 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지층의 협조를 이끌어냈는지 말해 달라.

 

“회의적인 목소리는 아직도 존재한다. 그러나 정치인에게 있어 정책의 성공보다 더 큰 지지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은 호흡을 길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

 

 

한국에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지만 보수층은 여전히 불만이 많다. 독일은 연정(연합정부)을 통한 정치 통합에 있어 한국의 좋은 성공 모델이 된다. 과거 당신은 니더작센주 총리 시절 사민당, 녹색당과의 연정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어떻게 하면 연정을 잘 구성하고 운영해 나갈 수 있는지 노하우를 알려 달라.

 

“독일은 다른 나라와 달리 연정이 정계의 가장 큰 바탕이 된다. 때문에 정당들은 서로를 ‘반대 측’으로 볼지언정 ‘정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한국도 이러한 정치문화를 유지해 나갈 필요가 있다. 연정을 이끌기 위해서는 파트너에게 정치적 여유를 허용할 뿐 아니라 절충안(타협안)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적극적 지지층은 모든 정치인의 희망이다. 하지만 이는 독이 든 성배가 될 수 있다. 선배 정치인으로서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올바른 리더십을 조언한다면 어떤 말을 하겠는가.

 

“한국의 정치는 독일과 다르므로 내가 어떤 조언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조언이라기보다 평소 소신이라고 여겨온 정치적 리더십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다. 정치적 리더십이란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지지층의 요구에 반하는 행동도 할 수 있는 용기를 뜻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지지층과 긴밀한 소통을 해야 한다. 물론 나도 늘 독일 국민과 충분한 소통을 했던 건 아니다.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이러한 소통이 언론매체를 통해 전달되다 보면 원래의 내 뜻과 다르게 왜곡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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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관계 

 

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러한 북한의 행보가 핵무기 개발을 위한 시간 벌기라는 지적이 있다.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화를 위한 시도는 어떤 경우든 고립보다 낫다. 이는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의 긴장완화 정책에서 배운 바다.”

 

 

북한은 여전히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체제를 지탱할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북한이 결국 핵 개발 후 미국과 직접협상에 나설 거라는 전망이 많다. 한국 정부는 이 과정에서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하나.

 

“여기서도 빌리 브란트의 교훈을 적용할 수 있다. 빌리 브란트도 긴장완화 정책을 펼칠 당시 처음에는 동맹국이었던 미국의 반대에 부닥쳤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독일의 경험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 국민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해 나갈 것으로 본다.”

 

 

중국과 러시아는 여전히 대북제재에 반대하고 있다. 반대로 미국과 일본은 대북 강경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때 한국 정부는 어떤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보는가.

 

“유엔에서 대북제재를 결의한 바 있으나 거부권을 가진 러시아와 중국 때문에라도 이 제재는 사실상 강행하기 어렵다. 따라서 압박과 대화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이 올바른 전략이라 생각한다.”

 

 

한국의 보수층은 과거 진보정권의 대북 지원책이 ‘효과가 없는 일방적 지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신동방정책(긴장완화 정책)을 추진한 빌리 브란트의 ‘정치적 후계자’로서 한국의 대북 지원책을 어떻게 보는가.

 

“진보정부의 대북정책은 한국에서 긍정적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러한 경험을 거울삼아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러한 노력은 국민의 지지를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중국의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다. 당신은 한반도 문제에 있어 중국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중국은 한편으로는 대화를, 다른 한편으로는 유엔의 제재에 동참하는 양면정책을 적절히 취하고 있다. 중국의 이러한 행보는 존중받을 만하다.”

 

 

독일은 통일을 이뤄냈다. 하지만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다. 이런 이유로 한국에서 ‘통일이 과연 필요한가’란 의견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통일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통일은 당연히 경제적 자금을 필요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의 경제가 새롭게 변화해야 한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매우 안정된 상태이므로 통일된 민족의 이익을 위해 통일비용을 감당해 낼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이산가족을 생각해 보라. 분단된 국가의 민족은 통일을 염원할 수밖에 없다. 이때 정치 지도자의 역할은 국민들의 열망을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해 프로세스를 잘 조직화하는 것이다. 한국의 통일이 상당히 험난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인 것만은 맞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통일이라는 것이 한국에 올 것이고 당연히 평화적인 통일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 지도자라면 모름지기 국민들의 마음과 열망을 공감하고 읽어서 준비를 잘해 나가야 한다.”

 

 

한국보다 먼저 통일을 이뤄낸 독일의 전직 총리 입장에서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아쉬웠던 게 있다면 어떤 것을 지적하고 싶은가.

 

“물론 통일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 하지만 실수에 골몰하기보다 그보다 더 긍정적 결과가 많고 그러한 결과들이 통일의 의미를 충분히 보여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에게 통일의 의지를 굳건하게 밝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이 이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경제적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솔직히 밝혀야 한다. 그러면서 통일된 한국이 결국에는 분단된 한국보다 경제적·정치적으로 훨씬 더 강한 나라가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야 한다.”

 

 

평소 문명국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당신이 말하는 문명국가의 기준은 무엇인가.

 

“세 가지 기준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빈부의 격차가 해소되는, 다시 말해 삶의 기본적인 요건에 있어 정당한 분배가 이뤄지는 사회가 문명국가다. 두 번째는 환경에 대해 민감하게 대응할 수 있는 사회다. 마지막 세 번째는 자유·민주주의가 구현되는 사회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면 문명화된 사회란 문화와 예술이 국가에 예속되지 않는 사회라고 말하고 싶다. 문화와 예술은 자생적으로 발전해야 하는 것이지 국가에 예속되거나 관여를 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기준에서 본다면 북한은 문명국가라 할 수 있는가.

 

“물론 아니다.”

 

 

왜 문명국가가 아니라고 보는가.

 

“개개인의 자유라는 것은 문명국가의 중요한 덕목이다. 다시 말해 개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문명국가라 말하기 어렵다. 문화와 예술의 측면에서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대화가 중요하다. 빌리 브란트의 긴장완화 정책, 신동방정책이 바로 그러한 대화를 시도한 것이었다. 서로 다른 사회일수록 대화가 필요하다. 심지어 대화라는 것은 정치적인 반대자, 다시 말해 ‘정적’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이다.”

 

 

작년 9월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는데, 당시 어떤 조언을 했나.

 

“조언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말이다. 왜냐하면 조언해 줄 만큼 내가 한국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독일의 전직 국가원수였기 때문에 전직 총리로서 현직 국가지도자에게 조언한다는 것이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문 대통령을 만났을 때 내가 받은 인상은 ‘좋은 길로 가고 있구나’라는 것이었다. 내 생각에 한국 정치는 나의 조언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바른 길로 가고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통일을 경험한 전직 독일 총리로서 한국 정부나 사회가 내 경험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언제든지 나눌 준비가 돼 있다. 또한 통일 문제와 더불어 아젠다 2010에 대해서도 한국이 필요로 한다면 내 경험을 나누고 싶다.”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당신에게 통일에 있어 특별한 역할을 요청한다면, 응할 생각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답변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특별한 제의가 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요청이 온다면 얼마든지 답변할 의향이 있다.”

 

 

※ 슈뢰더 전 독일 총리 인터뷰 ② '경제·사회 개혁, 국제 현안' 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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